두 번째 정신과 방문에서 의사 선생님은 굳이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으며 증상을 보건데 내가 ADHD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셨다. 부작용이 딱히 없으니 콘서타 용량을 늘려 처방해주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약 겉 포장지를 버리고 소분된 약봉지를 하나하나 분리해 작은 파우치에 숨겼다. 부모님이 발견하면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 틀림 없으므로. 예상 되는 폭풍우는 피해가는 것이 좋다. 부모님 집에서 25년 간 살면서 깨달은 것이다.
너는 머리는 좋은데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래. 누구나 부모님에게 들었을 법한 이 말이 나는 지독히도 싫었다. 학창 시절에 부모님에게 듣던 이 말을 커서는 사회에서, 구태여 말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책망과 실망감의 표출로서 들어왔다. 수업이나 워크샵 초반에 좋은 아이디어와 적극성을 보여준 나에게 그들은 꾸준함을 기대했고 나는 항상 그들을 실망시켰다. 이제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에게 큰 일을 맡기려고 하지 않는다. 2년 전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은 나는 매일 매 시간 괴로워했지만 성과를 보여줄 능력과 에너지가 없었고 몇몇 사람들로부터 노골적인 책망을 들었었다. 자기혐오가 깊어져 어쩔 줄 모르던 나는 2년이 지난 지금도 이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무언가를 도전하기가 더 이상 꺼려진다. 결국 실패할 것을 아니까. 나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내 스스로 일궈낸 것 없이 살고 있다. 내 무능력의 끝을 보여줬던 그 프로젝트는 다른 팀원들의 노고 덕분에 "썩 괜찮은 작품"이라며 아직도 가끔씩 여기저기에서 거론되고 있으며,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나를 계속해서 언급한다. 그럴 때면 자꾸만 그때의 악몽이 떠오른다. 문제는 그 악몽이 바로 내 자신이며 그에 따른 책임과 결과는 꿈도 아닌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제 나는 '안 했던 것'을 '못 했던 것'으로 바꿔본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 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 했다. 워크샵에 끝까지 나가지 못 했다. 엄마가 시킨 것을 매번 까먹는 것은 내가 엄마를 하찮은 취급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지를 못 했던 것이다. 내가 중요한 프로젝트를 망친 이유는 내가 게으르고 남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프로젝트를 끝까지 끌고 갈 에너지와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위안이 되냐고? 조금은. 그러나 기분이 복잡해진다. 내가 왜 이런 "시덥지 않아 보이는" 장애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불특정 다수에게 변명거리로밖에 들리지 않는 이 병의 증세가 원망스럽다. "~그럼에도" 성공한 여러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웬만한 의지력으로 극복이 어려운 질환인 것을 알면서도 아직은 내 자신을 용서하기가 어렵다.
내 자신을 용서하기가 어렵다. 결국 내 인생이고 내 책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더더욱. 알이 유독 단단하더라도 그것을 깨고 나와야하는 건 아기새의 몫이듯 나도 내 삶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있었다. 하지만 매번 나는 내 인생을 제대로 감독해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약물치료가 나에게는 조금 두렵다. 이번 도전이 전환점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시도처럼 실패로 끝날까봐, 약물치료를 하고도 삶을 바꾸지 못할 것 같아 무섭다. 또 약물에 대한 심적인 의존이 생겨 더욱 나태하게 살까봐 걱정 된다. 하지만 치료를 안 하면 내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더 커질 것 같다. '안 하는 것, 못하는 것' 같은 말장난보다야 무엇이라도 해보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믿고 싶다. 나중에 엄마의 원망을 듣게 되더라도 말이다. 악몽에서 벗어나는 게 과업인 인생은 이제 지겹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