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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부족하다(매우 우울하므로 주의 요망)
Level 4   조회수 194
2019-12-19 22:29:32

공부에 집중하려고 집중하려고 해도 계속 속울음이 나서 그냥 글을 쓰기로 했다.


요며칠 나는 참 힘냈다.

계속 6시에 일어났고 고작 3일이지만 스터디에서도 제일 앞섰다. 틈틈이 집에 갈 때 세탁물을 돌려놓고 동생 밥을 차려주고 깨우고 내 밥 먹고 설거지하고 분리수거하고

정말 열심히 했다.


영어 하프는 이제 10분~15분대로 풀이시간이 줄었고 거의 백점이었다.

한국사 동형 문풀 시간도 5~20분대로 줄었다. 100 100 90 90 85점이었다.

늘 중요과목 하나는 소홀히 하기 마련인데 국어도 계속 풀었다. 그마저도 계속 90점대 10분이었다,


그러다가 어제 개복치처럼 터져버렸다.

언제나처럼 동생 줄 고기를 굽고 있었는데 동생이 라면 끓이러 와서 아 쫌 비키라고! 하고 소리쳤다.

내가 고기를 굽는 사이에 좀 오래 옆에 어중간하게 서있었던 모양이었다. 얼마나 오래인지 나는 집중하고 있었어서 모른다.

나는 후라이팬만 두 개라 정신이 없었고(작업기억력 아미 한계) 밥을 푸고 난 압력솥을 닫으려고 하고 있었다.

근데 닫으려는데 안 닫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운동화 끈 못 묶는 느낌으로.


아 내가 닫을게 좀 비켜라!


동생이 다시 소리치는데 약간 화의 퓨즈가 나가서 나도 소리쳤다. 아마도 좀 지리멸렬하게.

어중간하게 서서 답답하게 기다리게 좀 했다고 저렇게까지 소리를 친다는 게 정말 순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답답하겠지. 나도 그런 소리치는 소리를 알바에서 들은 게 한두번이 아니다.

게다가 이번에 건드린 건 좀 구체적으로 기억이 남아있는 ptsd였다.


몇 년 같은 시기에 해 온 알바였는데, 그 회차에 처음 봤을 때 잘 대해주던 신입직원이 딱 일주일 일하는 사이에 사람을 경멸하는 게 느껴져서 정말 끔찍했었다.

딱 그때랑 똑같은 못 견디는 고성에, 음색까지 소름끼치게 똑같았다. 순식간에 내집단이 외집단으로 바뀌는 기분에 토할 것 같았다.


그때 그걸 집에서도 겪어야 하나?

일단 그걸로 화를 참고 입닫고 있다가 공인인증서를 만들 일이 있어서 나갔다.

아마도 지금 생각하면 내 기능은 며칠동안 세시간씩밖에 못 자서 사람들 답답하게 할 정도로 낮아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직원이 체크하라고 하는 기기가 오른쪽이었는데 내가 세 번쯤 왼쪽 기기로 네,이거라고요?를 반복하는 사이 직원이 내 손을 잡더니 아니 "이거! 라고요..." 하고 입끝을 떨었다.

내가 왜 그랬냐면 뭐라는지 들리질 않았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오른쪽 기기로 하는 작업인데(실제로도 그렇고) 직원이 하는 말이 웅얼웅얼, 음운이 아닌 음성. 그렇게밖에 들리지 않았고, 그게 그나마 "왼쪽" 소리에 가깝게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봐도 오른쪽 기기인데 왼쪽으로 하라고 해서 되물은 거다.

그걸 직원은 아마 '아니 이 똥멍청이가 딱 봐도 오른쪽인 거 안 보이나'느낌으로 받아들인 거다.


그렇게 어떻게든 하고 나왔는데 갑자기 딱 차도에 뛰어들고 싶었다.

눈물이 나서 지하철 화장실에 갔다.

하나의 경험이 도저히 하나의 경험이 아니었다.


나는 유치원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실내화에 종종 바늘이 들어 있었다.

초등학교 때도 아 오늘은 뺨을 12대나 맞았네 하는 느낌으로 살았다. 선생님이 옆에 은애학교라고, 발달장애인 학교를 추천하신 적도 있다.

그런데 성적만은 좋아서 매 중간고사마다 누구 꺼 베꼈느냐고 불려갔다.(기말고사쯤 되면 걔 원래 성적 좋아요 하고 전 담임이 말해주는 관례가 생겼다)

동생이랑 같은 학교여서 왕따 당하고 사는 걸 안 들키려고 발악을 얼마나 했는지.

그렇게 불려가는 게 중학생까지였고, 고등학생 때부터 그냥 수능공부 해서 인서울대에 들어갔다.

좋아하는 과여서 성적도 높았다. 그런데 과 선배들이랑 알바를 하면 늘 니가 할 생각이 있냐고 왜 학교에서랑 딴판으로 구냐고 혼났다.

그리고 군대에 갔고 도저히 적응이 안 되었으므로 입원에 입원을.

나는 늘 이상했다. 편차가 있었던 것이다 머리에. 나는 나한테 adhd 말고도 뭐가 더 있다고 확신한다. 우울증 불안증 공황장애 말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딱히 나쁜 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그 사람들이랑, 가족이랑, 방금 그 은행 직원까지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거다.

도저히 이것을 극복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대학, 학점, 스펙, 마음챙김 아무리 해 봐야, 나는 다시 이 자리에 돌아온다.

너무 간단해서 배울 수도 없는 일들에서 매번 실패한다는 그 절망이 그 순간 너무 위험했다.


나는 잠시 숨을 멈추듯이 감정을 멈추고 차도에서 멀리멀리 벗어나서 볼일을 끝내고

독서실로 돌아왔다. 가능한 한 생각을 하지 말고 문제를 풀었다.

세 과목 다(하프긴 해도) 백점이었다. 아니 그 감정상태에서 말이다.

바로 이런 편차 자체가 벗어날 수 없는 저주처럼 느껴졌다. 저번 시험에서 마킹을 못하고 떨어진 것처럼.

이건 아마 합격해도 달라지지 않을 텐데.


adhd를 겪는 사람들 중에 그래도 나는 장애인 등록 같은 건 바라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럴 때마다 이 adhd란 것도 능력의 높고 낮음이 있어서... 사람마다 참 다르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adhd가 장애가 아니라 다름이라고 말하는 groundless한 이야기들이 정말 싫어서 화가 난다.

나는 어쩌면 좋을까.


겨우 저런 몇 가자 일들로 그러느냐고 하기에 나는 저걸 너무 자주 겪는다.

그때마다 고통이 시그마로 쌓인다.

벗어날 수가 없다. 벗어날 수가.

좀 밝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도 그게 안 된다.

아까 동생이 미안한 건지 짜증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화해의 제스처로 느닷없이 저녁을 해 줬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지금 긍정적인 힘이 없다. 동생만 봐도 손이 떨리고 누구 목소리만 들어도 내 욕 같다.

아 정말 내일 병원에 가야 한다. 이건 위험하다. 이게 다... 잠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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