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연례 행사로 계획을 세우고, 올해는 작년에 실패한 계획을 다시금 도전해서 성공시키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지지부진해지면 구정이라는 세컨드 찬스(?)를 노린다. 멋대로 정해놓은 시간의 구분일 뿐이지만 새로운 기분을 느끼는 것은 어쨌든 좋은 것 같다.
종종 웹툰이나 웹소설 등을 보는데 요즘 부쩍 귀환자물이나 인격교체물(?)이 눈에 많이 띈다. 과거로 돌아가서 인생을 바꾼다든지,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의 인격이 지위나 체격이 떨어지는 사람에 들어간다든지(반대의 경우도 있다) 하는 식이다.
독자들은 그것을 보면서 과거로 돌아가는 주인공에 몰입하고, 이전이라면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면서 과거를 바꾸는 주인공에 대리만족을 느낀다. (보는 나도 너무 통쾌하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직업적 기회, 인간관계, 기억 그 자체...
사실 시간여행은 클리셰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스크루지)'이나 '구운몽(꿈이지만 다른 인생 경험이라 친다면?)' 처럼 과거부터 인류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아닐까 한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대다수는 습관적으로 '~~가 ~~했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텐데..' 라고 생각한다.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을 가지는 것.
시간때우기(?)로 접한 '어바웃 타임'의 결말은 주인공이 ****하기로(스포금지?) 결심하는 것으로 끝난다. 스스로를 생각해봤다. 내가 내 과거를 통째로 들어엎는 능력을 얻는다면 세상이 재미있을까? 가치라는 것은 희소성에서 오는 것이다. 물질적으로도 그렇고, 성취로서 얻어지는 보상으로서도 그렇다. 돈이 넘쳐나고, 돈을 주고 뭐든지 살 수 있다면 인생이 재미있을까? 아마도 도파민 부족을 보상하기 위해 마약, 도박으로 빠지거나, 혹은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불과 몇년(1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매일같이 과거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면서 살았다. 무슨 일만 닥치면 과거의 어느 시점을 떠올리며 '그때 ~~했더라면'을 반복하는 식이다. 그때가 좋았는데. 어느 순간 나는 이 짓을 매년 반복해왔다는 것을 깨닫고 멈추게 되었다. 스스로가 발달장애가 아니었나 의심할 정도였던 초등학교 시절은 시궁창이었지만 희한하게도 중학교때는 초등학교로 돌아가고 싶었고, 고등학교 때는 중학교때로, 대학에 가니 수능 시절마저도 아쉽더라는 것이다. 1년 전, 1달 전 등 기간도 짧아져만 갔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지금의 기억을 유지하고 가지 않는 이상' 바뀌는 건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결국은 그 과정을 거쳐서 얻은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돌린다면 나는 또다시 같은 상황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배워 가겠지'. 가능성을 닫는 것은 좋지 않지만 시간여행의 가능성에는 '아주 작은' 기대만 걸 것이다. 8백만분의 1 당첨확률의 로또를 어쩌다 천원 어치만 사는 것처럼.
과거를 후회하는 습관에서 빠져나온 것은 우연히 내가 그짓을 반복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때마다 기분이 더러웠으며, 실현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반면에 그런 생각 때문에 내팽개친 현실이 다시 과거가 되어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Ted강연 중 담배를 끊을 때의 기제를 '참지 못하고 핀다 -> 기분이 더럽다 -> 다시 끊는다' + '금연 실패 = 더러운 기분을 기억' 으로 연결하면 성공률이 올라간다고 했다.
10년 전에 '내가 10년만 젊었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했다. 주변의 연장자들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한다. 30세는 20세에게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 하고, 40세는 30세에게 '아직 한참 젊네'라고 한다. 50세는 40세에게 '좋을 때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고를 조금만 당겨보자. 지금 내가 30이라면 지나간 20대를 생각할 게 아니라 다가올 40대에 후회할 나를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현재를 바꿈으로써 미래를 바꿀 수는 있다. 그리고 지금 바꾼 현재가 미래에 가면 '바뀐 과거'가 된다. 그래, 나는 5년 뒤에서 온 미래의 내가 바꾸는 과거를 살고 있다.
과거의 나를 바꿀 순 없겠지만 현재의 나를 바꿀 순 있다. '나'의 존재를 바꿀 순 없지만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행해오던 제약적 사고방식을 다른 방식으로 바꿔 보는 것이다. 길게는 수 년이 걸리겠지만,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바보짓을 해도 아무렇지 않은 스스로에게 과거와의 단절감을 느끼는 것.
외모도 볼품없고 별것도 없어보이는 저 사람은 자기의 치부에 대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나도 말 그대로 인격을 교체한다면 저렇게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사고(신체적, 정신적)라도 나지 않는 이상 하루 아침에 변하지는 않겠지만 뭐 하나씩 '배워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의외로 날 때부터 잘나기보단 '똥' 같은 시절을 겪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라고 안 될 게 있을까. 노력한다고 머리 크기가 작아지거나 다리 길이가 길어지지 않겠지만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고속도로라면 힘들겠지만 내가 잘 타는 '출력을 낼 수 없는 코스'에서 느린 차(나)로 좋은 차(외적 조건, 배경 등)를 기술로 따라잡는 것은 운전자나 보는 사람에게도 흥미로운 일이니까.
인생을 노년기까지 다 살아봐야 아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부쩍 든다. 경험이 담긴 좋은 책들 + 스스로의 경험과 사고하는 연습이면 어렴풋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제로 다가오는 미래는 그것과 같을 지는 모르겠지만.
과거는 이미 일어난 일이고, 미래는 올지 모르는 불확실한 것이라면 역시 현재, 지금에 집중하는 게 가치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공중인 건물에 대해 모르지만 그저 시키는 대로 일하고, 때로는 대충 해도 티가 나지 않는 공사장의 단순잡부보다는, 건물의 청사진을 머릿속에 그리며 벽돌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공감독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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