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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恋 (はつこい)
Level 3   조회수 110
2020-03-10 22:59:34

프롤로그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오늘..


스타벅스 3층 창가에 앉은 나는 도심의 인파를 구경하며 아메리카노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매장 안에는 이루마의 연주곡 river flows in you가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마치 창 밖에 내리는 빗방울이 강물로 흘러 들어가듯 어느덧 매장 분위기와 카페인에 취해버린 나..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오늘..


오늘 따라 그녀가 너무나 보고 싶다..


(중략)


때는 바야흐로 2004년..


흔히 말하는 다들 부러워하는 나이

내가 딱 20살이 된 날..


한창 혈기 왕성하고 이성에게 관심 많은 시기..


운명의 그녀를 만나게 되는데..



에피소드 1.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


대학교 동아리 첫 연합 축제 주막에 발길을 옮기는데 주막 근처에서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춘다.. 다리가 아픈것도 아니지만 순간 나도 모르게 차렷 자세인 채로..


마치 오공 본드가 널부러져서 

땅바닥이랑 신발이 하나로 합체된거 같이..


엄청난 미모의 한 여자가 보인다..


보슬비에 약간 촉촉히 젖은 긴 생머리..

크고 동그랗고 속이 훤히 보이는 호수같은 눈동자..백설기 같이 하얀 피부..

달걀 같은 둥그스름하고 갸름한 턱선..

보헤미안 원피스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녀..

모든 남자들의 시선을 한껏 받고 있는 그녀..

완벽하다는 느낌이 이럴 때 쓰는 표현인가?


그렇다..나는 그녀에게 첫 눈에 반했다..

10미터전부터 내 눈에 들어온 그녀는 정말 내 이상형이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지만 주위를 환하게 비출 정도로 아름답고 환한 미소..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의 마음은 

외롭고 우울해보였다..



미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사랑하지 말고

미인의 외롭고 슬픈 눈동자를 사랑하라..

ㅡ 돈 쥬앙 ㅡ

 

그렇다..수많은 인파 속에 있는 그녀였지만..

그녀는 왠지 군중 속에 고독을 즐기는거 같았다..왠지 내가 꼭 안아주고 싶었다..

아~이러면 안되는데..

이건 무슨 감정일까?

집중력 제로인 내가 완전 몰입되어

그녀와 한 몸이 되는 것 같이..

오~시간을 이대로 멈출 수 있다면..

오늘이 지나면 언제 다시 그녀를 볼 수 있을까?

참 용기있는자가 미인을 얻는다고 했지..

용기를 내보자..하지만 용기가 안 난다..

왠지 너무 완벽해보이는 그녀..


다른 사람들한테는 인사해보지만 그녀 앞에서는 꿀먹은 벙어리마냥 인사도 못하고 눈도 못 마주치는데..


그 찰나의 순간..


따뜻하고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 안녕. 반가워 신입생이구나^^

비오는데 비 안 맞았니?

나는 동아리 ㅇㅇ기 ㅇㅇㅇ라고 해..

편하게 누나라고 불러~

만나서 반가워 '


땅바닥에 500원짜리 동전을 찾는거 마냥 눈을 땅바닥에 떨구며 들릴 듯 말 듯 정말 작은 목소리로 ' 네 ' 하고 돌아서는데..


어느 덧 내 앞을 가로 막으며 나한테 웃으며 악수를 신청하는 그녀..

순간 보이는 그녀의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

투명하지만 밤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반짝 반짝 빛나는 무광 매니큐어..

막 샤워하고 나온 듯한 은은한 샤워코롱향..


악수를 할 용기가 안 난다..

아니면 어쩌면 저 손을 잡을 용기가 안 났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 야 머해? 한기수 여자 선배가 악수 신청하는데~'

동아리 회장 형이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지..

심장이 멎는거 같다..

한 살 누나였구나..

역시 남자는 연상의 로망이 있나보다.

3초의 망설임의 끝..

소심하게 악수한 다음 부끄러워 옆 건물

화장실로 도망가버렸다..

그녀와의 어색한 첫 만남 이후 열병처럼 잠을 설쳤다..


에피소드 3.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


3개월을 혼자서 가슴 앓이만 하던 내가

용기를 내서 대쉬하고..


(중략)


드디어 그녀와의 첫 데이트하는 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5월의 어느 날..


한 시간전부터 그녀를 기다렸다..

누군가 그랬다..

사랑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가?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났지만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기다리는 그 시간도 난 정말 행복했다..

답답했지만 전화할 용기가 안 났다..

망설임 끝에 전화하니..


굵고 묵직한 낯선 남자 목소리..


' 폰 주인 아가씨가 폰을 버스에 두고 내렸다.'

버스기사 아저씨였다..


낭창하고 덤벙거리는 백치미까지 있는 그녀..


순간 반사적으로 나는 답했다..


' 제가 친동생이에요. 어디로 가면 찾을 수 있을까요? '


그렇게 난 00대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의 핸드폰을 다시 받을 약속을

잡았다. 시간이 되서 전화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

이번에는 따뜻하고 맑은 여자 목소리..

그녀가 받았다..폰을 찾았다고 한다..

나는 그녀를 탓하기 보다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누나 폰 찾아줄려고 지금껏 기다렸다고..

' 미안하게 왜 그랬냐?'

 3초의 망설임 끝에 한 한마디..

'미안하면 담에 영화보여줘요.'


(중략)



그녀와 데이트 중..


그녀가 차갑고 냉랭한 표정으로 

부담스럽다는 표현을 한다..


 ' 싫어요. 난 누나 포기 못 해요..

저한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진심이 보였는지 그녀가 말했다

 ' 그래 넌 너무 소극적이라서 답답해서 너한테 말하는거야. 덜도 말고 앞으로 딱 한달만 더 지켜볼게~'


꽂히면 올인하는 나는 전형적인 b형 남자..

그녀와 사귈 수만 있다면 그녀가 물 속에 있든 불 속에 있든 상관없다..


안되겠다. 되든 안 되든 고백을 해야겠다..

 

고백은 못 한채..


그렇게 그녀를 자그마치 1년을 쫓아다녔다..



에피소드 4.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오늘..


드디어 내 마음을 그녀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주 고전적이지만 우체국 배달원과 여자얘기가 생각나서였다..

산을 사이에 두고 남자와 여자가

대치해있는데 남자가 편지를 통해서 여자한테

마음을 전한지 3달 뒤 그 여자는 편지를 전해주는 우체부와 사귄 이야기..

여자는 자기한테 더 다가오고 표현하는 남자한테 마음을 열길 마련이다.

그래 표현 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고백하는 그 날도 어김없이 비가 왔다..

하지만 우산 따윈 신경 안 썼다..

며칠전에 그녀에게 잠깐만 학교 공원 벤치에서 보자고 했다..


그녀가 앞에 왔다..

첫 만남 때 입은 그 보헤미안 원피스를 입은 채..


' 머야? 너 우산 안 쓰고 왔어? 감기걸려~'

하며 나에게 다가와 우산을 씌우는데..

순식간에 그녀와 나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마치 첫 만남 때 악수하러 내 앞에 온 것처럼..


큰일이다..심장이 너무 뛴다..


멍하니 날 쳐다보는 그녀..

나는 이내 부끄러워서 고개를 떨군다..


좋아한다고 말 해야 하는데 입이 안 떨어진다..


3분 정도 날 기다리며 보더니 이미 눈치를 챈 

그녀의 한 마디


 '남자가 용기가 그렇게 없냐. 누나한테 얘기해봐. '


순간 나도 모르게 갑자기 닭똥같은 눈물과 함께 손을 벌벌 떨며 입을 뗐다..


' 누...나 진..짜 좋아해요. '


약간 흠칫 놀란 그녀가 차분하게 말한다. 


' 음..끝은 아닐꺼고? 더 얘기할꺼 없어? 

너 표정보니까 할 말 많아보이는데..'


' 첨 봤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누나 땜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미칠 것 같아요. 저랑 사겨요~ '


순간 도도하고 냉랭해보이던 그녀의 동공이 흔들리며 망설이는게 보인다..


양팔을 팔짱낀채 1분정도 망설임 끝에

그녀의 대답..


' ㅇㅇ아. 3일만 시간 줄래? 

누나가 생각 좀 해볼게'



에피소드 5.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


3일이 30일같이 길게 느껴진 날..

밤새 술로 지새운 3일 뒤~


그녀에게 연라왔다. 


' ㅇㅇ아 니가 나 좋아하는거 알고도 있었고 1년동안 나한테 어떻게 하는지도 지켜보았다. 확실히 새내기이고 그런지 정말 순수하구나. 

근데 미안하지만 누나는 연하 안 좋아해~

그리고 너 내년에 군대도 가야 되잖아.

니가 군대 제대하고 나서도 내가 좋다면

그땐 진짜 받아줄게~.

미안해 그냥 편하게 밥먹고 누나 동생으로 지내자.~'


그렇게 긴 수화기 사이로 흐른 정적..


눈물이 앞을 가렸다..


수화기 너머 내가 우는게 들키기 싫어서 

한쪽손으로 입을 막으며 아무 대답없이..


' 야~너 지금 울지? '


나도 모르게 대답도 안하고 그냥 끊어버렸다.


가슴이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듯 심장이 찢겨나가는거 같다..


다시 전화가 울리지만 받지 않는다..


그렇게 난 약 3시간 동안 눈물을 흘렸다..


너무 가슴 아프다..이제는 모든게 끝이다..


갑자기 그녀와의 데이트한 추억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녀한테 노래방에서 데이트할 때 부른 노래..


너라고 부를게~

머라고 하든지 남자로 느끼도록 꽉 안아줄게

누난 내 여자니까..


이 노래가 그때 유행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는 내 여자가 될 수 없었다..



에피소드 5.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


군대도 마치고 한 동안 그녀를 잊고 지냈다..

드문 드문 생각은 났지만..

더 이상 20살의 순수함은 어디로 간지 모를 정도로 난 나이를 먹어갔다..


(중략)


 모르는 번호로 국제 전화가 한통이 왔다..

안 받았더니 두번인가 더 왔다.


누구지? 하고 받자..

따뜻하고 맑은 목소리..

안보고 연락도 안 한지 오래되었지만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의 첫사랑 그녀..

근데 약간 술취한 목소리였다..


ㅇㅇ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아직 나 좋아하냐고 미국유학 와서 다른 남자도 만나고 해봤는데 너처럼 순수하게 오래동안

나 좋아해준 남자는 지금껏 없었다고..


순간적으로 약간 흔들렸지만 세월 속에 어느 정도 무뎌진 내 감정과 이성적 판단..


' 미안해요. 지금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땐 정말 좋아했었어요.

 아니 정말 사랑했었어요..그리고 

미안하지만 연락 안하셨으면 해요.

누나 목소리 더 듣고 그러면 괜히 마음 흔들릴꺼 같아요. 그냥 가슴 아프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요. 잘지내세요 '


그렇게 나는 그녀에게 많이 늦었지만 남자답게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이미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그렇게 그녀와 나는 시간 속에서 멀어져갔다..



6. 에필로그..


여자는 남자의 말에 반하고 남자는 여자의 외모에 반한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 여자한테 허세를 부리거나 말빨을 앞세우고 여자는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메이크업을 하고 악세서리를 하며

높은 하이 힐을 신는다. 

하지만 난 그 당시 말빨이 아닌 진심을 믿었다.

하지만 내가 30대가 되고 시대가 변해서 

진심만으로는 잘 통하지 않는거 같다..

안타깝고 뭔가 쓸쓸하다.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남기고 여자는 첫사랑을 기억에 남긴다..


p.s 첫사랑 그녀를 지금도 나는 여전히 

한쪽 가슴 구석에 품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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