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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책상에 기대 앉아 이것저것 볼 뿐이었지요... 어쩌면 노트북이 있는 것 자체가 문제일까 싶어, 오늘은 집에 노트북 충전기를 두고 올까 싶습니다. 유혹에 넘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정신력이 강인하거나, 유혹 자체를 없애거나 둘 중 하나만이 답인 거 같아요. 폐쇄된 공간에서 나 홀로만 느껴지는 공간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기는 얼마나 쉬운 일일까요. 환경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러나 정리정돈은 잘 모르겠어요, 지저분한 책상을 봐도 지우개가루를 치우는 정도 외엔 어떤 게 깔끔함인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약을 먹으면 조금 더 깔끔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물론 약의 도움을 받기 이전에 제가 노력해야 함을 압니다. 환경을 바꾸고, 유혹거리를 치우고, 책상에 있는 읽지 않을 책과 잘 쓰지 않는 펜을 구석에 몰아넣어야겠지요.
노트북으로 멍하니 클릭하다가 충동적으로 예전의 생기부를 봤습니다. 어린 시절 유독 뛰어다니길 좋아하고, 남자애를 때려서 선생님이 말리다가 울고, 한번 책을 읽으면 빠져들어서 몇시간도 보고, 수업에서 멍때리기 일수던 기억이 있는데 그게 다 거짓말인 것 처럼 좋은 말들이 많았습니다. 교우관계에 관해서는 조금 나쁜 평이 있었지만요. 어쩌면 adhd가 아닌걸까, 혹은 선생님이 최대한 좋은 말만 써 주신걸까 생각이 됩니다. 그치만 정신과 선생님과 상담할 때 물어보셨던 것, 어느정도 자라서 시험에서 실수가 없었느냐에 밀려쓴적이 한번, 수학에선 계산실수가 잦아 아는 걸 자주 틀렸었다에 약을 처방해주신 선생님을 믿어야겠죠. 그래도 예전의 생기부를 보는 건 기억의 공백을 채워줘서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네요. 주륵주륵 내리는 비를 뚫고 정신과에 갔습니다. 오전 진료만 하는 날이었기에 아침에도 꽤나 일찍 일어났고, 밥도 먹었어요. 아무도 없는 대기실에 잠깐 엉덩이를 붙였다가 진료실에 들어가는 바람에 평소처럼 말을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메디키넷 10mg을 처음 처방받아 먹은 지난 일주일, 아... 난 쓰레기야... 하는 마음이 와! 난 쓰레기야! 정도로 바뀌었단 것밖에 말하지 못했어요. 그 일주일 동안에는 약간의 두통과 불안이 늘어 손가락을 깨물고, 팔에 이빨자국을 내다가 멍이 들었다는 것도 있었지만 잊어버렸습니다. 쉽게 잊는 건 좋은데 꼭 다시 떠올라서 그래선 안되었는데! 자책하게 되는 게 싫네요. 일단 집중력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으므로 증량하여 20mg을 일주일 간 더 먹어보기로 했어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복용한 부작용이길 바라며 이번에는 약효가 확실하게 있길 기대해봅니다. 매주 가기엔 거리가 좀 있는 곳이라 언제 제게 맞는 용량을 찾을지 조급하지만... 그래도 전문가인 선생님을 믿습니다.
우울과 ADHD로 범벅된 사람은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밥 챙겨 먹기 이런 일상적인 일들도 맘먹은 것 처럼 되지 않고 미적거리게 되어요. 자잘한 실수들도 있었네요. 오늘도 결제할 카드를 놓고올 뻔 한 실수를 하고, 머리끈을 안 챙겨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언젠가는 약물을 통해 이런 일들이 아~ 그때 빨리 병원을 갔으면 좋았을 걸! 그래도 괜찮아, 옛날 일인걸! 생각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평생 약과 함께 살아가더라도 일반적으로만 살 수 있다면 좋을 거 같아요.
오늘 트위터에서 봤던 마음에 드는 문장을 옮깁니다. 매번 공부하기 싫다고 안하고 운동하기 싫다고 안하고 스트레스 받는다고 설탕먹고 누울수는 없어 평생 그럴수는 없어 일 이딴식으로 하면 어 내 삶이 만약에 기업이면 당장 파산이야 (@ellathecutest)
파산하고 개인회생을 신청하지 않도록 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았을텐데요, 오늘은 파산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내일은 잘 해낼 수 있었으면 해요. 메디키넷 20mg이 절 충분히 도와주길 바랍니다. 읽어주셨다면 감사합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도, 하늘이 흐려도, 해가 쨍쨍해서 따가워도 좋은 하루가 되셨기를. 오늘이 다정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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