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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 갔다옴
Level 5   조회수 132
2020-10-11 20:53:52

16박 17일로 속초에 갔다 왔다.

뭔가 전기(轉機)가 필요했던 걸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호젓하게 지내며 밀린 작업을 하리라 생각했다.

한달 정도를 꿈꿨지만 (바닷가 한달 살기 같은 게 유행이다) 중간에 추석이 끼어버려 17일로 만족해야했다. 

가격의 압박으로 바다 뷰인 곳엔 못 가고 '바다 근처' 정도의 오피스텔로 예약을 했다. (에어비앤비를 처음 이용해봄)



아마도 약을 먹기 전이었으면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공간에서 혼자 지내며 시간을 유용하게 보낸다는 건 엄청난 자기관리력을 필요로 하는데 

내가 이런 데 소질이 1도 없다는 걸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16년 전인가 혼자 지방에 한달 정도 머무른 적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대는 나 자신을 보고 엄청나게 충격을 먹었었다.

'내가 좀 이상하다' 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시작한 시기가 그때쯤인 것 같다.

그 전에는 학교라는 곳, 직장이라는 곳의 시스템 안에 속해 있어

그곳이 강제하는 스케줄에 맞춰 꾸역꾸역 생활하고 일을 수행해나갔었다. 

힘들었지만 그럭저럭 그렇게 지내왔다.  

물론 게으른 애, 특이한 애, 괴짜, 허당, 같은 소리는 늘 들어왔지만 그게 심각한 고민거리가 된 적은 없었다.

처음으로 프리랜서라는 신분이 되고 '뭔가 이상하다. 나 왜이렇게 한심하지? 심각한 수준인데'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16년 전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돌아온 기억이 있다. 

인터넷도 안 되는 시골 외딴 곳이었기에 지루함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다가 나중엔 TV만 줄창 봤다. (좋아하지도 않는 예능프로를 열심히 봤던 기억이)

집에 돌아온 뒤에도 게으름은 여전했던 거 같다. 아무튼 여러가지로 폭망한 시기였...

 


약을 먹고 (물론 약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지요), 내가 ADHD라는 걸 발견하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중인 현재

지금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큰맘 먹고 속초행을 감행한 것이다.


 



 


초반에는 불면증으로, 후반에는 소화불량으로 고생하긴 했지만

그래도 차분히 할 일을 하고 온 것 같다.

하루종일 방 안에서 있으면서 규칙적으로 생활했고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

요가도 하는 등 운동도 꾸준히 했다. 

하루종일 거의 한마디도 할 일이 없었는데 

원래 말하는 걸 귀찮아하는 나로서는 그게 너무 편하고 좋았다...ㅋ

왜 그렇게 위가 말썽이었는지 물갈이였던 걸까. 소화문제만 괜찮았으면 더 있다 오고 싶었다.

굉장한 생산적인 성취를 거두고 온 건 아니지만

나 자신이 조금은 성장한 것 같아서 그냥 소소하게 뿌듯해서 써본다.

  


스칼렛 요한슨, 애덤 드라이버가 나오는 영화 <결혼이야기>를 보면

LA에 사는 사람이 뉴욕 사는 사람에게 '스페이스부심'을 부리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속초에 있으며 널럴한 공간이 주는 힘을 제대로 만끽했다. 

아 이 여유로움이란! 내가 사는 서울, 그중에서도 신림동은 인구밀도가... (하하하ㅏㅏ..)

여름 성수기도 지났고 여행객도 그다지 없고 하여 더 고즈넉하고 좋았다.





(비오는 날 바닷가 카페에서 기분 내봄)


 



요약.

속초에 가면 딴 거 다 필요없고

이모네식당에서 가오리찜을, 아바이마을에서 오징어순대와 새우튀김을 드세요. 가히 인생 새우튀김입니다.

회는 신유네회집을 추천합니다. 예약제인데 가성비에 깜놀해요. 

닭강정도 맛있더군요. 

홍게찜도 맛있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에 딱히 추천은 안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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