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으로 도착한 소확행 가이드북과 책갈피, 스티커, 떡메모지 등등. 
엇 떡메모지가 없네여... 어디 갔지... 나중에 찾으면 올릴게용ㅠ 
챌린지 끝나고 써니측에서 선물해주신 식물!! 이 아이는 방치해도 물을 안 줘도? 물을 안 줘야 잘 산다는 사실!! 자기 몸 하나 돌볼 여력도 없는 ADHD인에게 딱 안성맞춤 식물입니다 너무 예뻐요~~ 
이대로 가다가는 도저히 글을 끝맺지 못할 것 같아서 일단 블로그 글쓰기를 눌렀다. 포부는 창대하게 행동은 누워서 머리로 생각만 하기의 전형이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우주정복 세계평화를 이룩했는데, 뒷심이 부족한 인간이다. 작가들이 왜 연재물을 쓰는지 알겠다. 억지로 정기적으로 강제적 마감 시간을 가져서 그 앞에 앉아 꾸역꾸역 써야 쓰이는 게 있나보다.
처음에 소확행 후기를 마인드맵으로 개요만 짜두었다. 그런데 너무 딱딱하고 전형적이고 재미없는 논설문 개요더라. 그래서 마음가는대로 쓰도록 내 개인의 특성대로 개요를 짜기 시작했는데! 중간에 일이 있어 끊기고 다시 쓰려니 새 가지(branch)의 첫 마디(node)에 안녕이라고 써있는데 이게 뭘 의미하는지 내가 이걸 왜 적은 건지 대충 할 말 다 한 것 같은데 뭘 더 추가를 해야할지 모르겠고 혼란스러웠다. 읽다가 똥 덜 싼 듯한 느낌으로 끊기면 중간에 끊긴 개요 탓이다.
그래서 지금 소확행 후기는 내용은 뭐 거진 핵심이 다 들어간 초고인데 타인에게 밝히기는 좀 그런 개인적 내용도 죄다 써버린 버전이다. 그걸 옆에 창에 두고 보면서 실시간으로 고쳐서 옮겨 쓸 생각이다. 미리 다 퇴고까지 해서 붙여넣기만 하려던 장대한 계획은 소확행 후기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이 시점이 되어서는 강제로 물거품이 되어야 했다.
아무도 안 궁금해하는 이런 tmi 따위... 하지만 항상 "네가 말하고 싶은 바를 잘 모르겠어." "무슨 생각으로 그런 tmi를 얘기하는 거야? 그런 건 아무도 안 궁금해 해." "네 발화의 목적이 뭐야? 노란아,,, 일기를 써보자."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본인은 국문과를 졸업하였으므로 이런 얘기들을 듣는 것이 비 굶는과생에 비해 2배로 모욕적이었다.) 살아온 내게 일상적인 일일 뿐이지 핫하-. 아니 무슨 채워야 하는 글자수가 있어서 억지로 쓰듯이 이것저것 쓸데없는 잡다한 내용들 다 쓰네 싶기도 하다. 그런 게 아니라 나는 그냥 투 머치 라이터일 뿐...
소확행의 의미는 원래 삶을 살아가면서 작게 얻어가는 행복이라는 의미이다.(맞나? 대충 그런 의미일 것이다.) 주말에 감자칩을 먹으며 시원한 에어컨을 쐬면서 영화를 보는 행복이라든지, 시X 비용으로 지른 전자기기로 즐겁게 게임을 하는 행복이라든지... 이 프로젝트를 주최한 SK 대학생 자원봉사단은 유행어와 같은 단어를 이용하되 그 의미는 바꿔서, 익숙함과 새로움으로 주제를 두번 환기시키는 좋은 제목을 택하였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실행-으로. 실행기능이 떨어지는 ADHD 환자가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몸에 익히려는 것이 결국 저것이 아닌가 싶다. 비슷한 의미로 에이앱발 사자성어 시어첫과(시작이 어려우면 첫단계가 과한 것이다)와 내가 발안하고 다른 에이앱 유저들이 사자성어로 만들어준 일나힘덜(일을 나누었는데 힘들면 덜 나눈 것이다)이 있다.
소확행 시행기간은 4주 28일로, 5월 8일 첫 OT부터 6월 5일 마무리 성과보고회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5회차 동안 1시간씩 자조모임을 가졌다. 후기를 쓰는 지금은 7월 말인데,,, 소확행이 끝나고 후기를 쓰는데 2달이 걸렸다. 내가 ADHD라는 것을 알게 된 게 작년 12월 초, 병원에 가기로 예약을 잡은 것이 1월 말. 병원 첫 방문 및 ADHD 확진일이 2월 초이므로 이것도 2달이 걸렸다.(난 사실 거의 알게 되자마자 간 편이라고 생각했고, 내 생각을 그대로 발언했으며, 의사선생님의 황당하다는 표정을 마주봐야 했다.) 나는 무엇을 실행하는 데에 2달씩 걸리는 인간인가? 고뇌가 든다. 대학생 때 학기초에 받은 중간 대체 과제물을 내야 하는 기간이 대충 1달 2~3주니 그 정도 걸리는 것 같다. 대학생의 과제 루틴에 적응해버린 건가?
정말 아무도 관심없고 나만이 혼자 읽으며 즐거워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 위에까지는 잡설이었으니 여기서부터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잡설은 중요하다. 일종의 글쓰기 전 뇌풀기 손풀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다시 절취선 ~~~~~
소확행으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내 감정을 스스로 알게 됐다'는 것이다. 나는 과거에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잘 모르고 그것을 폭발하듯이 분출하기만 했었다. 감정을 '느끼는', 혹은 감정이 '드는' 것과,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무슨 감정이 드는지 '알아차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몰랐다. 나는 내가 타인의 감정을 잘 못알아차려서 '나는 감정이 그닥 없는 인간인가?' 의문을 가졌었다. 그런데 기뻐도 슬퍼도 흥분해도 화나도 울고, 항상 사람들한테 술마셨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하이텐션인 내가 감정이 없는 편은 아닌데 참으로 이상하다 싶었다. 알고보니 앞서 말했듯이, 나는 감정을 느끼기는 정상적으로 느끼는데,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를 잘 모르고 분출할 줄만 알았던 것이다. 30여년을 넘게 이래왔으니 선생님이 나에게 '자기 감정을 (심판/판사처럼) '(가치)판단'내리지 말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라'고 조언해주시는 걸 듣고 처음엔 너무 실천하기가 힘들었다. 첫째로, 내가 스스로의 감정에 무뎌서 쉽게 지나온 깊고 부정적인 수많은 감정들을 다시 마주해야 할 상황이 너무 무서웠다. 둘째로, 내가 느낀 감정을 보고 판단내리지 않으면서도 계속 지켜보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막막했다. 예상했던대로, 과거의 장면들을 관객석에 앉아 제4의벽 너머 배우들이 연기하는 연극을 지켜보는 것 같이 회상했을 때에는 아무런 타격 없이 객관적 사건의 보고로서 선생님한테 술술 내뱉었던 이야기들이, 마치 최면여행하듯 당시의 나 자신이 되어 당시의 내가 느꼈지만 느끼고 있는 걸 알아채지도 못했던 감정들로 재현되자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판단을 내리지 않고 그냥 떨어져서 보기도 힘들었다. 어떻게 감정을 느끼는데 그걸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을 수 있지? 그런데 소확행의 감정지도는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소확행의 감정지도는 마치 갓난아기가 새로이 배우는 언어 같았다. 언어를 아직 모르는 아기는 배고파도 아파도 짜증나도 힘들어도 화나도 전부 울음으로 표현한다. 자신이 뭘 느끼는지 잘 모르고 그것을 개별로 표현할 줄도 모른다. 하지만 언어를 배우면서 하나하나 자신의 감정과 외부의 사물과 개념들에 대해 이름붙여서 구체화시켜 나간다. 감정지도도 감정에 무지했던 나에게 감정들에 하나하나 이름 붙일 수 있게 해주었다. 심지어 붙여줄 이름들이 너무 많았고, 하루의 어떤 순간마다 엄청나게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수많은 감정들이 꽃잎처럼 빠르게 피었다가 빠르게 지고 또다른 감정이 일어났다. 그 와중에도 어떤 감정은 오랫동안 지지 않고 남아있기도 했다.
게다가 감정지도는 나의 감정을 감정지도라는 언어를 통해 한차례 걸러진 시각으로 보게 해줌으로써 내 감정을 나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감정지도가, 내가 빙의된 과거의 현장을, 나에게서 떼어내어 스크린 영화 속 장면으로 옮겨준 것이다. 때로는 대상에 이름 붙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해결된다. 해리포터에서 볼드모트의 이름을 언급하길 꺼려하는 것이 오히려 그에 대한 불필요하게 과장된 공포를 키우고 부추긴다며, 그의 이름을 정확히 말하라던 덤블도어의 조언은 매우 옳았다.
ADHD 인지행동치료의 개략적인 요점은 할 일이 닥치면 실행능력이 떨어지는 ADHD인에게 떠오르는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들과 부정적 자동사고(여기에는 가짜 긍정적 사고도 포함된다. 대책없는 낙관주의라든지.)를 스스로 인지하여, 이를 무시하거나 긍정적 자동사고/감정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맞나? 내가 이해한 바로는 그렇다..) 이 자동사고의 오류를 수정함에 있어서 스스로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를 아는 것이 해결의 키포인트이고, 소확행 가이드북의 감정지도와 매일 쓰는 감정일기는 챌린저가 쉽고 자연스럽게 이 과정을 습득할 수 있도록 인도했다.
감정지도를 포함한 가이드북이 소확행의 한 축이라면, 소확행의 또 다른 기둥은 자조'모임' 그 자체이다. 근래에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얻은 교훈이 있는데, 타인과 함께 하는 것의 힘이 정말 엄청나다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 만날 지각하여 담임 선생님께 혼나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고 잠이 많아서 학교에서도 만날 자투리 시간만 나면 의자 여러개 붙여서 잠자던 나는 '학교 안 가고 학교에 오고 갈 시간과 에너지로 집에서 혼자 공부하면 더 효율이 좋을텐데' 싶었었다. 대학생 때도 학교 열람실에서 공부한 날이 4년 내내 통틀어 열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누가 곁에 있으면 거슬려서 공부를 못 했다. 이것은 시끄러운 것을 못 견디는 것과는 다른 것이, 타인의 시선이 불편하고 눈치가 보여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히 실행능력이 떨어지는 ADHD인에게- 그러한 '다같이 하는 것'의 시너지가 엄청나다는 것을 다년간의 독학 수험을 빙의한 놀자판을 접고 스스로 의탁한 관리형 학원을 다니면서 알게 됐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덜 엄격하다. 자비롭다. 관대하다. 나는 내가 학창시절 굉장히 조용하고 얌전한 학생이었다고 기억했으며, 관리형 학원을 다니는 대학생들 얘기를 듣고선 '아니 무슨 성인이 담임이 있고 출석까지 관리받아?'라며 정말 이해할 수 없어서 비웃었었다. 그러나 친구들 기억에 나는 남들 눈치 엄청 보면서 정작 눈치는 없어서 동시에 눈치 없는 말을 끊임없이 해대고, 약간 상또라이 외계인에, 주의력 부족해 만날 어디 다쳐오는 바보였으며, 그 비웃던 관리형 학원을 내가 다니고 있다.
공부 시간 동안 휴대전화를 제출하고 컴퓨터 모니터링을 통해 딴짓을 못하게 하고, 자면 깨워주고, 출석 및 지각을 체크해서 성실한 루틴을 익히게 하는 이런 것들보다도, 같은 시험을 목표로 다같이 공부하는 곳에 나도 전체의 일부로서 꼽사리 스며들어있어서 소속되어있다는 것이 엄청난 안정감을 주고 으쌰으쌰 기운나게 해준다. 심지어 두뇌 회전도 빨라져 메타인지가 좋아진다.
자조모임도 마찬가지이다. 인지행동치료를 혼자 시작했으면 세월아 네월아 이 후기처럼 또 시작하는 데에만 2개월 걸렸을 일이다. 실제로 아직도 도서관에서 빌리고 개인적으로 구매해놓은 인지행동치료 관련 책들을 다 못읽고 발췌독 중이다. 그걸 다같이 으쌰으쌰하면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을 통해 거울처럼 나 자신을 새롭게 되돌아보아 발전할 수 있고, 서로 공감해주어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으며, 서로 조언을 건네고 격려와 응원을 해주어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또한 개인이 혼자 시도하는 것보다 체계가 잡혀 있다. 혼자였으면 아직 책도 못 다 읽어서 인지행동치료는 아직 시작도 못했을 건데(지금도 다 못 읽음), 자조모임은 벌써 2달 전에 1달도 안 되는 기간동안 굉장히 알차게 압축적으로 해서 끝냈다. 매우 효율적이고, 체계적이다.
어쨌든, CBT(인지행동치료)의 요점은 스스로의 감정 및 사고흐름 파악과 이후 감정 및 사고흐름 수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억하자 시어첫과 일나힘덜! 내가 자동적으로 미루게 되고 무시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 수준이 아닐 때까지 일을 잘게 쪼개야 한다. 시작이 반이다. 일단 시작하면, 부담감이 사라지고 일이 의외로 힘겹지 않아 쪼개서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이 진행시키게 될 수도 있다. 물론 뒷심이 부족한 ADHD인에게 마무리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이따가 집에 가서 선물 받은 식물과 가이드북 사진과 여타 떡메모지 등의 사진을 첨부해 올려야겠다.(첨부완료)
와 다 썼따~~ 8월이 되기 전에 다 썼다 야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