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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인 줄 모르고 힘들게 공부했던 시간을 돌아보며...
Level 2   조회수 285
2022-02-25 17:18:46

(adhd인 줄 모르고 힘들게 공부했던 시간들과 진단받기까지의 과정을 작성했습니다. 매우매우매우 장문의 글이니 참고 바랍니다.) 


성인이 되어 @를 진단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냥 내 성격인 줄 알고 살아왔다. 

무수히 많은 어려움과 함께 어떻게 지금까지 자라왔을까 ? 


지금 생각나는 어렸을 적 나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사실 지금도 별로 달라진 건 없다... 그래도 지각은 좀 의식적으로 덜 하는 편.. ) 

1. 물건 어디뒀는지 잃어버리기 / 우산이나 손에 든 가방 지하철이나 버스에 두고 내리기 

2.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머릿속으로 딴 생각, 공상하기 / 책상 앞에 앉아서 잡 생각에 빠지기

3. 친구가 하는 이야기에 집중 못하고 갑자기 딴 소리 하기 /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다가 날 부르는 소리 못듣기 

4. 쉽게 욱하고, 말 한마디에 쉽게 흥분하기. 

5. 밤에 잠드는게 어렵고, 아침에 늘 늦잠 (학교 가야되는데 늦게 일어나서 아침에 집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6. 게임이나 소설에 빠지면 밤새 그것에만 몰두하기 

7. 약속을 아예 잊거나, 약속 시간에 매번 조금씩 늦기. / 학교 지각은 다반사. 개근상은 유치원이 마지막. 


이런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학교 공부를 잘 할수가 없었다. 

늘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지만 성적은 이상하리만치 오르지 않았고 점점 자존감은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를 수가 없었던 것이, 책상 앞에 앉아 나는 책을 보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무수히 많은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 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늘 다른 생각들로 가득차 있었고 공부에 집중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으니 늘 우울했고 부모님은 내가 걱정되어 정신과로 데려가셨지만, 그 당시엔 우울증만 진단받고 의미없는 약물치료만 받았다. 

내가 @인 줄을 당시 병원에서는 왜 알 수 없었을까?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전혀 호전되지 않았고 그렇게 흐지부지 치료를 중단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 나는 내가 게으르고, 의지가 약하고, 덤벙거리는 그냥 그런 사람으로 인식하며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대학에서는 예체능을 전공하고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내야 하는 일을 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내 성향에 정말 부합하는 일이어서 꽤 잘 해냈다. 

잘 된 작품들도 꽤 있었고, 인정도 받으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듯 싶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어 부업으로 사무직 회사생활을 병행해야 했다. 


진짜로 나의 생계를 책임져주는 회사 생활은 엉망진창이었다.

매일 5-10분씩 지각하고, 늦잠자서 아침에 회사에 전화해 결근통보를 하고, 중요한 일정을 놓쳐서 회사에 손실을 입히기도 했다. 

매일매일 해야 하는 반복적인 업무였고, 잘 해내면 티가 나지 않지만 실수하면 큰 사고로 이어지는 자리였다. 

반복적인 업무를 집중해서 하는 것이 힘들었고, 매번 제출기한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업무를 처리하곤 했다. 

와중에 꾀만 늘어서 데드라인 전에 급하게 마무리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 직장생활을 몇 년동안 지속한 내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실수 많은 나를 일 잘하는 직원이라고 생각해주셨던 회사분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지금은 든다. 


전공 관련 일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회사 생활을 병행해야 하는 것에 점점 지쳐갔다. 

회사에서 버는 돈은 전공 관련 일을 하기 위해 투자해야 했다. 

그러던 와중 학업에 대한 열망이 다시 피어났다.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생겼고, 이를 위해서 4년제 학위가 필요했다. 

학창시절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것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전공 관련 일을 중단하고, 오래 다녔던 회사에서 퇴사를 했다. 

그리고 편입 공부를 시작했다. (어쩌면 이렇게 결단하고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 덕분이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책을 펴는데 글자가 뇌를 그저 스쳐지나갔다. 분명 나는 앉아있는데 머리에 들어오는게 없었다. 

마침 코로나가 터져 집에서 공부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단 10분도 집중해서 인강을 보지 못하는 나를 보며 어린시절의 내가 생각났다. 

나는 결국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구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의지박약이구나. 자기비하를 하고 나를 나무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라서 이렇게 힘든 것인줄은 몰랐다. 

그저 이번만은 한번 나의 의지박약을 뛰어넘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기가 싫었다. 

다니던 학원에서 많은 나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망신을 받았고, 이래저래 자존심 상하는 일을 겪으며, 딱 반년만 견디고 해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들이 그렇듯, 소위 말해 'feel' 받는 날엔 그렇게 공부가 잘된다. 

순 공부시간 14시간을 찍고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일 분 일 초 아껴 공부에 과몰입을 한다. 

하지만 이 상태는 절-대 이틀을 넘기지 못했다. 며칠만 지나면 무기력증이 찾아온다. 

아. 무. 것. 도. 할 힘이 생기지 않는 시기다. 

이 시기에는 침대에서 절대 나오지 못했다. 

기본적인 일상생활인 샤워도, 자취방 청소도, 빨래도, 그저 다 귀찮아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그저 침대 안에서 맘 편하게 쉬지도 못하며 또 나를 자책했다. 

그러다 한 이틀 쉬고나면 다시 공부할 의지가 생긴다. 그럼 또 하루에 14시간씩 공부를 하는 패턴이었다. 


이런 패턴을 반 년을 지속하며 편입 공부를 했다. 

학원에서는 항상 중위권에 머물렀고, 수업시간에는 5-10분씩 늘 지각을 했고, 수업이 없는 날은 늦잠을 자기도 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시험이라도 보자 싶었다. 

시험장 가서도 딴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하며 기가 막혔고, 아침에 늦장 부리다가 어떤 학교는 시험을 못 보기도 했지만, 

어쨌든 힘겹게 수험생활을 마치고 서울의 괜찮은 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게으른 내가 이렇게 좋은 학교에 들어가다니 운이 정말 좋았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늦은 나이에 재도전하여 학창시절 이루지 못했던 것에 대한 성취감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학교에 들어가니 또 다른 헬이 펼쳐졌다. 

코로나로 인해 수업은 계속 비대면이었고, 수업을 틀어놓고 집중 못하고 계속 다른 짓을 해대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계속 나를 질책했다. 과제가 주어지면 전 날까지 손놓고 있다가 마지막 날에 급하게 하거나, 내 능력 밖이라는 생각이 들면 포기해버렸다. 

첫 학기 성적은 엉-망이었고, 나도 엉망이었다. 


그러던 와중 자기관리에 대한 영상을 보다가 우연히 성인 ADHD 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아니, 나는 내가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건줄 알았는데 이게 성인 @ 일수도 있는거야? 하는 생각에 충격에 빠졌다. 

동네의 모든 정신과를 찾아봤고 가까우면서 가장 끌리는 병원에 예약을 했다. 

한 달의 시간을 기다려 초진을 보았고, 풀 배터리 검사와 cat 검사를 받았다. 

검사결과를 보시더니 검사하는 동안 많이 힘들었냐고 물어보신다. 

성인 @와 그로 인한 우울증을 함께 진단받고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처음 약을 먹고 공부를 하는데, 영화 '리미트리스'에서 세상에 색깔이 생기는 기분을 느꼈다고 하면 비슷할까. 

수업에 온전히 집중을 했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겉핥기 식으로 공부를 했는지 깨달았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온전히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고, 

집안일도 미루지 않고 해내는 나를 발견했다. 

처음으로 운동을 꾸준히 했고, 

과제를 미루지 않고 '미.리' 제출했고, 시험 공부를 '미.리' 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약의 효과가 지속적인 건 아니었다. 

먹다보면 점점 예전으로 돌아가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약 먹는 걸 미루다가 결국 하루를 날린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그동안 자책해 왔던 것들이 

내 잘못이 아니라 @때문이었던 걸 알게 되어 더 이상 나를 미워하지 않아도 된 것이 너무 좋다. 

약물치료가 전부는 아니지만, 나의 의지만으로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을 자꾸 비하하게 된다.  

지금은 우울증도 함께 치료중이라 마냥 장밋빛은 아니지만 

앞으로 극복해내고 내가 만날 새로운 미래가 조금씩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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