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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6
Level 4   조회수 38
2018-01-26 23:23:13
요며칠간 아르바이트를 다녀왔다. 어떤 아르바이트인지는 자세히 말하면 안 되는 아르바이트다. 다만 이렇게만 말해두겠다.

1)예전에 갔을 때 @관련 문제로 큰 좌절을 여러 번 겪었던 아르바이트다. 친했던 사람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고, 나만 너무 어리버리해서 참...고통스러웠다. @라는 것을 진단받은 이후기는 하나, 스스로 인정하지는 않던 상태였다. 이유를 모르니 나는 왜 이러냐는 생각을 계속 했었다.

2)직전에 약을 먹지 않은 채, 친구와 함께 다녀온 아르바이트이다. 비교되어서 너무 힘들었다.

3)이번에 약을 먹고 다녀왔다. 이번에는 보조가 나 혼자였다.

  • 즉 실험군과 대조군이 조악하게나마 갖춰졌다고 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 목적은 단 한가지였다. 잘 한다는 말을 듣는 것. 일을 하는 짬짬이 글을 써서 기록을 남겼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지금 그걸 타이핑하면서, 다시 떠오르는 부분은 보충해서 써 보려고 한다.






첫 날.

하루만 해도 감정이 아주 높이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가만히 내게 주어진 1인실을 즐기면서 글을 쓴다. 잠들기 직전의 감정상태를 하루의 결론이라 본다면, 오늘의 결론이 우울은 아니어서 참 다행이다.

[쟤는 참 알바를 ~~하게 하네.]

오늘 방을 나오면서 출제실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다. 아마도 별로 나쁜 말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제일 중요한 부분은 듣지 못했지만... 오늘 나에 대한 평가를 둘로 나누면 이렇다.

1>어리버리("나 진짜 니 어리버리함에 감탄한다")=-악의 없는 이런 말에 끝까지 웃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일어날 힘이 되고, 사람들에게 인상도 나쁘지 않게 된다. 또, 나같은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하면 더이상 기댈 곳이 없으므로.

2>좀 쉬면서 해("너 어디가서 이렇게 일하면 안 돼 좀 들어가 이제.")=하지만 선생님. 저는 일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해서, 도움이 되는 느낌을 받는 그 자체가 저의 기쁨이 되고, 그러니 들어가기 싫은 것입니다... 노동자의 권익은 중요하지가 않아요...초과근무 시켜주세요...

1>2>로부터 결론. 3> 애가 열심히는 하는데...




시작은 이랬다. 기다리던 버스가 전광판과 다르게 오지 않았다. 나는 다른 버스를 새벽 다섯시 반에 타고 중간부터는 택시를 타서 시간을 맞췄다. 전전날 약효가 남아있었는지 미리 카카오택시를 알아보고 정시에 탔고, 그래서 늦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좀 얼탔지만...(차로 짐을 옮기는데 부딪치고 아주...) 차에 타고 도착지로 가는 동안 추측을 거듭해서 뒤이어 해야 할 일을 떠올려서 약간은 해낼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내가 이 센터에 처음 왔다는 것이고, 모르는 게 너무 많은 나를 이해해주고 맞춰주기에 이 분들은 너무도 단단히 결속된 하나의 팀이었다는 것이다.

약으로 캐치할 수 없는 병질(약도와 위치 대조하기, 운동능력)때문에 또 이상한 놈이 되었다. 약도를 받아, 해당 위치에 선생님들의 이름에 맞는 각각의 파일철을 놓아두는 매우 단순한 업무였는데, 나는 계속 헷갈렸다. 그걸 식은땀 흘리면서 했단 소리다.(이건 끝나면서까지 그랬다 ㅋㅋㅋㅋ) 몇 번씩 다시 놓는 사이 내 평가는 바닥을... 하하하. 예전이라면 주저앉았겠지만 그러기엔 우울의 강도가 약했다. 무엇보다 익숙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웃었다. 아마 멘붕한 건 보였겠지만. 내가 ADHD라고 인정하고(혹은 간주하고),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자 힘의 여력이 생겼다. 어쩔 수 있는 걸 할 여력 말이다. 어쨌든 쓰기 힘든 놈이지만 몹쓸 놈은 아니라는 평가까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좋았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시를 내려주신 분 덕에 끝까지 웃음을 유지했다. 웃기,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못하는 것에 대해서 인정하고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좋거나 나쁘다는 평가를 내리지 않기(다만 필연적인 인과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발악하기. 약은 많은 것을 한번에 바꾸지 않지만, 당장 눈 앞에 닥친 하나를 해결하는 내 패턴을 바꾸어주었다. 추론의 재료가 될 만한 요소를 잡아낼 수 있다. 예전에는 모든 것이 애매모호한 잡다로 느껴졌었다.

좀 더 자세히 써 보겠다. 사무실에서 차를 타고, 작업장으로 이동하는 도중이었다. 내리자마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것은 짐을 들고 차에 타야 했던 알파 주임의 짐을 빼 주는 것이었다(일단 이렇게 초점을 잡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나는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내려야 했다. 그러려면, 언제쯤 도착할지 시간을 어림해두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왼쪽으로 섬이 보였다. 나는 아마도 영종도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리자마자 짐을 빼 주었고, 사람들의 캐리어를 하나하나 모아서 밀것 위에 올렸다. 그리고 곧 다 쏟아버렸다. 아니 방향이 안 잡히더라고! 사람들은 불평하면서 자기가 자기 짐을 들고 가기 시작했고, 들것 위에는 고작 두개쯤만 남아있었다. 그런데, 입구에서 보안의 검문을 받지 않고 바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버려서... 아니 너 뭐 하냐는 말을 들었다. 이 센터가 처음인 탓이었지만 좀 슬펐다. 사람들은 아 얘 여기 처음이야? 하기 시작했고 부장님은 큰 한숨을 쉬셨다....(과장님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귀엽다.)

그리고 곧이어 앞에서 말한 약도 대조 작업이 시작되었고...거기서 포인트를 잃은 나는 층 두 개에 두 작업장중 어느쪽도 제대로 도와주지 못한 채 방황했다. 두쪽 모두에서 나를 끼우기 성가셔하는? 느낌이었다. 워낙 바빴기도 하고. 가르치면서까지 할 수가 없었겠지. 마지막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시를 내려주시는 한 분 덕택에(내가 없는 사이 나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졌던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런걸로 우울해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고맙다는 말을 몇 마디 들으면서 감정적으로 다시 설 수 있었다.




[둘째 날]

전날 참았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밀려와서 아침에 많이 우울했다. 의식이 다소 파편화되었고, 남긴 글들도 짧고 부정적이다. 문장을 구성하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0. 그러니까 ADHD에게 우울증이나 불안증 따위가 동반되는 것은 분명 이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느껴지는 두려움. 온갖 통제불가능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요소들에 대한 불안. 식욕이 많이 감퇴했다.

#1. 삶의 핵심적인 요소는 결국 자질구레한 것들에 있다. 가령 바닥에 너저분하게 늘어진 세면도구들과 화장실에 남아있는 변 냄새 같은 것. 그것들은 자연의 잡다함, 혹은 다양성에 결국 인간이 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드릅게 알려준다. 질서는 인공적이다. 물론 그 또한 자연에서 나왔다. 내게는 질서보다는 혼돈이 더 많이 보이나보다. 혹은 질서도 무질서하게 보이나보다.

#2. 세상 모든 @들이어 나에게 힘을...아, 나눠주지 않아도 좋다. 그냥 각자의 삶이나마 버겁게 유지하자.




셋째 날

어제는 반쯤 피곤, 반쯤 귀찮아서 쓰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는 글의 구절들이 떠오르는데 그런 걸 그때그때 수첩에 쓰고 있을 수는 없으니 방에 들어와서 재미있는 글을 쓰던가 그냥 자던가인 것이다.

약은 도움이 된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하나는 감정적인 면이고 하나는 일적인 면이다. 콘서타에서 고양감을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고양감이 곧 자신감이 된다.)? 군대에서는 이렇지 않았다. 평소에는 안 되는 추론이 가능해졌다. 단서를 잡아 하나에서 여럿을 아는 것이 가능해졌는데, 덕분에 업무 이해도가 1 올랐다. 하지만 일의 전체상을 파악하거나 순서를 아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사람의 얼굴을 외우는 것, 위치와 지도를 대조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그런 건 약으로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18mg은 9-13다. 36mg은 17시까지라는 느낌이다. 17시를 넘으면서는 점점 일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입술이 극도로 마르고, 식욕이 준다.(줄어서 일반인) 여기서는 주로 몸을 쓰는 일을(청소와 간식관리, 사무보조로 요약 가능하다.)하다보니 몸이 좋아지고 있다.

말귀를 알아듣는 것이 어렵다. 이문숙 교수님이라고 들었는데 임은숙이었다. 핵심은 이문숙이든 임은숙이든 나는 목록을 여러번 본 인간이고, 임은숙을 보면서 내가 잘못 들은 이문숙이리라고 추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떄 좀 긴장하고 있었다. 알파 주임님은 얼굴을 아직도 못 외웠냐고 하셨다. 음... 그러니까 문제는 이것이다. 청각 정보, 기록 정보, 시각 정보가 다 소용이 없었다는 것. 청각은 한국어 표준 발음법대로 임은숙을 이문숙이라고 들었다. 기록 정보에서 유추를 해내지 못했다(있는 그대로의 이문숙을 찾으려고 했다.). 시각 정보-그러니까 얼굴 정보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전역할 때까지도 사람들 얼굴을 이름과 매치시키지 못했다-즉 의미가 없었다. 자잘한 지시 하나가 이렇게 엉킨다. 촉이 없는 것이다.

일을 못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나를 이해해주려고 애쓰는 사람의 한계에 달한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로 힘들다.




이어서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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