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에 제 발로 걸어들어간다는 것 홀랑 조회수 87 2018-03-15 21:43:05 |
2월에 처음 정신과에서 @ 확진을 받았을 때를 포함해서, 이런저런 증상들로 정신과를 찾은 적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 그것을 감지하고, 의문을 갖고, 인정하고, 마침내 스스로 정신과에 향하는 것은 생각보다 몹시 부자연스럽고 불편하고 아이러니한 과정입니다.
다른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그렇듯이, 정신과 의사라고 항상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의 따뜻한 공감과 배려를 베풀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도 그럴만한 것이, 온갖 비슷한 고통을 토해내는 수많은 환자들 중에서 "증상"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구분해내서 정확한 진단을 내려야 하니까요.
어쨌든 여기서 "고유한 개인"인 나와 "환자"로서의 나 사이에 균열이 생깁니다. 아무리 오래본 친구에게도, 부모, 가족에게도 굳이 말해본 적 없는 깊숙한 얘기를 안면도 없는 타인에게 털어놓아야 합니다. 전자에게 할 수 있는 것 처럼 뜸을 들이거나 감정을 섞어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암묵적인 시간 제한이 있는 진료실에서, 안경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냉철한 눈빛을 마주치면, 정말로 그러기 어렵습니다. 그 의사는 내가 떠듬떠듬 늘어놓은 몇 마디를 듣고 몇 가지 논리적인 질문들을 합니다.
나는 이제부터 타인에게 내 자신이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불행한지"를 설득해야 합니다. 마치 회사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는 거물급의 투자자를 설득하는 것처럼요.
"ㅇㅇㅇ인 것 같습니다. ㅁㅁ증세도 조금 있으시고요. ㄹㄹㄹ 00미리 처방해드릴테니까 하루 두 번 드세요." 마침내 약을 받았습니다. 후련하지만, 어쩐지 조금 아쉽거나 속상하기도 합니다.
사실 예약을 잡는 것마저도 이보다 더 쉽지는 않습니다. 이번 2월의 경우를 말하자면, 문제는 검색으로 @에 대한 확신이 어느정도 생긴 다음부터입니다. 보통 어떤 병원을 가는지, 검사비가 예상 외로 비싸면 어떻게 할지, 그렇게 검사했더니 난 @도 아니고 이도저도아닌 뱅신인 거라면 어떻게 할지, 환자가 너무 많아서 다음 예약이 2달 뒤면, 전화를 받는 간호사가 말을 너무 빨리하거나 쌀쌀맞으면, 의사선생님이 나의 한심함을 비난하기라도하면 ... ...
이 모든걸 용기와 어느정도의 행운으로 넘기고 나면 실제로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숙제가 남습니다. 오후 4시인 예약에 3시에 기상하는 바람에 택시를 타고 간신히 도착합니다. 14,300원. 아, 돈 아까워.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토록 "가망없는 나"를 거둬서 살려보려는 것도 다름아닌 "가망없는 나"이니까요. 고장난 로봇이 스스로를 고쳐보려 하듯, 터무니없는 에러들을 일으키면서도 겨우겨우 작동해내고 있습니다. 딱하고 기특한 로봇입니다.
음-치키. 음-치키. 음-치키ㄴ.. 음-치킨...
치킨 맛있겠습니다.
오늘 야식은 양념치킨으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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