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8. 02 새벽에페니드 조회수 31 2018-06-02 02:02:11 |
#1. 언제나처럼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2. 힘들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다. 열심히 해서 힘든 게 아니라, 시험이 코앞이라서 힘든 거다. 그래. 열심히 하지 않은 걸 알면, 열심히 하면 된다. 뒤를 돌아보고 고통스러워하는 건 늘 쓸데없는 과정이다. 그런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왜. 괜히 내가 내가 아니니까. @인 내가 과정대로 깔끔하게 이루어지는 공부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덕지덕지 칠한 끝에 비능률의 극에서 뭔가를 콱 뛰어 잡는 게 이때까지 내 공부 방법이었으니까. 딱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단 걸 알게 되었다. 지금 나는 열심히 할 수 없다.
#3. 누군가와 말을 나누는 것이 무섭다. 갑자기 숨이 찬다. 주위에서 큰 소리만 들려도 그렇게 됐다. 가만히 있다가 왜 이러나 싶어서, 헐떡이지 않으려고 해도, 숨이 찰 이유가 없는데 숨이 찬 걸 어쩔 수가 없었다. 헛구역질이 밀려오더니, 콘서타를 복용해도 줄지 않던 식욕이 줄었다. 하루 한 끼를 먹는데 배가 고파서 먹는 건 아니다. 핸드폰을 보는데 부모님 사진에 눈가 주름이 보였다. 모든 것에 민감해지더니 주변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열심히 하기 힘들 정도로 뭔가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니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이 시험은 너를 망가뜨릴 거라고. 절대로 억지로 하지 말고, 살짝 부족한 선에서 공부를 멈추라고. 취미생활을 즐기라고. 밤 새벽까지 공부하지 말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천천히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라고. 꼭 운동을 하라고.
#4. 친구가 나를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변에서 보는 것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이 아니다.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이는 데는 유년기로부터의 일가견이 있지만(혼나지 않기 위해서), 결코 스스로가 성실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바로 지난 주에 친구가, 학위 과정이 끝날 때까지 공부를 손에서 놓으라고. 말했을 때도. 나는 설렁설렁 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얼마나 대충 하는지 친구는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5. 열심히 한 날은 내가 열심히 한 줄 스스로 아는가? 열심히 안 한 기분이 들었다고 그게 소용없는 하루었던가? 열심이고 자시고 내가 힘들었으면 그걸 풀어줘야 하는 게 맞는건데. 스스로 자기 목을 조르면서 성실을 입증하려고 하니까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제 정말 내 마음을 챙겨주지 않고서는 더 공부하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다.
#6. 최근에는 공부 외의 스트레스도 많았다. 시험은 가까운데 반장 일은 해야 하고. 과제도 해야 하는데 조원들은 카톡을 내내 안 읽더니 내가 발표하겠다고 한 걸 피피티까지 전부 다 니가 하겠다는 말 아니었냐고, 전날에 그러고. 난 또 그 평균연령 50의 조원들에게 카톡을 읽으라고 그거 안 읽는 거 잘못이라고 계속 안읽다가 이제와서 그 딴식으로 할거냐고 극딜 날리고.(나 분명히 내 성격 더럽다고 말했다. 선 넘으면 중간은 없다고.) '그분'은 선물을 보내셨는데 이제 존재만으로 나한테 스트레스가 되었고. (그냥, 제발 저한테 말 걸지 말아 주세요. 제가 너무 흔들리니까.) 과연 내가 2년 가깝게, 정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반장 일이, 의미의 흔적이라도 있었나 싶고. 어디서 뒷공론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싶고...
... let it go 가사가 정말 속시원하게 들릴 지경. I don't care what they going to say...
#7. 나에게 힘이 되는 것은 한 가지 사실이다. 언제나처럼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는 것. 늘 그래왔던 흐름이 다시 왔을 뿐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시기는 대체로 삶의 분기라는 것. 그걸 지금에서야 알긴 한다는 거.
여기서 어떻게 견디느냐가 챕터의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것 말이다.
#8. 무소의 뿔도 때론 부러진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돌보면서 조금씩. 꾸준히. 너무 열심히는 하지 말고. 대충대충. 정말 힘들면 콘서타 말고 다른 것도 좀 먹으면서 해 보자. 수고했다. 나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