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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 10
Level 4   조회수 24
2018-12-10 01:30:43
#1.

큰 나와 작은 나가 있는 모양이다.

힘들 때 아주 힘들 때 힘을 북돋아주는 음악이 몇 가지 있는데

그런 것들을 들으면 정신이 붕 떠오르며 큰 내가 된다.

가령 토마소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전쟁터에서의 인간성은 너무 가늘어서 부서질 것만 같고

대개 철이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찬란하다. 그리고 현실감각이 철저하게 결여되어 있다.

음악을 들었을 때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을 듣는다고 늘 큰 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음악을 듣고 등장한 큰 나는 늘 힘으로 충만하다.

그래서 덩달아 철없는 목소리를 내뱉는다.

"누구나 나 자신을 견디며 산다!"

"힘들게 버티면서 살아가면, 언젠가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거야!"

"세상엔 도울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 중에 누군가 내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겠지!"

 

#2.

"저기요. 정신차리시고요."

이것은 작은 나다. 보통 현실적인 일을 겪으면 나타난다. 사실 얘도 철은 없다. 내가 철이 없기 때문에.

가령 주위사람들을 멍하게 만들 정도의 덜떨어진 짓을 했을 때
(한 사람이 세 번 한 말을 못 알아들었을 때?) 머릿속을 잠식한다.

"일단 본인이 얼마나 찌질하고 간사하며 더럽고 치사하며 자기밖에 모르는지 좀 아셔야겠습니다."

사실 알고 있다. 나는 인정을 받고 싶은 거지, 결코 저런 일들을 성취하는 것 자체에 뜻을 두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살기 위한" 이유라서, 제대로 된 이유, 말, 답이 되지 못한다고도 생각한다.

나에게 어울리는 것은 좀 더 말초적이고 즉각적인 행복이다.

가령 고양이? 온천? 나에게 최적화된 집? 뭐 그런 거.

남을 배려하고 돕는다는 게 나에게 무슨 사치스러운 생각이냐고 생각한다.

무려 그러면서도 남을 돕지 않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가령 뭐 왕따당하는 애를 도와주진 않으면서 "아니... 나도 보면서 엄청 안타까웠어...!" 하는 사람들을 극혐한다.

인정받으려고 저런 목적들이 정말 내 것인 양 굴고 있는 주제에

딱히 그럴 필요가 없어서 안 그러고 있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그러면서 매일밤 노숙인 옆을 무심하게, 한 푼도 주지 않고 지나치지.

"오 그것은 결코 근원적인 해결책이 아니야."

 

#3

게다가 계속 살아도 비참한 일이 한가득일 것이다.

그럼에도 좋은 일이 있을 테니까 살아라. 그런 허황된 소리에

"아 그럴지도 모르지..." 하고 계속 산다. 말초적인 행복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동생한테 밥 해주기 친구랑 놀기 스스로 착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내기.

사실 이것들이야말로 고통의 원인이다. 계속 하기 위해 직장을 잡고,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힘든 이들을 돕지 않고 묵과하고 유리한 위치를 잡으면서,

좋은 줄기를 찾은 진딧물을 지향하겠지.

"그게 뭐가 나빠?(제대로 해 본 적도 없으면서)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그래 다들 그렇게 살기 때문에 사는 것 자체에 의미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도저히 그런 것들에 필사적으로 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살 자격이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는 일에 자격은 개뿔.

 

#4

가족이나 단체나 국가나 뭐 그런 것들도 나로부터 확장된 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범위를 확장?

오오 그런 것은 결코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해.

가족이 나의 확장, 인의 확장으로서 국가의 단초가 되는 것이라면

강간범은 어떻습니까 공자님. 강간범도 지가 강간한 씨가 나온 애를 보면서 뿌듯해하고

막 가정을 이루고 싶고 사랑도 하고,

때론 스톡홀롬 증후군인지 생존을 위한 합리화인지 몰라도 피해자도 그런 것이려니 살아가기도 하잖습니까?

그런 시절이 있었잖습니까? 막 그렇게 살다 돌아온 딸자식 더럽다고, (이젠 '나'가 아니라서?) 죽이기도 하고.

오오 그런 소위 생명력이라는 게 예로부터 종족을 끊어지지 않게 하는 힘 아니었습니까?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인다. 손해인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게 비대한 대가리와 비대한 생식기와 비대한 아가리를 흔들흔들거리는게 인간이라는 돼지고 그중에 니가 제일 더럽지 않느냐고.

그냥 다 터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죽지 않지.

 

#5

비번걸고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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