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3(2/2) 새벽에페니드 조회수 20 2019-01-03 22:0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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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젯밤 무작정 계획을 세웠다.
휴대폰이 없으니까 도중의 길을 미리 검색해서 봐두고, 환승루트를 생각하고, 걸어서 이동해야 하는 곳은 상상하면서.
친구가 살면서 영영 못 가질 것처럼 굴었던 그 바보같은 한정판 머그컵을 사러 아침에 출발했다.
공부하는 놈이 그런 걸 사러 간다는 걸 집에 알릴 수도 없었지만 거짓말도 하기 싫어서 5시쯤에 조심스레 집을 나섰다.
상쾌한 아침이었다.
미리 인쇄해 둔 계획표를 따라가면서, 부디 내가 갑자기 길을 잃거나 하지 않고
하루 10명인가 20명인가 한정이라는 그걸 좀 사게 해 달라고 먼저 간 놈에게 빌었다.
정말로 기적에 가까웠다.
부산역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길도 빙빙 돌며 30분쯤 헤매는 내가
지하철을 타고 새벽 ktx를 타고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를 따라(처음으로 공항철도를 헤매지 않고 탔다)
공덕을 거치고 홍대 입구를 지나 합정역의, 복잡한 딜라이트 스퀘어의 구불구불한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정말 1분의 유예도 없이 계획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계획하지 않은 것은... 가게 문이 열리기도 전에 20명 넘게 줄서있던 손님들...
음 실패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내가 마지막인지 나 다음이 마지막인지 한정판 머그컵을 받을 수 있었다.
하면 되는구나 싶었다. 이건 꼭 무작정 외운 영어단어가 시험에 나온 쾌감...이 아닐까 한다.
평소에 노력을 다소 무의미하게 여기는 나지만 보답받는 노력은 참 기뻤다.
그리고 합정역을 나와서 광화문으로 향했다.
또 한 명, 죽고싶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또 팔뼈를 다친 친구를 만났다.
1년 넘게 안 만난 사이인데 왜 엊그제 보고 또 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지.
실컷 수다를 떨었다.
경비상 오는 길에 무궁화를 탈 계획이었지만, 이번엔 계획을 어기고 KTX를 탔다. 조금 더 일찍 집에 가서 쉬는 게 공시생으로서는 맞는 것 같았다.
무리해서 아프면 정말 안되니까...
경산에 들러서 친구에게 머그컵을 줬다.
어쨌든 머그컵이야 별 게 아니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마음에 진실되게 행동하고 싶었던 것이다.
주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했다.
정말로.
#2
하루종일 유지했던 긴장이 풀리면서 부산 지하철에 도착하고부터는 거의 기절하고 말았다.
그래도 후회가 없었다.
바보같은 걸 사러 무리한 계획을 급하게 실행했지만 나 자신에게 떳떳했다.
과도한 희생이 불러오는, 동등한 보답을 받고자 하는 피드백에 대비하고 있었는데
그런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냥 행복했다.
#3
물론 자주 이럴 수는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