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4 - 술 취향 조회수 27 2019-01-08 00:51:04 |
에이앱에 글을 안쓴지도 한달 반이 넘어버렸다.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근황얘기나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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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스키모임
저번 달부터 친구가 초대해준 위스키모임에 초대되어 나가고 있다. 지난달에 이어 두번 쨰로 나갔는데 요번엔 친구가 몸이 안좋아 친구없이 혼자가려니 좀 뻘줌하긴 했으나, 초대받아놓고 안가긴 좀 그래서 결국 가기로 했다. 원래는 영어학원 스터디모임이었는데 우연히도 스터디원들이 모두 술을 좋아하고 대빵 형님들 두명(서로 친구임)이 집에 위스키를 수백병이 있고 유명 위스키온라인사이트에서는 네임드로 통하시는 고수이신지라 위스키모임으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지금 2년이 넘게 이어오고 있다고.. 보통 콜키지(일부 비용을 내고 식당에 술반입이 허용되는것)가 되는 고깃집에가서 형님이 공수해온 위스키를 같이 마신다. 보통 한 병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병을 가져오시는데 요번달에는 심지어 4병을 가져와서 블라인드테스트를 하자고 제안하셨다. 마셔본 위스키종류가 얼마 없는 난, 당연히 맞춘다는 생각보다 4개의 위스키 맛의 차이를 느끼고 내 취향을 찾는게 목적이었다. 다른 분들도 비슷했고, 어떤분은 즉석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서 각 번호의 맛을 상세히 기록하기도 했다. 위스키 잔 두개를 놔두고 1번<->2번을 비교해마시고, 1번을 다 먹으면 그 잔엔 3번 위스키를 채우고 2번<->3번과 비교하는 이런 식으로 쭉 4번까지 마셨다가 다시 1번부터 4번까지, 총 두 바퀴를 돌아 8잔을 마시는 일정이었다. 한바퀴 돈 상태에서 각자 각 위스키 맛이 어땠는지, 개인적으로 최애 위스키와 최악 위스키를 꼽았는데, 아니나다를까 나만 취향이 정 반대였다. 웃긴건 다시 1번부터 시음하는 두 바퀴째가 되자, 이구동성으로 처음 먹었을 때 그 맛이 아닌 다른 맛이 난다는 것이다. 1번뿐이아니라 4번까지 다 마셔봐도 마찬가지였다. 맛이 미묘하게 전부 바뀌어있었다. 어리둥절하여 분명 위스키는 그대로인데 뭣때문일까 생각했는데 그 때 위스키를 가져온 형님이 말하시길 4병중에 도수가 가장 낮은 것이 58도란다.. 젤 높은건 62도였나. 다들 60도짜리 4잔을 먹으니 취기가 돌고, 취하니까 미각이 둔해져 맛이고 나발이고 제대로 느낄수가.. 그때부턴 그냥 다들 '허허 역시 술은 취하면 다 똑같군여'하며 마셨다. 2차로 노래방을 갔다. 형님들은 노래부르시는걸 참 좋아한다. 사실 목이 아파 첫곡으로 그나마 부르기 쉽고 낮은 폴킴노래를 불렀는데 아니나다를까 분위기가 갑자기 갑분싸가 되었고, 그 다음부터는 '하늘을 달리다', '여행을 떠나요'등을 예약하고 삑사리가 나든 말든 탬버린을 들고 사회생활 모드로 들어갔다. 쏀 위스키도 마시고, 노래방에서도 맥주를 좀 마셨기떄문에 꽤 취기가 올라온 상태였는데, 요번에 힘겹게 석사를 졸업하신 분이 신촌으로 3차를 가자는 것이다. 사실 정말 집에 가고 싶었는데 오늘 3차를 가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같은 표정을 하고 있기에 마지못해갔다.. 결국 다른 분들은 다들 집에가고 나랑 그 분만 신촌의 어느 한 바에 서 또 술을 냅다 부어버렸다. 얘기를 들어보니 내 친구덕분?떄문?에 생각치도 못한 매우 좋은 대학교의 대학원랩실을 가게되었는데, 막상 가니까 너무 힘들고 자기는 내 친구처럼 잘나지못해 그정도로 못하겠고, 이제 졸업은 어찌어찌했는데 취직이 다가오니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인것같았다. 보니까 내 친구놈이 거의 떠먹여주는 수준으로 도와줬드라. 대단한놈. 사실 내 아는 친구들에서도 제일 잘 난 놈이긴하다. 그래서 자꾸 잘난 내 친구가 밉다길래(내가 보기엔 내 친구를 좋아하는 것으로 보였다.) 주위에 잘난 사람이 있는거, 그것도 나랑 친하다면 그건 엄청난 축복이라고, 지금 힘든 것도 어떻게보면 그 친구덕분에 한발자국 성장했기때문이겠지 않겠느냐 일단 그동안 고생많이 했겠지만 좋은 학교가서 졸업장딴건 평생남거라고, 뻔하디뻔한, 거기다 상대방이 원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얼추 둘러댔다. 사실 그 때 바텐더분이 추천해준 술이 너무 맛나서 거기에 정신팔려서 미안게도 그 분의 고민상담은 이미 내 안중에도 없었고 내 중추신경에서 나오는 대로 대충 짓거린것같다.(심지어 말할 때 그분을 보고 말하지도 않고 내 눈앞에 있는 위스키만 똘망똘망하게 바라보며 말했했다.)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다.. 그래도 위로를 받고 싶어 3차를 가자고 했던거일텐데. 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술이 넘나 맛있었는걸.. 술깨고 보니 그 만취한 상황에서도 술 이름 안까먹으려고 사진까지 찍어놨더라. 여튼 바를 나오니 새벽 3시반이 넘었고, 기억은 안나지만 어찌어찌 그 분을 택시 태워보냈던 거 같다. 신촌에서 새벽 4시가 다 되어가는데, 나의 집은 용인이고, 난 그 어느때보다 만취해있었다. 한 시간만 뻐기고 첫차를 타자는, 역시나 허무맹랑한 계획을 세운 난, 한시간을 어디서 보낼까 생각했다. 눈앞에 나의 모교가 보였고, 오랜만에 학생때처럼 동아리방쇼파에 널부러져 자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틀비틀 학생회관까지 걸어가 동아리방 비밀번호를 눌렀는데.. 후배님들 나 같은 노숙자가 오는지 어떻게 알고 동아리방 비밀번호를 바꿔놨드라. 혹시 내가 취해서 그런거 아닐까 몇 번을 다시 시도해봤지만 확실히 비밀번호는 바뀌었다. 어쩔 수 없이 학생회관 복도에 있는 기다란 의자에서 잠이 들었고, 두시간정도 흘렀을까 너무 추워 생명의 위협을 느껴 잠이 깨 다시 비틀비틀 전철역지 걸어갔고, 도중에 두 번은 내려서 속이 안좋아 화장실에서 거하게 속 한번 비워내고 나서야 집에 올 수 있었다. 어찌됬든 허무맹랑한 계획은 아니었던거다. 그리고 이 얘기를 다른 친구에게 말했더니, '난 31살이 되어 우울한데 여전히 21살처럼 살고있는 너를 보니 기분이 좋구나'라는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소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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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어떤어떤 글을 써야겠다고 맘을 먹고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쓰는 시간이 너무 오래걸린다. 어떻게 하면 빨리, 잘, 쓸 수있을까.
곧 새벽1시다. 낼 출근해야지. 오늘은 이쯤서 잘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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