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posts

명예의전당



글보기
잡담#6
Level 3   조회수 63
2019-05-14 00:17:32

룸메

회사 기숙사에서 룸메와 같이 산지 어언 2년이 되어 간다. 기숙사는 상가 3,4층에 있는 자그마한 복층 미니텔이다. 룸메와 처음 만나고 서로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룸메는 결벽증을 가지고 있었다. 성인ADHD와 결벽증이 룸메라니… 처음부터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아무래도 룸메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으려고 꾹꾹 노력하다보니 생각했던것보다는 트러블이 적었다. 평화로운 기간도 잠시, 결국 여름휴가 때 일이 터졌다. 고향이 먼 지방이었던 룸메는 일찌막히 집에 내려갔고, 나는 기숙사에서 혼자의 생활을 만끽했다. 혼자 소리 빵빵하게 틀어놓고 영화도 보고, 치킨도 시켜먹고/ 룸메가 없으니 당연히 방도 엉망으로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친구가 차를 끌고 내 집앞에 오더니 휴가인데 집에 박혀서 뭐하냐면서 1박2일정도 놀다 오자고 했고 그대로 슬리퍼에 옷만 걸쳐입고 여행을 갔다. 집 정리를 안해놓아서 찜찜했지만(심지어 먹은 치킨도 안치우고 떠났다ㅠ) 룸메는 늦게 올라올 테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갔다오니 집이 청소가 되있었고, 대신에 내가 널어놓은 빨래는 여기저기 바닥에 흩어져 뒹굴고 있었고 빨랫대에는 룸메빨래가 걸려있었다. 내가 들어오자마자 얘기할 것이 있다고, 도저히 이렇게는 형과 못살 것 같다고 했다. 아마 여름휴가사건이 도화선이 되었을 뿐 그동안도 많이 참으며 살아왔겠지. 많이 미안했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사실 잠깐은 빨래를 여기저기 화를 실어서 던져놓은건 좀 그랬었지만) 그 사건 이후로 그 전까지는 자는 곳을 복층과 1층을 달마다 번갈아 바꿔 살았는데, 자연스레 내가 복층에 살게 되었다.
그때가 기숙사 들어갔던 초기이니까, 그 후로 1년반이 넘게 그래도 큰 문제 없이 살고 있다. 1층 공동사용 공간에서 내가 살짝 어지럽혀 놓은게 있으면 룸메가 제대로 고쳐놓는다. 룸메는 약간 공간활용의 대가이다. 작은 공간에서 물건을 어찌 배치해야 효율적인지 정말 잘 알고 있다. 난 그러면 슬쩍슬쩍 룸메를 관찰하고 따라한다. 빨래를 이렇게 개면 되는구나. 물건 정리를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사실 어렸을 적 이런 기본적인 가정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좀 신기했다.(부모님욕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런 상황이 되질 못했다.) 변명을 조금 하자면 ADHD에다가 청소년기에 거의 혼자살다시피하고, 커서는 정말 혼자 살다보니 선천적, 후천적 쌍콤비네이션이 일어나 정리에 있어선 정말 잼병이다. 아무튼 지금은 룸메를 보고 많이 따라하다 보니, 룸메가 기분이 언짢을 정도로 1층공간을 어지럽히거나 하진 않는다.(내가 자는 복층은 엉망이지만) 음 그러니까 예전보다 조금 더 정리가 잘 되고, 좀 어지럽히더라도 “예측가능한 범위”내에서 어지럽힌다. 결과적으로 룸메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다만 룸메는 쓰레기 만지길 싫어하고 화장실 청소하기를 싫어한다. 아마 더러운 것을 만지기 싫어서 그런 걸까. 그래서 100%내가 다 하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쓰레기버리는 거나, 화장실 청소는 내가 조금 더 빈도가 많다. 문득 그래도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산다는 느낌이 들어 뿌듯했다. 방청소, 설거지는 룸메가 거의 하고, 나는 가끔 쓰레기를 버리고, 이따금씩 화장실 청소를 하고. 더위랑 추위에 조금 더 강한 내가 복층에 살고,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 잠에 빨리 들고 한 번 자면 깨는 법이 없는 룸메는 1층에 살고.(덕분에 가끔 늦게 들어가더라도 죄책감이 덜 하다.)

 

회사
3년차 징크스, 3년차 징크스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어느 정도 일이 손에 익고, 업무라는 것이 쳇바퀴돌 듯 지루하게 반복되다보니 정말 일하기 싫다..라고 쓰고 보니 입사하자마자 그랬구나.. 아무튼 처음 입사하고 1년 정도는 회사욕을 엄청 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그러질 못하겠다.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랑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고, 야근도 많이 없어졌고. 사실 편하게 다니는 것 같다. 그리고 이직 생각을 했었는데, 내가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운이 좋게도 사람들도 전부 유하고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날 열심히 한다고 좋게 봐주는 것 같다. 일 못하는 것의 최대 장점은 마치 일을 엄청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10분이면 끝날 것도 1시간에 걸려하니까/ 최근 @증상이 조금씩 더 심해져서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것은 물론이고, 사고도 종종 친다. 최근에는 여러 사람이 샘플 신청한 것을 내가 대표로 택배를 받았는데, 박스 안 보호용 스티로폼 깊숙히 숨겨 있던 샘플 한개를 확인하지 못하고 그대로 박스를 버려버렸다. 하필이면 오늘 꼭 필요한 샘플이었고, 오전에 버렸는데 오후에 알아차려 이미 청소아주머니께서 쓰레기를 다 수거해서 쓰레기창고에 버려버린 후였다. 차라리 내가 신청한 샘플이면 그나마 괜찮은데, 다른 그룹원이 신청한 샘플이었다. 우선 솔직하게 상황을 말씀드리고(당황하시던 그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다시 한번만 더 찾아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쓰레기장에서 목장갑을끼고 수십개가 넘는 쓰레기 봉투를 한 시간을 뒤졌다. 뒤지는 순간에도 쓰레기봉투가 대포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드라. 결국 답이 없다고 생각되어서 포기하고, 안된다는 걸 샘플업체에 사정사정해서 사비로 퀵으로 받아서 드렸다. 아무튼 요새 너무 정신이 없는데 많이들 이해해 주신다.
가끔 내가 하소연을 한바구니 하면, 윗사람들은 너 정도면 아주 잘 하고 있는 거라고 말씀하신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패닉이 와서 일을 거의 못했는데, 글을 쓰며 내일은 빡일을 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친구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 연락하는 친구가 정말 별로 없는 편이다. 그래도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고맙다. 생각해보면 정말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한 적이 별로 없다. 혼자 있는 게 너무 익숙해서. 그래도 못난 나랑 술 한잔하겠다고 연락하는 것이 고맙다. 이따금씩 내가 혼자 서울에서 영화보고 있는 것을 아니까 집 근처 사는 친구는 서울이면 어짜피 자기 집내려가는 길에 태워다 줄 테니 집에서 술이나 한잔 하고, 서울사는 친구는 서울이면 와가지고 술이나 한잔 마시고 자고 가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내가 먼저 연락한 적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정기적으로 만나는 듯하다. 대학교시절에도 그랬다. 아버지 급성백혈병소식을 듣고 다시 나락에 빠져서 한 5일동안 다른 사람 연락을 받지도 않고, 밖에 나가지도 씻지도 먹지도 않은 채 누워서 천장만 봤었는데 친구가 직접 와서 엉망인 집 청소까지 하고, 날 끌고 나가서 밥도 맥여주고 했다. 언젠가 나랑 술을 먹으면 재미도 있고 위안도 받는다는 말을 했었는데 진심인 진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그 외 호의들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호의를 받고 자랐다. 초등학교 때 다니던 문방구에서는 매 번 외상을 해도 웃으며 대해주셨고, 중학교 때 컴퓨터학원 선생님은 부모님이 돈이 없어 학원을 못낸다고 말했는데도, 돈은 걱정하지말고 재능이 있으니 학원보내라고 하셨다. 물론 난 예외없이 호의를 져버렸다. 초등학교 때 문방구에서 간식거리를 훔치다가 걸렸고, 프로그래밍공부는 나 스스로 그만두었다. 그 이후로 나는 처음보는 데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을 조금씩 피하기 시작했다.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신촌에서 새벽 아르바이트를 다니던 시절, 매번 먹던 토스트노점에서 어느샌가부터 토스트를 하나 사면 두개를 주셨는데, 나는 그 후로 그 가게를 내내 피해다녔다. 부담이 되는건지.. 실망시킬까봐 두려운건지 나도 모른다. 어느 순간 호의를 많이 피해다니게 된다. 아무튼 내가 그래도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며 살고 예전보다 덜 압도되어 사는 데에는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희망이 없던 취업준비생 2년차시절, 도저히 집에는 못 있겠고, 신촌에는 나와 살 돈은 없었는데, 그리 친하지도 않았던 여자동기가 자기 제주도로 파견근무 간다고 자기 자취집을 빌려준 적이 있다. 관리비만 내고 신촌에서 6개월가량 취업준비를 했고, 그 해 난 취업에 성공했다. 아직도 방키를 주며 환하게 웃으며 나한테 말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야, 저번에 내 친구 취업준비생 OOO도 내가 방빌려줬는데 취업 성공했어. 너도 요번엔 꼭 될꺼야!” 고등학교 수능이 5달정도 앞두어 있었을 때, 누구나 그랬듯 한참 공부도 안되고 힘들었다. 그 친구는 내 어두운 얼굴을 보더니 “이거 욕구불만이네 이새끼”하더니 선심쓰듯 가방에서 CD한장과 작은 물약을 주었다. 알고보니 당시 핫하다는 야한 동영상을 가득 담은 CD에다가 이상한 젤..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 놈도 어지간히 미친놈이었던 것 같다. 여튼 이 것도 호의니까.. 그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됬든 난 내 기대에 비해 수능을 잘 보았다.

 

선생님
두 세달 전부터 정신과 선생님과 더 이상 ADHD 얘기를 잘 나누지 않은지 오래됬다.(나누어도 한 두마디 정도?) 처음에 우울증약도 같이 처방받았었는데 선생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난 우울증은 아니라는 것에 서로 합의하고 약을 뺐다. 다만 두세달 전부터 반복되는 대화는 이렇다. “취향님은 삶에 낙이 너무 없어요.” 그리고 나서 지긋이 날 5초정도 보시더니 “그래도 취향님은 생각하고 계신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에요” 사실 요번에 패닉와서 그렇지, 그 전까지 나름 회복되어 혼자 잘 살고 있었는데, 왜 낙이 없다고 하시는지 이해가 안 됬었는데 이제 좀 왜 그런 얘기를 반복해서 하셨는지 좀 알겠다.

 

영화
“우리는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고 우리 자신의 일부를 없애버리려고 한다. 그러면 서른 살쯤 되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인연에게 더 내어줄 것이 없게 된다. 기억하렴, 우리의 마음과 몸은 단 한 번만 주어진단다. 바로 지금 네가 느끼는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지 말고, 네가 느낀 그만큼의 기쁨을 잘 간직하렴”
“인생에 있어서 강해지는 것보다 강함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고, 약해지지 않으려는 것보다 약함을 느껴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을 알고 있다”

각각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 콜미바이유어네임과 인투더와일드의 대사이다. 나는 어느 것도 느끼기를 회피했고, 결국엔 방치하다가 큰 병을 얻었다. 하필이면 나이가 서른이기도 하고, 요즘들어 내 마지막이 인투더와일드 주인공과 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정말 오랜만에 발작과 같은 패닉이 찾아왔다. 그래도 다시 한번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고, 감사함을 전해야지. 분리수거를 하며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CD를 선물해준 친구한테 정말 오랜만에 먼저 전화를 했다. 야근하고 술한잔 했단다. 이번 주 토요일에 인천에서 보기로 했다.

 

그리고 번개 후기.
제가 상태가 좀 많이 메롱이라.. 뚱하게 있어서 말을 많이 못 나눠서 아쉽네요ㅠ 다들 너무 좋은 분들이신것같아요!
우선 숙면님, 먼 울산에서 서울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ㅠ 회사생활.. 같이 파이팅 하시고 그 땐 말씀 못드렸는데, 세운상가에서 틀어준 노래 너무 좋았어요. 노래랑 풍경이 너무 좋아서 넋이 나가있었던.
그리고 성실님은 온라인에서만 말씀나누다가 실제로 뵈어서 좋았습니다. 정말 듣던대로 어머니 같은 훈훈함과 친절함을 가지고 계셨던.. 그리고 여러가지로 좀 죄송하네요. 하시는 모든일 잘 되시길.
유그루님.. 정말 선함의 아우라가 밖으로 풍겨나오는 사람은 오랜만에 봤어요. 모임끝나고 일까지 가셔서 피곤하셨을텐데 휴일날 푹쉬세요!
쿼츠님은 이런말씀이 실례가 될 것 같지만.. 뭔가 밥을 실컷 사주고픈 동생을 보는듯했어요ㅋㅋㅋ보기만 해도 흐뭇 그리고 랩 정말 최고에요! 노래방에서 그저 감탄했습니다.
같은 구에 사시는 아이나님도 반가웠어요! 저 회사사람 제외하고 같은 구민 처음 봽네요/ 혹여나 제가 그쪽으로 이사가면 지나가며 마주칠수도..
홀랑님은 두 번째 뵈었는데, 볼 때마다 에너지를 얻어갑니다. 치킨집에서 맥주 넘쳤을 때 표정이 잊혀지질 않네요/ㅋㅋ
헤헤헤님도 두 번째 뵈었는데, 사실 제가 아는 지인 한분을 너무 닮으셔서 볼 때마다 흠칫 놀랏.. 어서 다같이 우울에서 벗어납시다!

현님은 잠시 뵈었지만 훈남삘이 가득했던걸로 기억해요.

 

포함해서 모든 에이앱분들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