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비가 내리는 날 새벽에페니드 조회수 51 2019-07-10 11:22:39 |
어제 하루가 너무 길었다.
한 것도 없이 누워있었지만 나는 계속 나와 싸워야 했다.
우울은 슬프다 슬프다 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안 돼. 넌 안 돼 하고 말하는 자의적인 판단이었다.
"이번에는 마킹, 다음에는 성적. 계속 그렇게 너는 실패할 거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군대. 어디서든 너는 느렸고 답답했고 적응했다기보다 기간이 끝날 때까지 그모양이었을 뿐이다. 공시가 실패한 것이 아니고 니 인생이 그럴 뿐이다."
이런 생각들이 계속 들었다. 나는 차근차근 반박했다.
"하지만 대학교는 성공적이었는데."
"그렇지 공시가 실패한 것이 아니지.
세상 어디에 "공시"라는 단일한 대상이 있어?
이번 시험 다음 시험 계속 시험은 있고, 지속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 때, 스스로 놓아버릴 때 실패에 도달하는 거지.
내가 성적이 안 돼?
가망이 없어?
다른 일도 할 수 있으면서 공시로 도피하고 있어?
내가 일하지 않고 있는 게 집에 부담이 돼? 나 지금 일하고 있고, 이게 내 실수에 대한 내 책임이다. 예전엔 어림도 없었는데 이제 되잖아.
다 아니야. 너희는 판단인 척하는 감정이다. 나는 지금 내가 생각해서 가장 효율적인 길을 걷고 있어."
그러나 판단은 내가 직접 해야 하는데 감정은 무슨 야구공 쏘아내는 기계처럼 나를 공격했다. 이걸 멍청한 자해라고 부르고 싶었지만 그건 비겁한 자기비하였다. 저것 역시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러니 지금 몸이 무겁고 밖에 나가기가 덜덜 두려워도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저것도 과정이었다.
나는 공부를 포기하고 밖에 나와서 걸었다. 에이앱에 글을 쓰고 싶었는데 에너지가 부족했다. 벽돌길의 벽돌, 맺힌 빗방울을 만지면서 이것들이 너를 공격하지 않는다고 나에게 계속해서 말해줘야 했다.
*
꼬박 걷다가 일할 시간에 가까워졌다. 나는 빨리 목욕탕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다가, 20분쯤 남자 다시 두려워졌다. 매일매일 내가 나를 자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클레임이 있었다. 몇가지는 받아들일 만했고 몇가지는 말도 안 되는 디테일이었다. 나는 전자에 대해서 아주머니를 비난하지 않으려고, 후자에 대해서 나를 비난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밖에서 아주머니가 손님한테 신경질을 내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이 물었다.
지금 됩니까?
여기 뭐라고 써있어요?(20시까지 합니다 라고 되어있음)
지금 7시 40분인데...
20분 안에 하실 수 있어요?
아니 그건 좀...
그럼 되겠어요 안되겠어요?
세상에 저건 병이었다. 내 우울과 다르게 밖으로 뿜어지는 형태일 뿐이다. 그러니 내가 내 우울에 비난으로 힘을 더하지 않듯 아주머니의 저 병에도 비난을 더하지 않을 수가 있었다. 후자가 더 쉬웠다. 나는 가끔 이렇게 사람 전반이 다 불쌍하게 느껴진다.
위층에서 듣고 있던 아저씨(아주머니 남편)이 나와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서부터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물때를 닦는 일은 공부랑 별로 다를 게 없었다. 하루라도 게을리하면 다음날은 짙게 망각의 때가 껴있고 그걸 닦느라 다른 걸 못하면 다음날은 다음날의 때가 껴있어서, 하나를 완전히 하는 것보다 전체를 지나가듯이 하는 게 중요했다. 내 우울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공부에 집중한 만큼 나는 내 우울을 외면했다. 그러니 모든 것이... 공부고 청소고 필연적인 과정들이었다.
일이 끝나고 맥도날드로 왔다. 슬픔을 가장 효과적으로 중화시키는 것은 소비였다. 돈이 있어도 햄버거에 8000원은 아까워서 먹지 않았던 1955세트를 시켰다. 동생한테 전화를 했는데 오랜만에 목소리 들은 건 좋았으나 귀가 아플 정도로 말을 많이 했다. 오 주님. 동생은 TMT에요 그래도 ADHD는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그럼 계속 들어주거라.
나는 내가 보지도 못한 영화 기생충 스토리를 전부 알고 말았다. 약간 짜증이 났는데 문득 하루 전체를 지배하던 먹구름이 옅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비가 내리는 만큼 구름은 옅어지고, 그래서 슬픔이가 인사이드 아웃에서 중요하며 그래서 이야기의 카타르시스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
과연 내 삶의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그럼 일단 계속해야겠지. 힘이 닿는 만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