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유전적 요인 때문에 ADHD일 수도 있다는 글을 읽고서, 떠오른 얼굴이 있다. 아빠.
아빠는 한 직장에 오래 다닌 적이 없다. 막연히 '잘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장기적 안목없이 몇 번 사업을 벌였지만 전부 오래지 않아 실패했다. 아빠 생애에서 마지막으로 벌였던 사업은 빚 문제 때문에 집에 차압 딱지가 붙기도 했다. 취미 또한 진득하게 잡은 것이 없다. 그나마 있다면, 고스톱 게임과 낚시 정도. 내가 이십대 초반 혹은 중반이었을 때, 아빠가 한자 쓰기를 연습하고 싶다고 해서 <천자문 따라쓰기> 책을 서점에서 사다 줬더니, 한 열 페이지쯤이나 따라 쓰고 말아서 엄마도 나도 혀를 찼다. 계산은 곧잘했지만 금전 감각이 부족했고, 도박 중독이라 항암제 때문에 기력이 쇠하기 전까지 경마장에 갔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하고 싶은 거 실컷 해보라고, 엄마가 아빠를 데리고 경마장에 갔을 때 냉소했더랬다. 충동적이었으며, 닥치는 대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고(그러나 아빠 당신은 위기해결 능력이 없어, 매번 엄마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외모는 차분했지만 머릿속이 산만했고, 제대로 다 쓴 노트가 없었다. 그 외 기타 등등.
아빠는 내게 인내심이 없고, 무능력하고, 어른이자 양육자답지 못한 사람일 뿐이었다. 돈 문제 때문에 가족을 곤경에 빠지게 한 아빠를 원망했고, 아빠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가족 중 애도가 가장 빠르게 끝난 것도 나였다. "이제 정신 차리고 살게." "노름 그만 해야 하는데." 이런 식의 다짐을 가족들 앞에서 할 때마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왜 할까?'라고 생각했다.
ADHD의 특징들과 아빠의 특징을 대조해보고는, '왜 아빠는 엄마와 결혼해서 내게 ADHD를 물려줬나' 같은 원망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빠에 대한 연민이 들었다, 그것이 용서는 아니지만. 당신도 제어하기 힘든 특성 때문에 한평생 힘들었리라 짐작했다. 아빠가 하는 다짐들은, 내가 하는 다짐들과도 비슷했으니까.
그 때문일까. ADHD 확진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소를 찾았을 때, 속을 게워내듯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 전에는 산소를 찾아도 무덤덤했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