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터 정신과에 가보고 싶었고 드디어 가봤을 때, CAT 검사 결과에선 내가 주의력 부족보단 충동성이 두드러지는 편이라고 나왔다 실제로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 것 같다
마트 가면 이 물건 저 물건 눈에 띄는 게 있으면 일단 담고 봤다 공부하겠다고 책 펴놓고 보다가 유튜브에서 이거 보고 싶단 생각이 들면 주저하는 것도 잠시, 결국은 영상을 봤고, 낙서가 하고 싶어지면 낙서를 했고, 졸리면 버티지 못하고 그냥 잤다
길 가다가 멀쩡한 가게를 부수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달리는 차에 뛰어들고 싶단 생각도 했었다 그냥 내가 벌일 수 있는 대로 깽판을 다 벌여놓거나 돈을 펑펑 쓴 뒤에 다 끝내버리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다들 생각만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강박도 나를 힘들게 했다 어릴 땐 행동으로 나타났지만 크면서는 눈치가 보여서 그런지, 생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뭔가에 집중하고 있거나 특정 단어나 이미지를 봤을 때, 또 끊임없이 생각이 이어지는 와중에 갑자기 부정적이고 무서운 생각들이 불쑥 침투할 때가 많았다 한번 이러면 이런 생각들을 쫓아내는 데에 에너지를 쏟아냈다 일부러 즐거운 상상을 하거나 완전 다른 인물을 떠올리는 등 부정적 생각들을 쫓아내려 했다 하지만 이럴수록 부정적인 생각들이 더 강하게 각인되었고, 또 그걸 내몰아내려고 또 에너지를 쏟길 반복하니 금방 지쳐버렸다
그렇다고 그 생각들을 오롯이 떠안기는 힘들었다 뭔가 그 생각들을 버리지 않으면 실제로 나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서 너무 불안했다 당연히 공부에 집중이 될 리가 없었다
평상시에는 괜찮았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매일 매순간마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누가 내 뇌 속에서 반복재생 영상이라도 틀어둔 것 마냥 노래가 끊임없이 재생되었다 어떻게든 끝내보려 해도 어김없이 다음 구절이 떠올랐다 이것만 있으면 다행이었지, 그냥 생각이란 것 자체가 끊이질 않았다 현재를 걱정하고 다음은 미래를 걱정하고, 이렇게 한 생각을 끝내면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마땅히 할 생각이 없으면 머릿속에서 지금 내 행동과 감정들이 소설처럼 서술되곤 했다 생각이 흘러넘쳐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라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었다 역시 여기에도 상당수의 에너지가 들어갔고, 그래서 더더욱 지치곤 했다
그래서 병원에 가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콘서타, 플루옥세틴 등 약을 먹고 나서부턴 위의 증상들이 줄었다 활력이 돌아왔고 텐션이 올라가면서 약이 없었으면 짜증내거나 한숨 쉬었을 일들도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릴 수 있었다 끊이지 않던 생각들이, 마치 지우개로 지워버린 것 마냥 사라졌다 충동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으나 상당히 줄어들긴 했다 밖에 나가는 게 귀찮아서 집에만 박혀있곤 했는데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하게 되었다 손 놨던 공부도 다시 시작할까 싶었지만, 여태 힘들었던 걸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강해서 공부까진 못했다
여러 모로 약의 효과를 봤으나 부작용도 있었다 식욕이 많이 줄어서 밥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속쓰림과 메쓰꺼움이 심해서 밥을 억지로라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낮에는 괜찮았으나 밤이 되면 불안과 우울이 찾아와 이유 모를 불안감에 눈물이 조금 나기도 했다
결국 속이 쓰린 걸 커버하기 위해 내과에서 위장약을 따로 처방받았다 위 내시경을 받아보니 내과 선생님이 약 때문에 위장이 상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약을 약으로 덮는 건 권하고 싶지 않으나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어쩔 수 없다고도 하셨다 지금은 이런 일 때문에 정신과 약은 잠시 멈춘 상태지만 곧 다시 복용하게 될 것 같다
언제 올지 모르고 애초에 올 수는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약의 도움 없이도 잘 지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나도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위장이 갖고 싶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