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에서 업무를 하면 드라마틱하게 달라질 줄 알았다. 뭐 원래 내가 일을 못하는 직원은 아니었지만 덜렁거리는건 별로 변하지 않았다. 실수로 약을 안 먹고 출근한 적이 몇번 있는데 업무의 질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일을 하다가 계속 간식이 땡겨서 이것저것 주워먹으면서 일했다. 약을 반드시 먹고 가리라!! 하고 아침에 콘서타를 들이키고 출근한 날, 평소보다 졸리지 않았다. 업무가 좀 머리에 들어와서인지는 모르지만 눈앞에 업무가 밀려 있고 정신없이 얽혀 있어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일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밀린 일을 더 빨리 처리하게 된건 아니다. 밀린 일에 대해 무감각해졌다는게 맞는 말인것 같다. 그래서 그냥 좀... 나중에 처리하면 어때? 난 지금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을 먼저 처리하고 나서 할거야! 라는 마인드로 일을 했다. 업무 중요도에 따라 먼저 할일과 나중에 할일을 구분하고 먼저 할일에 몰두하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이번엔 철저하게 차단할 수 있었다. 뭐 그랬다 할지라도 먼저 할일을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한 것은 아니었다. 속도는 비슷했다. 난 원래 업무수행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아니어서인지 그냥 하던대로 일했다. 밀린 고객 상담을 오후에 처리하기 시작했다. 참 신기한 일은, 분명 약을 안 먹은 날은 전화 응대시 상대편이 짜증나고 화내는 일이 더러 있었고, 그 사람들이 재차 전화해서 따지기도 했는데 약을 먹고 나서는 내 마음이 쫓기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좀더 말투가 여유로와졌고 고객도 결국 고맙다 하고 전화를 끊게 된다는 거였다. 무슨 맥락에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랬다. 그래도 난 결국 봐 달라는 편의는 다 봐줬다. 난 회사의 이익을 위해 내 의견을 관철하지는 못했다. 콘서타가 마법의 약으로 추앙받는 간증(?)을 많이 듣는데, 결론을 보면 크게 달라진 바는 없었다. 다만 과정이 좀더 부드럽고 편안하게 흘러갔다고 해야 할까? 불안이 야기하는 수많은 생각이 삭제된 느낌이다. 아 하나 더 추가하자면 점심식사를 굶고도 전혀 배고프지 않아서 누가 제발 먹고 일하라고 준 바나나만 먹고도 입맛이 당기지 않았다. 주전부리에 전혀 눈이 가지 않았다. 약을 먹고 제일맘에 들었던 현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