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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을 자격이 있긴 한 걸까
Level 2   조회수 176
2022-12-02 15:23:11

얼마 전 마지막 출근을 했을 때. 정신이 없는 채로 출근을 하다가 버스에 모자를 두고 내렸다. '새로 산지 얼마 안 된 거였는데... 별거 아닌 일에 긴장하다가 모자나 잃어버리고... 내일부터 백수가 될 텐데 이렇게 멍청하고 정신이 없으면 앞으로 대체 뭘 하며 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출근하는 내내 좌절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약 2주 만에 만난 회사 사람들이 나를 보곤 하나같이 '그 사이에 왜 이렇게 말랐냐'고 말했다. 요즘 밥을 먹는 양이 많이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까 밥이 잘 안 들어가는데, 날이 덥다 보니 먹는 양이 더 많이 줄었다. 먹는 양이 줄다 보니 기립성 저혈압도 오는 거 같고 거울로 보기에도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몸을 생각해서라도 더 먹고 싶은데 꾸역꾸역 먹다 보면 살짝 음식이 올라오고 토할 거 같을 정도로 삼키기가 힘들다. '살아오면서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요즘 정신 상태나 기분이 좋지 않으니 밥맛이 날 리가 없다.


수면 패턴은 더 엉망이 됐다. 약을 먹어도 두 시간 넘게 뒤척여야 겨우 잠에 들고. 그나마도 여러 가지 꿈을 꾸면서 얕은 잠을 자곤 한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낮에도 몸이 피곤하고 불안과 우울감이 몸을 무겁게 해서 계속 침대에 눕게 되는데, 이때 짧은 꿈을 꾸면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게 된다. 우울 불안이 온몸을 경직시켜서 낮잠을 자면서도 가슴이 조여오고 몸 곳곳이 불편해서 인 것 같다. 결국 낮에도 밤에도 편히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다. 애초에 숙면이라는 걸 취해본 지가 한참 됐지만 몸이 긴장되어서 매일 잠을 자다 깨다 하는 것은 처음이다.



정신이 몸을 약하게 하고 몸이 약해지니 정신도 더 흐트러지고 흐트러진 정신이 몸 관리를 더 어렵게 한다. 마치 우울 불안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사회생활을 못해서 상황이 어려워지니 그로 인해 우울 불안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처럼. 또 다른 악순환이 생겨난 거다.


예전에 어떤 전문가가 '밤에 잠을 잘 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내가 오늘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지 못했다'라고 느끼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라고 분석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밤이 되어서 잠에 들려고 보니 오늘 하루가 나에게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아서, 동시에 내일이 오는 것이 싫어서 잠에 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우울한 사람이 잠이 너무 많이 오는 것은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분석한 글도 본 적이 있다. 두 분석이 얼마나 근거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 두 경우에 모두 속하는 것 같다. 불안하고 우울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어서 자꾸 잠에 들려고 하지만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깊이 잠들지는 못하는 것이다. 



결국 나 자신의 존재 가치, 내가 존재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자존감이 떨어지니 모든 것이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밥을 먹는 것이 힘든 것도 비슷한 이유다. 모든 것이 즐겁고 마음이 편했다면 날이 덥더라도 끼니를 챙기는 것이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가슴을 졸이면서 살다 보니 기본적으로 소화가 잘 안되는데,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지 못하니 밥을 맘 편히 넘길 수가 없는 것이다. '나같이 가치 없는 사람이 이 밥을 먹을 자격이 있긴 한 걸까' 하는 무의식도 음식 앞에 앉아있는 내 뒤를 몇 번이고 스쳐간다. 


까놓고 말해서 돈을 벌지는 못하면서 쓰기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 스스로 힘든데도 다시 일을 할 자신은 없으니 너무 불안한 상태가 되어버린 거다. 능력이 없으면 아무 일이나 받아서 할 수 있는 사회성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4년 반의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 사회성은 오히려 더 위축되어왔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렵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나름 자유로운 편이었던 이전 회사의 분위기 속에서도 나는 혼자 긴장하고 불안해하며 회사 생활을 버텨왔다. 게다가 크고 작게 생기는 업무상 마찰들은 멘탈이 약한 나에게 신체적인 증상을 느끼게 할 정도로 큰 스트레스였다.


잡플래닛이나 블라인드 같은 곳의 글들을 보면 '다들 저렇게 참고 일하는데 나는 왜 그렇게 쉽게 스트레스받고 불안해하고 좌절하고 상처받는 걸까' 싶어질 때가 많다. 얼마 전 잠시 은행에 갔을 때, 잠시도 가만히 기다리지 못하고 계속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할머니,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통화하는 아저씨, 은행원의 말을 이해 못 하고 다른 소리를 하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애써 신경 쓰지 않고 폰이나 보려고 했지만 예민한 성격 탓에 그럴 수 없었고, 점점 긴장과 스트레스가 몸을 경직시키는 것이 느껴졌다. 


얼마 전 한 정신의학교수가 '멘탈을 강하게 만든 후에 어떤 일을 하려 하지 말자. 세상에 나가 무언가를 해야 자존감이 생긴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답답하고 슬픈 마음이 들었다. 나에겐 '무기를 들고 전쟁에 나가려 하지 말라. 무기는 싸우다 보면 생기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맞는 말이라면 나에겐 너무 슬픈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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