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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소중한 나의 친구에게
Level 8   조회수 131
2021-07-12 23:41:49

넌 알고 있을까? 지금도 나는 가끔 너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어.

우리가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일머리 좋고 꼼꼼한 네게 일이 다 몰렸던 것, 

나는 입버릇처럼 미안해하면서도 결국 하기로 한 걸 제때 마치지 못하고, 결국 그걸 다시 네가 다 떠안고 밤새 해치워야 했던 것,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고 우리가 함께 일하면서 몇번이나 반복되었던 것이 나는 항상 미안했어 

미안하다는 말은 너무 많이 했고 잘못을 고치진 않아 이제 너는 더이상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도 스스로 

친구로서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일을 함께 할 동료로서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람이라고 나를 평가하고 있어. 

놀러갈때마다 나를 별로 반기지 않으셨던 너희 어머니는, 어쩌면 내가 이런 사람이라 너를 고생하게 만들 것을 알아보셨는지도 몰라



지금은 우리가 사는 곳도 걷는 길도 달라져 서로 소식을 전할 수 없지만, 너는 나의 첫 친구야.

그냥 적당히 인사나 하고 지내는 여러 사람들 중에서 특히 친한 한 명의 친구를 만드는 건 네가 가르쳐줬잖아 

특별히 친한 한 명의 친구가 되어준 건 네가 처음이라, 너는 언제나 나의 첫 친구야.


네가 나에게 가르쳐 준 건 그것 말고도 많았지 

수학 공식을 그렇게 많이 외워야 한다는 것도 나는 네가 아니었다면 영영 모르고 살았을거야. 

너는 객관적인 상황이 불리해도 굴하지 않고 가진 자원을 활용해가며 착실히 버티면서도, 네가 하고 싶은걸 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들까지 놓치지 않고 해나갔잖아. 그러면서도 나를 위해 네 시간과 마음을 남겨둬 주었잖아,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나에게는 얼마나 많은 네가 남아있는지, 나를 이루고 있는 많은 것들이 너로부터 시작되어서 하나하나 셀 수도 없어.



너는 나를 참 태평한 성격의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ADHD가 있었다고 해. 

약을 먹는 지금은 그때보단 좀 더 시간을 맞춰서 출근할 수 있고, 마감을 조금 더 잘 지킬 수 있게 되었어.


ADHD라는게 뭔지도 몰랐던 우리 어릴때, 네가 서예학원에서 봤다고 했던 그런 부산한 아이들과는 많이 다르지만 

생각해보면 너를 만나기 전에도, 너와 함께 할 때에도 나는 해야 할 일을 잊고, 미루고, 제때 마치지 못하고,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참 부산스럽게 일을 벌리고 그리고 떠들어대면서 너를 귀찮게 했잖아... 이걸 알게 되면 너는 나를 조금쯤 더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너에게 이해를 바라며 이런 이야길 하는건 아니지만, 그런걸 바라기엔 너무 늦었지만, 그래서 네게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도 했지만, 

이렇게 너에게 말하는 이유는 네가 선생님이기 때문이야. 

뛰어다니지도 않고 뭘 흘리고 다니지도 않았지만, 시키는 건 곧잘 해내고 물어보면 대답을 따박따박 하면서도, 할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마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고 그래서 어쩌면 선생님을 골리려는 건가 의심을 받았을, 나같은 아이를, 네가 언젠가 만나게 될지도 모르잖아

언젠가 네가 그런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이런 이야기가 어쩌면 조금쯤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있지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잘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일수록 미루곤 해

오늘의 이 이야기는 얼마나 오래 미루다 너에게 전하게 될까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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