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먹은지 벌써 3개월이 지난 것 같다. 처음엔 콘서타로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약효 지속 시간이 길지 않아 업무 시간을 커버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어 의사쌤과의 상담을 통해 메디키넷을 하루 2번 복용하는 것으로 바꾸게 되었다. 확실히 메디키넷으로 바꾼 후에 집중력 향상 효과가 눈에 띄게 좋아지면서 그동안 어려움을 겪어왔던 업무, 인간관계 등에서 크게 호전됐다. 업무를 하면서 예전부터 ‘아 분명 이거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는데, 하는 게 너무 귀찮다..’라며 해결 방법을 아는데도 집중력이 부족해 꼼지락대는 시간이 길어졌으며 결국엔 잦은 야근을 불러오곤 했다. 약 먹고 나니 이런 부분이 상당부분 좋아지고 업무시간이 매우 빨라져 팀원들이 놀랄 정도였다. 그동안 연차에 비해 업무 역량이 쫓아가지 못한다는 자괴감, 일을 뭉개다 보니 야근이 잦아져 피로감과 좋지 않은 몸 컨디션 등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는데 그런 부분이 아예 없어졌다. 이제야 내 진짜 능력을 발휘하는 기분이 들고, 그렇게나 바랬던 칼퇴가 가능해졌다.
인간관계에서도 예전에는 ₩;&@()” 이런 식으로 들리던 상대 말이 또렷하게 잘 들어오고, 그러다 보니 상대가 말하는 내용을 놓치거나 특히 여럿이 있을 때 대화의 흐름을 놓치는 일이 줄어들어 ‘진정한 소통’이란 게 가능해졌다. 전에는 못 알아들어도 분위기상 알아들은 척 하며 넘어가고, 상대의 말에 관심 자체가 별로 없어서 어떤 반응을 해줘야 할 지 모르겠고, 특히 여럿이 있을 땐 대화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는 약간의 어리숙함? 때문에 장난끼 많은 친구들의 놀림 타겟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인간관계에서 긴장감이 높았다면, 약 먹은 이후에 그런 긴장감은 많이 사라졌다. 확실히 약 먹고 나니 인간관계가 훨씬 편해졌지만, 여전히 어렸을 때부터 단짝 친구였던 것처럼 굉장히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긴 어려운 것 같다.
위에 열거한 장점들이 매우 강력한 만큼, 약을 복용하지 않았거나 혹은 복용 후에도 약효가 떨어질 때즈음이 되면 불안감이 생겼다. ‘아, 약효가 돌지 않으니 또 나는 예전의 나처럼 인간관계에서 미숙함이 드러날텐데...’ ‘아 약효가 떨어지면 이 일을 제대로 처리 못할 것 같은데..’ 이런 불안감때문에 나는 내가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약으로 커버하고 싶었다. 약 복용 전/후의 삶의 질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메디키넷을 하루 40 복용했고, 얼마 전 담당 의사쌤에게 용량이 너무 많다고 혼나 요즘은 30 이하로 줄이고 있는 중이다.
사실 약을 먹으면서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이후에 약 없이도 살아갈 수 있도록 좋은 습관들을 들여놓는 거라고 하는데 나는 불가능했다. 좋은 습관들이 무엇인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약을 먹지 않으면 뇌가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대화하고 있는 상대에게 집중하려고 온 에너지를 다 써봐도 내 뇌는 상대의 말을 다시금 놓치기 시작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에 무뎌지고자 약먹은 후 깨달은 나름의 팁들을 상기시켜봐도 내 뇌는 자꾸만 남들의 시선에 예민해지곤 했고, 업무 메일을 읽을 때에도 자꾸만 중간중간 내용들을 건너뛰고 이해가 안 갔다. 그러면서 약에 대한 의존도가 생긴 것 같다. 요즘은 약 없이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거부감이 생기는 것 같다. (원래부터 알던 친구들 제외)
그리고 요즘 불현듯 노잼시기가 찾아왔다. 직장에 입사한지도, 연인과 만남을 이어온 지도 오래되면서 일상이 매우 익숙하고 단조로워진 데다 약을 복용한 후 삶이 좀 더 안정되어졌기 때문인지(?) 권태감이 불쑥 찾아온 것 같다. 약의 효과로 매일같이 칼퇴를 하지만 퇴근 후 기대되는 것들이 없고, 뭘 해도 딱히 재미가 없고, 누구를 만나도 딱히 재밌지 않았다. 새로운 인간관계가 주는 해방감이 있었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일 뿐 좀 지나면 다시 권태로워졌다. 또한 인간관계에서의 긴장감이 많이 사라졌다고 해도 아직 편안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대화는 신경 쓸 게 많았다. 특히 나의 adhd를 드러내고 싶지 않고, 그로 인해 무시/조롱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 부분을 꽁꽁 감추려다 보니 더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큰 것 같다. 원래 친했던 친구들과는 서로 나이가 들며 각자의 일상이 생긴 만큼 전처럼 자주 보기 힘들어졌다. 1:1이 아니라 3명 이상인 경우는 더더욱 서로 마음이나 일정이 맞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더 자주 만나기 힘들어졌다. 약 먹기 전에는 느껴본 적 없던 노잼시기였는데, 내 또래들이 겪는다던 노잼시기가 이런거였나 하고 온몸으로 느끼게 됐다. 시간이 해결해준다고는 하는데, 요즘은 이 노잼시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지가 가장 큰 고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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