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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와 사이코패스 사이...
Level 3   조회수 491
2020-08-12 10:51:35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ADHD의 증상들을 보고 자가 진단을 내리고, CAT검사를 받고 확진하여 약을 복용한지 8개월...

삶은 나아졌고, ADHD 확진으로 인한 혼란도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받은 심리분석에서 또다시 혼란스럽다.  

이 혼란하고 괴로운 마음을 누구에게도 토로할 수 없어서 여기에 적어본다. 



나는 겉보기에 평범한 사람이다.

평생 법원이나 경찰서 한 번 가보지 않았고 

초중고대 큰 사고 안치고 졸업했으며.

비행이라고 해봤자 미성년자 때 술을 마시거나 중2병 때 부모님 지갑에 손 댄 정도. 

다만 정신세계가 조금 괴짜라고들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공계생의 특징인가라고 넘어가는 편이다. 

내가 어딘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건 느꼈는데, 나 역시 그냥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졌나보다 하고 말았다. 나는 평범한 편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정확하게는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멀쩡한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에 평생 시달렸다. 내내 그런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좋은 대학은 꼭 나와야되고, 사고는 치면 안되며, 성실해야하고. 도덕적이고. 

나는 사실 그렇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었지만 겉으로는 멀쩡한 사람처럼 보여야하는 게 인생 최대의 목표라고 생각해서 숨기고 버티고 살았다. 

아래의 단점들이 있었지만 내가 게으르거나, 자제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하자를 숨겨야했다. 


집중이 되지 않아, 부산하고, 일정 산출을 잘 못하고, 업무 효율이 떨어짐

자주 무기력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음

무단으로 학교나 회사를 가지 않는 경우가 생김

갑작스럽게 화를 내거나 감정 조절이 안됨

폭력성이 머릿속에 들끓음(실제로 저지른 적은 성인 이후로 없음)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사거나 저지름

사람들의 말을 잘 듣지 못 함(청각 인지가 떨어짐)

정말 중요한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쓸모 없는 것은 오래 기억함


위의 이유를 고치기 위해 30년 넘게 수 없이 노력했지만 최근 너무 지쳐버렸고

나이를 먹으면서 나의 부족함을 감추기 더 어려워졌다. 언제 들켜서 폭로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기는 것도 힘들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늘 곤두서 있는 것도 지치고 나는 하자품같고 다 때려치고 싶었던 차에

최근 이게 ADHD라면 약으로 호전될 수 있다는 생각에 병원에 갔으며, 

위의 문제들만 개선된다면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으로 8개월간 약을 먹었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호전되는 부분도 있었고, 그렇기에 약을 먹는 것으로 이런 부분을 더 신경쓰지 않고 살았다.

확진을 받았기에 굳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고, 반복적인 방문이었는데


새 병원에 방문하게 되서 다시 내 이야기를 하고 그에 대한 진단을 받아야하는 일이 생겼다. 

어쩌다보니 이 때는 좀 더 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업무적인 소통까지는 괜찮지만, 사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힘들고 

혼자 있는 것이 편하고, 타인과 교류를 위해 대화하는 게 큰 스트레스이며 

친구나 연인에게 의도와 다른 말/제대로 된 감정을 전하지 못해서 지적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물론 필요에 의해 사적인 교류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연인하고도 지내지만 그 과정이 너무 에너지가 많이 들고 힘이 들며, 늘 내 행동이 잘못되진 않았는지 고찰한다고.

그렇기에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고, 사람이 있는 곳은 어디든 편하지 않다고. 심지어 10년 넘게 사귄 마음을 터놓는 연인과 있을 때도.  

행동하진 않았지만, 나를 분노하게 한 사람이나 원인을 때리거나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했으며(나는 보통 사람은 이런 생각을 안한다는 게 더 충격적이었다) 

사는 게 게임처럼 거짓같고 언제든 스위치를 내리면 끝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고(자살 충동은 아님)

늘 무언가를 흉내내고 사는 기분이라 지치고 힘들다고



듣고 선생님께서 하는 말은...나름 충격적이었다.

나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기에... 


ADHD는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해서, 어떤 의미로는 어린아이처럼 나만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나의 경우는 고지능 ADHD로, 사회에 있는 감정이나 의도를 눈치로 학습해서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학습하지 않는 부분이나 돌발 상황에 대해서는 떨어지는 것이며.

계속 학습한 것을 기반으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피로해하는 거라고. 

어릴 때 눈치가 없다고 친구들에게 미움받은 건, 학습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아서 그런 거고. 

고지능이기 때문에 그런 타인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보고 조금씩 내 행동을 수정하고 스스로의 '타인과 다른 부분'을 억압하게 된 거라고.

그렇기에 지금은 사화생활을 하며 거의 지적받지 않고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인데,  언제 지적받을 지 불안감을 가지고 본인을 검열하고 있는 거라고. 

환자분은 ADHD에도 겉으로는 일반인과 거의 구분되지 않을 만큼 고지능이며, 그렇기에 당신은 남들을 이해하기 위해 24시간 애쓰는데, 남들은 자신을 전혀 이해 못하는 것에 더 힘들어한다고.

그래서 사는 거에 피로감을 느끼면서, 뭔가 흉내내고 산다고 느끼거나, 현실감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고, 하지만 듣는 순간 설명되지 않던 답답했던 부분이 탁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동거한지 6년이 넘고 있는데, 집에 있을 때에도 무언가 내가 아닌 사람을 흉내내고 산다는 기분에 너무 지쳐가고 있었던 참이었기에... 

집에서도 사람의 감정을, 사람다운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였나보다. 




친구랑 최근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이게 이상한 일인 것을 평생 몰랐고, 다른 사람도 그런 줄 알았다. 

'사람을 죽이고 싶어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잖아. 시시때때로. 다들 참고 사는 거잖아?' 라는 말을 했을 때, '아니? 설령 있어도 평생에 손에 꼽을 정도'라는 연인을 보면서

나는 그 때' 내가 뭔가 이상한가?'라는 생각을 처음 했었다. 

오늘 선생님의 말을 듣고... 어쩐지 이 논리에 대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나와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오늘까지도 계속. 

만일 저렇다면, 대체 ADHD(나)는, 사이코패스와 뭐가 다른 건지. 

스스로를 억압하지 않고 산다면, 피로감을 느끼는 부분을 행동하지 않고 산다면. 나는 사이코패스랑 뭐가 다른 건지...

남과 소통하기 위해 늘 안입던 옷을 걸치고, 힘들어하며 지내야하는 건지. 

언제까지 이해하지 못할 남의 행동과 감정을 학습하고, 그걸 따라하고 살아야 하는 건지. 

약을 먹으면 이런 피로감이 없어지는 건지, 아니 그게 맞는 건지. 어쨌든 평생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늘 학습하고 살아야하는 건지. 

가끔은 이런 것들, 인간적인 모습. 배려. 좋은 행동, 도덕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들이 너무 지쳐서 다 때려치우고 길에서 소리지르고 뭔가 부서버리고 싶은 건 내가 타고난 선천적인 결함이었던 건지. 


소설이나 글을 읽고 학습되지 못한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건 결국 선천적인 건지.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글을 써도 되는 건지. 독자에게 공감을 일으키긴 하나?

결국 나의 감정 중 어떤 게 내가 직접 느끼는 거고, 어떤 게 학습되어서 회로에 의해 도출되는 감정인 건지. 

나는 그걸 구분할 수 있는 건지... 보통 사람은 어떻게 느끼고 사는 건지. 

나는 정말로 정상이 아니었던 걸까. 평범함 그 근처에도 없는 사람이었나. 



여러가지로 너무 괴롭다.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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