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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el 10   조회수 135
2019-11-26 01:51:28

오늘은 거의 13시간을 잤다. 어제 술을 먹은 탓도 있겠지만 요즘은 충분히 자도 더 자고 싶은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주는 금요일까지 자소서를 제출하고 토요일에는 자격증시험을 봐야 했는데, 글쓰기에는 영 소질이 없다는 걸 대학교를 다니는 6년 동안 줄곧 느꼈기 때문에 그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재작년 거의 한 학기를 투자하다시피 했던 인지과학과목(이었지만 사실은 글쓰기 수업)에서 C+을 받은 이후로 글쓰기에서만큼은 들인 노력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소서 항목마다 대충 뭘 적을지 생각을 해놓고 써봤다가, 친구의 조언을 듣고 한번 엎었다가, 친오빠의 얘기를 듣고 또 한 번 더 엎으니 시간은 없는데 글은 안 써지고 (쓰기 싫고) 불안해서 자격증 공부도 눈에 안 들어오는 상태로 시간을 보냈다. 어차피 아무것도 안할것 같아서 잠깐 남자친구를 만났고 맘에 드는 바에서 칵테일도 마셨다(?)

오빠 친구가 인사과라서 자소서를 봐준다고 했는데 마감이 임박해서 쓴(공들여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을) 형편없는 자소서를 보여주기가 민망해서 스트레스만 더 받다가 그냥 나중에 여유가 되면 봐달라고 얘기했다.

앞으로 자소서를 열번은 더 써야할텐데 그때마다 이래선 안된다고 생각하는와중에 이 생각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위기의 상황으로부터 생존하기위해 혈중 스트레스호르몬 농도가 높아지고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심장이 펌핑한다는데 그 펌핑된 신선한 피를 두뇌회전에 써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마음처럼 되지않았다. 


목요일에는 병원에 가서 오랜만에 길게 얘기를 했다. 취업준비를 하다 보니 '내가 한 말에 상대방이 설득되어야 하고, 내가 펼친 논리를 상대방이 이해/납득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너무 주입받아서 말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발화하게 된다. 잠깐 생각을 한 후 의사 샘한테 요즘 뭐가 어때서 힘들고 뭐가 문제인지 블라블라 얘길 했다. 예전 같았으면 생각 없이 한 마디를 툭 내뱉고, 의사샘이 되묻고, 그것에 대해 답변을 하는 과정을 몇 차례 하고 나서야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의사샘이 캐치했었는데 이번 면담은 확실히 달랐다. 한 번에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다 전달했고, 듣고 싶었던 얘기를 바로 들을 수 있었다! 

이게 보통 사람들이 대화하는 방식이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담이 느껴졌다. 아 요샌 정말 별 쓸데없는 것에도 부담을 느낀다... 휴.. 부담 좀 그만 느끼자....

어쨌든 내 고충을 들은 의사샘은 당분간 항우울제를 추가하자고 제안하였으며 조금 안심이 되었다.


금요일 3시까지 자소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2시쯤에 거의 마무리가 되었고 다듬는데 50분가량이 흘렀다. 아빠가 보셨으면 좀 미리 하라며 역정을 내셨을 게 눈에 선한데 그래도 쓴 내용을 다시 쭉 읽어보니 나름 적을건 다 적은것 같아서 흡족했다.

자소서로 골머리를 앓다가 정해진 답을 맞히기만 하면 되는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니 그 답답함으로부터의 해방감에 그냥 막 행복함이 느껴졌다. 거의 그날 밤을 샜어야 할 공부량이었는데 기쁨이 느껴지는 게 항우울제의 효과인가 싶었다. 고양감에 들떠서 항우울제 효과가 느껴진다며 동네방네 떠들고다녔다. 그렇게 새벽까지 공부를 하고 다음날 시험을 치렀는데 다행히도 넉넉한 점수로 합격할 것 같다. 아니 글을 쓰다 보니 왜 이렇게 길어졌지... 이건 자소서의 영향이다.. 


시어첫과의 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한 요즘이다.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시작이 힘들어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는걸 그만두어야한다.. 어제 과제도 각잡고 1시간만 하면 끝낼 수 있는걸 5시간동안 괴로워하면서 미루다가 '시어첫과'를 적용하고 나서는 1시간만에 끝냈다. 아무튼 이것 이외에도 할말이 많은데 말을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끝을 잘 맺을 수는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 그냥 하지 않아야겠다.. 내일은 긴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부담스러워하지 말아야지... 오늘 늘어졌으니 내일은 좀 바빠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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