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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내지 못한 트라우마
Level 3   조회수 579
2019-12-05 21:10:25

정신과에서 일을 하다 두 달 만에 짤리고

그래도 병원 일을 한 번만 더 해보자고 종합병원에 들어갔다

근데 일을 하면 할 수록 일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트라우마가 너무 심하게 커지는 듯 하다

이미 겉잡을 수 없이 커진 것 같았다

처음이라 당연히 모를 법한 것도

내가 그렇지 이 쉬운것도 한번에 못알아듣네 이렇게 생각하게 되고

그냥저냥 무난하게 처리한 일도 나는 버벅거리면서 처리했다고 생각하고

이래서 내가 여기서 계속 일할 수 있을지 걱정되고

환자한테 수납 안내해드리는데도 별로 어려운 설명 아닌데도

옆에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보고있으니까 그걸 자꾸 의식해서 말 더듬고

더듬으면 당황해서 말 꼬이고

그러면 아 이 환자분이 나 처음하는애인거 다 알겠다 어떡하지 이런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자신감 떨어져서 그다음 일도 위축돼서 또 실수하고..

가만 생각해 보면, 스물하나 스물 둘 이럴 떄 알바했을 때에는

순전히 내 실수 내 잘못으로 혼난 건에도 다 알바 사장님 짜증난다고 생각하고

뒤에가서 친구한테 사장님 욕하고 뒷담까고 다 사장님 승질이 드러워서 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순간부터 내 탓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니탓 아니라고 처음이라 다 그럴수 있는거고 그 사장님도 너무한거 아니냐 그런걸 왜 처음하는 너한테 시키냐 라고 말해줘도

아냐.. 일잘하는 애였으면 처음이어도 눈치껏 다 했을텐데 내가 못한거지뭐

몇년 새에 내가 이렇게 바뀌어 있었다...

이 일이 안맞았으니까 이건 안그렇겠지

이것도 생각보다 좀 어려웠지만 이건 덜 그렇겠지

이것도 운이 안좋았던 걸거야 그리고 한번 해봣던 거니까 다른데로 지원하면 이전보단 덜 어렵겠지

아 인생이 생각보다 더 어려운 거구나 그래 쉬운게 어딨겠어 더 노력해 보지 뭐

괜찮아 그래도 난 가진 자격증이 많잖아 아직 할수있는 건 많아 좌절 할 필요 없어

자존감을 높이자 내 자신을 습관적으로 칭찬하는거야

별의 별 도전을 다 해봤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실수노트도 써봤다

근데 실수노트가 오히려 나한테는 더 부작용으로 다가왔다

실수노트는 나에게 있어서 내 자신이 오늘 이렇게 등신같았음을 한번 더 되새기는 꼴이었다

아 이런 등신.. 어떻게 사람 머리에서 이런 생각이 나오냐

진짜 어디 모자란가?

실수노트는 이딴 생각만 하게끔 만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칭찬노트를 써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냥 일기를 쓰고싶더라.. 칭얼노트...신세한탄노트


어제까지 출근했던 그 병원에서 일하면서

일이 너무 어려웠다.... 아 의료쪽 일 진짜 내 적성과 정반대구나 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냥 나는 뼛속까지 미용인이 틀림없다.

꾸미고 치장하고 예쁜거 반짝거리는거 좋아하는 애인데

그런거 장신구 하지말라고 무슨 이상한 어려운 영어 철자 써가면서 무슨 그 프로그램 다루는 것도 대가리 깨지겟고

무엇보다 그 프로그램을 소화기내과 이비인후과 심장내과 신장내과 등등 다 공유하는 프로그램인데 내용을 내가 하나 빼먹으면 그 내용을 나만 알고있고 공유가 안되는거니까

그걸 안빼먹고 매번 적어둘 자신도 없고....

그냥 일할수 있는 자신감 자체를 모두 다 상실한 기분이었다.

사실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된 건 꽤 오래 되었는데

이젠 진짜 바닥이 보이는 걸 느꼈다


어김없이 9시에 곯아떨어졌고 새벽에 잠깐 깼을 때 오빠한테 일 다니기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엄살이라고 생각한다해도 상관 없었다. 오빠한텐 정말 미안했지만 진짜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멘탈 관리가 엉망이었다 진짜

못 관두게 하면 그냥 울며 겨자먹기로 짤릴 때까지라도 영혼없이 다니려고 했고

말해봤는데 ㅇㅋ 하면 한숨 돌릴수 있는거고..


다행히도 오빠는 크게 뭐라고 안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병원에 전화해서 앞으로 출근 못할거같다고 말씀드렸고

앞으로 집에서 쉬면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나름대로 계획표를 짰다


오늘 하루는 좀 ... 쉰다고 마냥 홀가분하진 않았다

툭 치면 울 것 같기도 했는데

뭐.. 요리하다 보니까 잊어버리기도 했다가

뭐 그랬다


마침 내일 약타러 병원 가는 날인데 썰풀 것 좀 생겼다

늘상 느끼는 거지만

같은 시간에 일어나도 일할 때보다 집에있는 게 시간은 훨씬 빨리 잘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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