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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 학교 이동, ADHD가 의심되는 민수를 품지 못했던 해 2020년 시작부터 코로나가 터졌고 2월에 세 번째 학교에 발령이 났다. 세 번째 학교는 두 번째 학교처럼 협력적인 학군이 아니었다. 나는 몹시 긴장했다. 새 학교로 인사를 하러 가서 교장을 만났다. 새 교장은 두 번째 학교 교장에게 내가 ADHD가 있으며 학교 적응하기 어려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세 번째 학교의 교장은 이 학교는 생활지도가 어렵다면서 걱정스럽고 의혹이 어린 표정으로 나를 봤다. 같은 학교로 발령 난 선배가 열심히 해보겠다고 일단락을 지은 후 나는 교무실로 들어갔다. 끝없는 반성과 불안으로 점철된 겨울방학을 보내고 나서 더 위축된 나는 구석진 곳에 쪼그리고 있었다. 교감은 나에게 짠한 말투로 “아직 미혼이시지요?”라는 말을 했는데 피해의식일 수도 있지만 '미혼인 달팽이가 ADHD로 소문이 나서 가엾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유쾌하진 않았으나 어쨌든 관리자가 나를 짐으로 느끼는 것보다 불쌍하게 생각하면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자원해서 4학년을 맡았다. 그해 4학년은 그 학교에서도 제일 지도하기 어려웠기에 교사들은 그 학년을 피하려는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안면이 있는 보건교사가 내게 측은한 표정을 지으며 “왜 4학년을 맡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때 4학년은 3반까지 있었는데, 4학년 담임을 맡은 선생들은 다 새로 전입한 교사들이었다. 어렵기로 소문난 그 학교에 자원한 교사들이 없었고 그중 특히 어려웠던 4학년은 눈치가 있는 교사들은 지원하지 않아 4학년 세 명의 담임 중 한 명은 초등은 처음인 기간제 선생님으로 채워졌다. 나머지 두 명 중 한 명은 정신적으로 힘들어한다고 알려진 내가 멋도 모르고 자원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2020학년도 4학년은 좌초될 거라고 인사자문 위원회에서 판단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어려운 학년을 이끌어갈 4학년 1반은 경력이 많고 곧 교감으로 승진할 것으로 알려진 능력자 선생님이 맡게 되었다. 긴장한 나에게 두 번째 학교에서 몇 년 같이 근무했던, 나에게는 엄마 연배에 가까운 선생님이 나를 위로했다. 4학년 1반 선생님께선 능력자에 인성이 좋으신 분으로 소문났으니 걱정하지 말고 많이 물어보면서 1년을 지내라고. 처음 만난 자리에서 4학년 부장 교사는 걱정스럽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나를 대했다. 그도 나를 신경 써주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는 어떤 말끝에 나에게 "경력이 제법 있으시니까……."라고 하셨다. 나는 그분이 나에 대한 걱정을 스스로 달래려고 하시는 느낌을 받았고, 나도 덩달아 긴장되고 개학이 두려워졌다. 코로나가 극심해지며 3월 개학을 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 등교수업은 고사하고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는 것도 4월 중순으로 미루어졌다. 학생들에게는 많이 학습결손이 일어났던 그 시기였지만 나에게는 숨 쉴 구멍이 되던 시기였다. 나는 그 시기에 몇 년 동안 누적된 자기 검열 (‘남들과 다르지 않게 살려면 엉뚱한 생각을 매 순간 정상인처럼 통제해야 한다.’라는 생각)과 자기혐오가 심해져서 종종 자해 생각이 떠오르곤 하였다. 한동안 날카로운 물건을 보면 그 물건들을 안 보이는 곳에 멀리 치워두었다. 나는 자해 생각이 너무 끔찍하여 홀로 자신을 다독일 뿐 학교생활에 힘 쏟지 못했다. 메틸페니데이트는 최소 용량만 복용했다. 메틸페니데이트를 많이 먹고 강박적인 사고나 불안, 신경성이 더욱 높아져 지도하기 어려운 학생들과 대립하거나 학부모 민원이 들어오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런 상태에서 6월 초까지 온라인 수업을 해서 내게는 다행이었다. 그 상태에서 나는 2019년에 이어서 결혼 활동을 했다. 하지만 표면적인 관계만 이어갔다. 잠시 사귄 상대에게서 내가 철벽이 심하다는 반응을 듣기도 했다. 그 와중 2019년에 헤어진 남자친구가 그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6월 초에 학생들을 교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코로나 상황에 대한 예방, 대응이나 출석 등에 대한 새로운 매뉴얼이 많아 혼란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나는 학급 아이들을 파악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때 민수(가명)라는 아이가 있었다. 2월에 2019학년도 민수의 담임이었던 교사가 내게 민수에 대해서 조언했었다. “민수와 기 싸움할 때 지면 안 된다. 민수는 공부하기 싫을 때 수업 방해를 많이 하고 교사들에게 반항적이다. 민수는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학부모님도 협조적이지 않다.”라고 했다. 1학기 학부모 상담 주간에 민수 어머니와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민수 어머니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긴장을 한 상태라는 게 전화상으로도 역력히 느껴졌다. 민수 어머니는 체념적인 말투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라고 하였다. 침묵이 이어지다가 내가 무엇을 해주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민수는 칭찬받으면 아주 많이 잘한다며 칭찬을 많이 해주라고 했다. 내가 알겠다고 민수에 대해서 칭찬하자 민수 어머니가 3학년 담임 선생님도 갈수록 아이에 대해서 냉소적이셨다고 말하였다. 나는 그래도 담임 선생님은 아이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이 기본이었을 거라고, 나도 올해 담임으로서 사랑하겠다고 대답했다. 민수 어머니는 잠시 침묵 후에 "…. 네."라고 말하였다. 그 말 한마디에는 묘한 여운이 있었다. 나는 그 여운 속에서 내 말을 신뢰하지 못하면서도 나를 믿고 새로운 희망을 걸어보고 싶어 하는 엄마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읽어냈다. 아이가 학교에서 미움받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연약하면서도 애틋한 것이었다. 6월 초순이 되었다. 처음 등교하는 날의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나는 민수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올망졸망한 4학년 아이들 사이에서 번호순으로도 키순으로도 뒤였던 민수는 교실 뒷자리에서 다부진 어깨를 펴고 앉아 있었다. 나는 학생들이 개학일 후 몇 주 동안에는 수업 태도가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으로 아이들은 최소 1~2주 동안은 수업 태도가 좋다. 하지만 그 시기는 폭풍 전의 고요라고 할 수 있다. 그 황금의 1~2주에 담임이 업무에 치이거나 교과 수업을 하느라 규칙을 세우지 못한다면 적기를 놓친다. 학급에 기본 규범이 없을수록 무질서는 산비탈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결국 학년말이 될수록 교실의 무질서는 거대해져서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 채 고통받는 경우를 나는 여러 번 보아왔다. 게다가 세 번째 학교는 첫 학교처럼 어려운 학교였기에 나는 2020년 6월 학급 규칙을 더 신경 써서 가르쳤다. 민수도 처음에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격일 등교를 하여 학생들은 한 주에 두 번만 학교에 오면 되었다. 다행히도 짝수 번호였던 민수와 분란이 있을 만한 학생들이 홀수 번호에 많이 속해있었다. 하지만 반복된 일상이 익숙해지면서 점차 민수는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과제 이탈 행위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6월 중순을 넘어가면서 민수는 기분이 내킬 때마다 큰 소리로 말하거나 장난하거나 교실 밖을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도 학업 분위기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이 규칙을 지키도록 끈질기게 지도를 하여 학급은 어느 정도 운영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민수를 지도하는 게 쉽지 않았다. 민수가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여 부정적인 피드백을 반복적으로 받았고, 이에 자신에게 안 좋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강력한 반발심을 가진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7월 말의 쉬는 시간, 한 아이와 민수 사이 의견 충돌이 생겼고 민수는 격렬하게 화를 냈다. 내가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친구들이 불편하다고 이야기해도 민수는 화를 냈다. 여름 방학식 날에는 민수가 친구에게 신체적인 폭력을 처음 행사했다. 나는 민수를 훈육하였으나 민수는 적대적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 친구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2학기가 되어서는 전원 등교가 시행되었다. 민수와 궁합이 안 좋은 친구들도 함께 수업을 받는 상황이 되면서 학급 운영이 더 어려워졌다. 2학기가 되면서 민수는 싸움이 더욱 빈발하였고 더욱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교실 이탈도 빈번해졌다. 나는 민수의 부모님과 소통을 했다. 어머니는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불안한 듯 방어적이어서 연락을 하기 힘들었고, 민수의 아버지와 주로 연락했었다. 민수 아버지는 방어적인 느낌은 덜했으나,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요.’라는 반응을 보이셨다. 그래도 처음에는 민수를 가정에서 잘 가르치겠다고 하셨다. 민수는 집에서 훈육을 들은 직후엔 노력하는 게 보였으나 곧 원래대로 행동했다. 9월 말이 될수록 민수의 행동은 더욱 심해졌다. 온건하게 훈육을 하면 민수는 한순간도 집중을 못 하는 것처럼 장난을 쳤다. 내가 엄격하게 말하면 민수는 불같이 화를 냈다. 나는 학부모에게 연락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인데 아들이 학교에서 못한다는 이야기는 정말 듣기 싫었을 것이다. 이야기 끝에 민수의 아버지는 담임이 너무 엄격하고 민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민수와 가족이 내 조언을 부정하지 않으려면 일단 그들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민수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래포를 쌓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민수가 나름 귀여운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수업을 방해하거나 질서에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을 지적하면 몹시 화를 내고 보통 친구들보다 행동 조절에 수십 배는 애를 먹었다. 나는 민수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였고, 좀 자유를 주기도 했으나, 다른 학생들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은 못 하게끔 제한을 두었다. 나는 민수가 학교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어 보여 학교에 설치된 위클래스(상담실)에 상담을 의뢰했다. 민수는 상담실에서는 수업하지 않는다며 좋아했다. 어느 수학 시간에 민수가 내 말투를 따라 하면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몇몇 아이들도 옆에서 웃었고 나는 민수에게 그만하라고 말했다. 민수는 투덜거리듯 웃으면서 나에게 18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민수에게 “너 지금 18이라고 했냐?”라고 하자 민수는 나에게 “선생님도 지금 욕한다.”라고 말했고 우리 둘의 입씨름 끝에 수업이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갔다. 나는 그를 상담실로 보내려고 했으나 민수는 “상담실 가면 노니까 좋다.”고 했다. 나는 그를 교무실- 교감 선생님께 보냈다. 민수는 교감 선생님을 만나는 건 거부했으나 나는 그를 교무실로 보냈다. 수업 후 교감을 만났다. 교감이 날 보면서 “애가 말하길 담임 선생님이 자기한테 욕했다는데?”라고 했다. 교감에게 나는 해명했다. 내 피해의식 탓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ADHD라고 알려져 그런지 교감도 내가 폭력적일 수 있겠다고 의심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있었던 일을 민수 아버지에게 말하자 민수 아버지는 그럴 때 상담실로 보내라고 내게 주문했다. 아이가 낙인찍힐까 봐 우려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교육방식을 주문하는 민수 아버지의 행동에 나는 기가 빠졌다. 나는 그 상황에서 상담실에 가는 것은 교육적으로 효과가 없어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수 아버지는 상담교사의 역량을 신뢰하지 않는 거냐고 말했었는데, 나는 “상황에 따라 효과적인 방법이 다르다. 민수가 잘못했으니 안 좋은 결과를 겪어야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 상황에서는 상담실 가는 것을 즐겁게 느꼈으므로 교육적으로 효과적이지 않은 방법이었다. 다시 같은 상황이 생겨도 나는 상담실에 가는 것을 교육적으로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민수 아버지는 다소 단호한 내 모습에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0월 중순부터 민수의 문제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내 훈육에 민수는 화를 내다가 내가 꺾이지 않자, 나중에는 부모님께 말하지 말라면서- 부모님이 얼마나 나한테 무섭게 하는지 아느냐고 울면서 말하기도 하였는데, 나는 그 아이를 짠하게 느끼면서도 속으론 여러 생각을 했다. 민수가 어른들의 동정심에 기대어 자신이 혼나는 걸 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께 말 안 하는 일도 있었으나 상황이 심해진다면 나는 부모님께 말할 수밖에 없다고 민수에게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민수의 집중력 부족과 과잉행동은 도드라졌다. 나는 민수를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써 봤으나 민수는 바뀌지 않았다. 교실에 들어와 있는 것 자체가 그 아이에게는 도전과도 같았다. 자신의 욕구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공부해야 하는 교실에서의 일상은 아마 주리를 참듯 괴로웠을지도 모르겠다. 민수가 나의 지도가 너무 무섭다고 말하면서, 또한 내가 민수에게 욕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나는 그 아이를 지도하는 게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다. 내가 소통할 여유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민수가 말하는 대로 내가 애들한테 냉정하거나 사랑을 안 주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ADHD라는 걸 알고 있는 교사들 사이에서는 나에 대한 반응이 크게 2가지가 있었다. 첫째로 ADHD니까 화를 통제하지 못하고 애들한테 폭력적으로 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두 번째로 ADHD니까 애들을 잘 통솔하지 못할 것이라는 반응이었는데, 그것은 당시 학년 부장이면서 학교폭력 담당자였던 1반 담임에게서 느껴졌다. 당시 나는 약을 줄이며 주변 상황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학년 부장은 섭섭함을 느끼다가 학년말이 될수록 나에게 학을 떼는 것이 느껴졌다. 1반 교사는 교실을 무단으로 이탈하고 복도에서 화를 내는 민수와 몇몇 친구들 앞에서, 나와 상담교사의 역량을 믿지 못하는 듯한 말씀을 하셨다. “두 분이 너무 착하셔서 애들이 난리를 친다.” 나는 ADHD가 있는 내 역량에 의구심을 품으시는 것 같아 예민해졌다. 나는 나에게 의구심을 품는 학년 부장, 교감, 상담교사, 학부모와 소통하며 민수를 가르치려고 애썼다. 어느 날인가는 민수의 행동이 모든 학생이 수업받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나는 그 아이를 훈육하였다. 민수는 장난치다가 곧 화를 냈고, 나는 그 아이와 상담을 하였다. 민수는 학년 연구실이 뒤집힐 정도로 심각하게 화를 냈다. 나도 민수가 화를 내거나 감정 기복을 보여도 단호한 반응을 보였다. 민수가 별안간 핸드폰을 꺼내며 아동학대로 고소하겠다고 내게 말했다. 내 목소리를 녹음한 것이었는데, 나는 위축되지 않고 침착하게 반응했다. 녹음 내용을 죽 듣고 나서 나는 당당하게 반응했다. 잘못 말한 것 없으니 부모님께 꼭 들려드리라는 내 말에 민수는 제풀에 녹음을 삭제했다. 그리고서 민수는 굉장히 힘들어하면서도 부모님께는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나는 본질에 접근할 필요성을 느꼈다. 민수에게 나는 "열심히 할 생각이 없느냐? 아니면 담임이 무섭지 않으냐? 아니면 스스로는 행동을 조절하기 어렵냐?"고 물었는데 민수는 스스로는 행동을 조절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다음 시간은 잘해보자고 민수와 나는 합의했다. 그 순간 민수는 정말 경각심을 느낀 듯 보였다. 쉬는 시간이 지나고 수업 시간이 되었다. 민수와 내가 격렬하게 대화 나누는 걸 본 아이들은 한 명도 떠들거나 방해 행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수는 30초도 집중하지 못하고 주변 애들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그 아이에게 말을 거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음에도. 나는 ‘얘가 ADHD가 아니라면 누가 ADHD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민수 부모님이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민수 아버지께 말했다. 민수는 행동 조절을 다른 사람들보다 수십 배는 어려워하여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일이 어릴 때부터 반복되는 상황으로 보였다. 민수가 “혼을 내니까 내가 말을 안 듣는다.”라고 말하는 것에 어른들이 휘둘리면 진정한 개선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민수가 혼나서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은 결과이다. 원인은 민수가 주변 자극에 주의가 흐트러지고,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지속하며, 주변 사람들이 하지 말라고 피드백을 주면 매우 공격적으로 대하며 보통 사람들보다 수십 배 오랫동안 문제 행동을 지속하는 것이 원인이다.”라고 생각했다. 내 말을 듣고 민수 아버지께서 별일 아니라며 웃었지만 나는 심각하게 생각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민수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교실에 왔다. 살펴보니 볼에 상처가 나 딱지가 져 있었다. 놀다가 다친 거라고 했다. 나는 보건실 가서 얼굴에 메디팜을 바른 뒤 마스크를 착용하자고 다정하게 말했다. 민수는 싫다고 했다. 나는 마스크 착용을 조심스럽게 권고하였으나 민수는 화를 냈다. 화를 너무 많이 내서 수업이 되지 않았다. 참다못해 나에게 민수의 행동을 지적한 아이가 있었다. 그러자 민수는 그 학생에게도 화를 냈다. 수업은 참 어려웠다. 그날 민수의 행동에 대해서 민원 전화가 몇 통이 걸려왔다.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나는 민수의 아버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민수 아버지는 앞으로 학교를 안 보내고 검정고시 준비를 할 거라고 했다. 불안한 상황에서도 나는 연애를 하고 싶었다. 오히려 더 연애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나는 근처에 사는 직장인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와 사귀면서도 나는 불안증을 겪었다. 이 사람도 내 부족한 부분 때문에 날 싫어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사귀고 1주일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에게 내가 ADHD라고 말했다. 그의 사소한 반응에 나에게 관심이 없거나 냉대하는 거로 생각했기에 그에게 싸가지 없다고 말했던 것에 대한 해명이었다. 그는 나에게 ADHD라도 교사가 된 건 대단하다고 했으나 더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불안정한 마음을 격렬하게 쏟아냈다. 내가 ADHD여서 거절 받고 소외된다는 내 인지도식이 단단하게 굳어지는 걸 느꼈다. 나는 그날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울분에 차서 약병을 집어던지기도 했고, 그에게 전화를 여러 번 하면서 문자를 집착적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도 성에 차지 않아서 나는 부모님께도 전화했다. 늦은 새벽 부모님이 전화를 받지 않을 때 나는 온 세상이 새까맣고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을 새웠다. 지겹도록 끝없는 밤이었다. 그를 그렇게 좋아한 것은 아니었으나 몇 달 동안 공들인 사람에게 내 콤플렉스로 인해서 거절된다는 것이 상처가 되었던 것 같다. 내가 결혼 시장에서 하자가 있는 상품처럼 느껴져서 감정적으로 몹시 힘들었다. 그 이후 다른 몇몇 남자들을 그해에 만났지만 잘되지 않았다. 민수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도 그 해 4학년 아이들의 생활지도는 쉽지 않았다. 3반은 민수보다 조금 덜한 정도의 아이들이 몇 명 배정되었는데, 담임이 생활지도의 적기를 놓치며 그 반은 지옥문이 열린 수준이 되었다. 11월쯤 내가 위클래스로 갈 일이 있었다. 그런데 위클래스에 상담교사와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 6학년 부장 교사와 4학년 부장 교사 등 몇몇 교직원도 있었다. 교직원들은 싸움이 터지기 직전인 3반 아이 둘 사이를 온 힘을 다해 막고 있었다. 상담교사와 누가 먼저 대화하는지를 놓고 두 학생이 다투고 있었는데 여러 교직원이 제지해도 그 살벌한 분위기는 쉬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겨우 폭력 사태가 잦아들고 3반 친구 중 한 명인 재후는 울부짖으며 강하게 장난감 칼로 벽을 치고 있었다. 그 기세에 땅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인 창신이는 레고를 조용히, 그러나 신경질적으로 만지면서 재후에게 “같이 인생 망치기 싫으면 날 건드리지 말라고. 내 인생은 어차피 망해버렸으니까!” 하면서 몹시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상담실 분위기가 차고 뾰족해졌다. 나는 창신이가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았다. 창신이는 ADHD 진단을 받았다고 말하고 다녔다. 3반 담임의 말에 따르면 창신이는 굉장히 예민하다는 것이었다. 친구와 다퉈 훈육하였더니 담임 때문에 죽고 싶다고 해서 어떻게 할질 모르겠다는 거였다. 그 아이를 몇 년 겪어본 교직원들이 창신이는 예민해서 아주 조심히 대해야 하는 아이라고 말했다. 나는 창신이가 예민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ADHD 약 이야기를 하면서, 나라에서 애들한테 마약을 준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창신이도 약을 먹으며 사회에 적응하려고 애썼지만 힘들었고, ADHD에 대해 부정적인 정보를 보면서 좌절하고, ADHD약을 먹는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도 겪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강박적인 사고나 피해의식, 예민함을 보이는 것은 남 일 같지 않았다. 내가 10월에 남자친구와 헤어지며 피해의식과 예민함을 보였던 것과 창신이가 반 친구들에게 예민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그날 3반 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창신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그 아이는 ADHD에 대해서 또 언급했는데, 다른 교사들은 괜히 사달이 날까 봐 곤란한 주제를 피하는 느낌이었다. 다른 교직원들이 가고 나서 나는 창신이에게 ADHD의 어려운 점을 공감해주면서 ADHD 약과 병원에 관해서 이야기 나눴었다. 창신이는 약과 병원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몰랐으나 ADHD가 있어 자아상이 부정적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정신과 진료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의식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창신이에게 “요새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다.”라고 말했다. 창신이는 항상 사람들에게 외면받았던 ADHD 얘기를 교직원과 직접 나눌 수 있어서 약간의 위안을 받는 느낌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마음의 응어리가 남아있는 듯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아요.”라고 했었다. 나는 더 해줄 말이 없었다. 나는 ‘내가 ADHD라는 걸 알게 되면 이 아이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신이를 2학년 때 맡았던 교사도 창신이가 너무 어둡고 부정적이라며, 예전보다 정서가 더 어두워진 것 같다며 힘들어했다. 상담교사도 ADHD 아이들이 약을 먹으면 편안해질 텐데 왜 예민한지 모르겠다고 말을 했다. 나는 ADHD 약의 효과를 교사들이 모르기 때문에 ADHD 아동을 이해할 수 없는 거라는 깨달음이 왔다. 초등교사들이 ADHD 성향인 아이들에게 약을 먹이고 싶어 하는 것을 나는 익히 보아왔다. 하지만 동료들은 약의 어려움을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아 했다. 나는 ADHD약을 먹는 동지로서, ADHD약의 장단점을 직접 뼈저리게 겪어본 사람으로서 ADHD 아이들과 교직 사회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민수의 일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학급 운영이 어려웠던 그해, 학교생활은 복잡했다. 여름부터는 긴장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피가 날 정도로 몸을 긁었는데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내가 ADHD 약을 줄였기에 학급 운영 이외의 업무에는 더욱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학년 부장은 나와의 접촉을 피하고 점점 냉소적으로 변하는 게 느껴졌다. 방학을 앞둔 12월 말이 되었다. 학급의 물건을 모두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나는 민수 부모님에게 연락했다. 민수 엄마가 민수의 짐을 챙기러 교실에 방문했다. 나는 민수 어머니에게 민수 잘 지내냐고 물어봤다. 그렇다는 어머니의 대답에 나는 “민수가 마음 같지 않고 조절이 어렵나 봐요.” 했다. 나는 민수 부모님께서 적극적으로 개선할 방법을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 말을 했었다. 하지만 민수 어머니는 그 말이 듣기 싫으셨던 것 같다. 민수 어머니는 “애들이 다 그렇죠.”라고 말한 뒤, “담임 선생님께서 욕을 하고 때려서 민수도 많이 상처받았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욕했다고 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일 때문에 하는 말일 테고, 아마 애와 상담하면서 어깨를 짚은 적이 있는데 그걸 가지고 때렸다고 말한 거 같다. 나는 민수 어머니의 반응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멈칫했다. 민수 어머니는 그 말을 남기고 짐을 챙겨서 교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민수 집의 원망이 느껴져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 뒤 나는 전화하기가 더 어려웠다. 가끔 민수 부모님과 출석 관련된 내용으로 사무적인 문자만 주고받았다. 1년을 마무리하는 교육과정 평가회 날이 되었다. 학부모 설문조사 결과가 교직원에게 공개되었는데, 익명으로 쓰인 한 평가가 내 눈에 띄었다. “교사가 아니라 매뉴얼 대로 하는 공무원이다. 애들한테 사랑을 주지 않고 너무 냉정하다.” 그런 뉘앙스의 말로 기억된다. 나는 왠지 민수 어머니가 내게 글을 남겼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민수가 학교를 나오지 않은 뒤 민수와 안면이 있는 다른 학부모도 나에게 유독 냉랭하게 태도가 변했다. 나는 민수 엄마가 다른 학부모에게 나에 대해서 말한 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생각했고 학부모들의 평판이 신경이 쓰였다. 교직원들은 민수 일에 대해서 내게 특별한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나는 ‘살살 달래면서 말했어야지 너무 직설적으로 말했네요.’,‘당신도 ADHD면서 ADHD 있는 아동을 품지 못했나 보네요.’라고 생각하는 교직원들이 있을 거만 같았다. 사실 그건 내 마음의 소리였을 것이다. 나는 민수는 ADHD가 극심한 편에다가 적대적 반항장애까지 동반한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민수에게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더 경력이 적을 때 만났더라면 민수를 통솔하지 못하여 교실이 엉망이 되거나 학부모가 나에게 민원을 심하게 넣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안타깝기도 했다. ‘좀만 내가 더 용기를 내었으면 그 아이가 학교를 관두지 않게 설득하고 ADHD약을 먹도록 권유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 과정(방어적인 학부모에게 종합심리검사를 받도록 설득하고, 담임 의뢰서를 써서 위클래스에 의뢰하여 외부 전문가와 연계하여 검사받도록 하고, 진단 결과 ADHD가 아닌 경우 민수 부모님의 원망을 감내하고, 진단을 받아도 꾸준히 약을 먹나 확인하고, 약효와 부작용을 학부모 및 의사와 소통하고, 다른 학생들과 학부모의 민원에 대처하고 학교폭력이 일어나지 않게끔 하며 학년 끝까지 민수가 학교 다니게 하는)을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민수는 학업중단 숙려제(학업 중단 의사를 밝힌 초중고 학생이 전문 상담을 받으며 일정 기간 학업 중단을 숙려하도록 하는 제도)를 이용하는 것도 거부했다. 교무부장에게 나는 “제가 민수를 잘 품어주지 못해서 학교를 관둔 게 아닌가 하네요.”라고 했다. 교무부장은 할 만큼 했는데 안 되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계속 민수가 눈에 밟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