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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난 바뀌고 있다.
Level 2   조회수 228
2020-08-25 16:21:31

  처음에는 ADHD라고 생각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계속되는 학업에서의 실패가 쌓여, 공부하러 가는 길 자체가 너무나 떨리고 고통스러웠고,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앉은 자리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덜덜 떨다가 나오게 되는 일들이 생겼다. 도저히 학업을 이어갈 수가 없어서 병원을 찾았다.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를 받고, 그것들의 도움으로 타 죽기 직전에서 급한 불은 어떻게 끌 수 있었다. 이 불구덩이에서 어떻게든 빠져 나와 보고자 이것 저것 검색해 보다가, 불안과 우울이 성인 ADHD의 동반질환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때까지의 나를 돌아 보자....

  갑자기 퍼즐이 맞춰졌다. 다시 병원을 찾았고, 간단한 검사 후에 약을 받게 되었다. 물론 약을 먹자마자 두통약 먹고 머리가 편해지듯 모든 것이 나아지고 모든 불편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약 자체에도 우여곡절이 많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스팀팩을 맞은 듯 고양감에 날뛰는 날도 있었고, 밥을 평소의 반의 반을 겨우 먹는 날도 있었다. 제때 약을 먹고도 무기력해 하루 종일 누워 있거나, 그런 내가 너무 싫은 나머지 화가 치밀어 오르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뀌고 있다. 시작조차 못하던 것들을 시작할 수는 있게 되고, 끝내지 못하던 것들을 끝낼 수 있게 되었다. 밀려 있던 잡무들을 드디어 다 끝내서 이제 하루하루 생각난 것들만 미리 적어 놓으면 미루지 않고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학업은 아직 쌓여 있는, 진작에 끝냈어야 하는 것들이 많지만, 다시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모든 날을 전진하는 데에만 쓰지는 못한다. 우울과 무기력에 뒷걸음질 치는 날도 적지 않다. 그래도 차근차근 무언가 회복되고 있다는 것은 느껴진다. 

  이런 나를 잃고 싶지 않아서, 항상 한 손에는 약봉지, 다른 한 손에는 인지행동치료 책을 들고 전진할 수 있는 날에는 앞으로 가 보려고 노력한다. 그럼 전진하는 날에는 2보 전진하고, 후퇴하는 날에는 1보씩 후퇴하고...그러다 보면 다른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과거의 나나 지금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중간에 지치지만 않는다면... 아직은 확신이 아닌 의문이지만, 아득바득 살아내다 보면 언젠간 나에게 더 자신있게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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