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릴 적에는 뭐든지 잘 하고 집중도 곧잘 했던 것 같은데, 성인이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수렁에 빠지는 것 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익숙한 일이 아니라서, 우연히 그날따라 피곤해서, 일이 많아서, 다른 사정이 생겨서...... 한 번은 실수고, 두 번까지는 시행착오라면 그 다음은? 할 말이 없었다.
말귀를 못 알아듣고 일을 처리하면서, 열심히 한 것 같은데 막상 돌아보면 한 것이 없는 하루가 쌓여갔다. 왜 이제 와서 이런 부족한 사람이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자꾸 못한 것들, 해야 하는 것들의 목록은 길어져만 가는데 기한이 넘도록 주저앉아있는 나 자신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가게된 것이다.
진단을 받고 이렇게 확실하게 결과가 나왔는데도, 꾸준히 약을 먹고 효과를 본 것 같으면서도 정말 뭔가 달라진 게 있긴 한지 헷갈릴 때가 있다. 편두통이나 그 밖의 미묘하게 불편한 증상이 생기면 뭔가 알 수 없는 부작용이 아닌가 신경이 쓰였다.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먹던 기호식품과 약국 약 하나도 일일이 검색하고 확인하는 일이 피곤해서 가끔은 이대로 그만 치료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 사소한 불안과 의심의 그늘 속에서 일상을 지내다보면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한 번씩 얘기할 때가 있다. 약 안 먹으면 안 돼? 멀쩡한데 괜히 탈 생기면 어떡하니.
문득 걷다가 어릴 적의 기억이 떠올랐다. '집중을 잘하는 나'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조용히 앉아서 머릿속에 온갖 몽상을 펼치던 것, 공부나 청소, 심지어는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면서도 한 가지만 하면 심심해서 두세 가지를 동시에 하던 것. 그러면서도 집중을 못하고 대부분은 제대로 끝맺음을 못하던 것. 집중하는 상태 비슷한 것까지 도달하기 위해서 수 분 수십 분, 때론 몇 시간이나 그 이상이 걸리기도 했었다는 것. 지난 일이라고 이다지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이렇게나 나는 나였고, 오늘도, 내일도 아마 그럴 것이다. 치료를 하니 보통 사람의 출력을 낼 수 있는 건데, 자꾸 치료 이후의 모습이 온전히 내 것인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된다.
오늘은 약을 일찍 먹었고, 일이 늦어져 늦게 가게 됐고, 딴 생각 하다가 정거장을 몇 개 일찍 내려서 길을 잃어버렸다. 속상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길을 찾으며 못 보던 풍경을 보았고, 낯선 곳의 설램을 안고 걸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일이 어쩐지 짧은 여행 같아서 즐거웠다.
하지만 치료를 마음대로 관두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우연한 실수으로 인한 즉흥적이고 낭만적인 순간들은 순간일 때에만 아름다울 수 있는 거니까. 어쨌든 일상을 살아가려면 꾸준하고 굳건하게 헤쳐나가야 하는데, 노력도 물론 일부분 도움이 되겠지만 콘서타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내 것 같지만 내 것이 아닌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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