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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Level 3   조회수 120
2020-11-30 01:07:31


벌써 11월도 다 지나가는 차에 제목을 11월이라 지으니 조금 어색하다.

이번 년도가 어떻게 지나간 건지, 돌이켜보면 늘 빠르기만 한 것 같다. 그 순간순간에는 길고도 또 지루하기도 했었는데.
오랜만에 에이앱에 왔다. 이곳의 인연들에 대해 계속 알아가고 싶다.

아마 내게 시간이 흘러간 만큼의 시간이 모두에게 흘러갔고 그 시간은 내가 모르는 시간일 것이다.

그동안은 바빴고, 여러 일도 있었다. 모든 것을 다 기록할 수는 없겠지만 어찌 되었건 나의 경험들로 남았다.

어떤 프로젝트, 일은 아니지만 반 재미로 시작해서 굉장히 진심이 되어버린 일도 진행 중이고,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가 남았다.

그와 함께 책임감과 위치라는 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말은 늘 강조되곤 하는 흔한 말이지만, 이번에 잘 느낄 수 있었다.

두 프로젝트를, 일은 아니지만 일종의 팀장 격 위치에서 맡게 되었는데 결과만 요약한다면 하나는 어찌 되었건 내가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끌고 가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었고

하나는 좀 망했다. 프로젝트 자체가 망했다기보단 나의 기여도에서 망했다는 뜻이다. 사실 내가 봤을 땐 좀 망한 것 같기는 한데, 내가 손댈 영역에서 멀어졌다.

차이가 있었다면 하나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를 실질적인 책임자 혹은 결정권자로 인정하는가 아니었는가의 차이 같다. 사실상 둘다 책임은 느끼고 있고 실제로 책임을 지는 위치였는데 나를 힘 빠지게 한 것과 그렇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나 혹은 @특유의 강력하고 발산적인 에너지를 견디지 못하는지도 다시 조금 알 수 있었다. (하나는 같이 진행한 분 중 한분이 @셔서 초반에 더 쉬웠을까?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이 나의 많은 양의 언어들을 다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내가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일까?

두 가지를 굳이 철저하게 구별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필요한 말을 했다. 그러나 어느정도 조절할 필요성은 느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내게 끝까지 결정권이 있던 것의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의 역량을 심하게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하나의 사안에 대해 광범위하고 폭넓은 피드백이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나에게는 아주 쉽고 책상 위의 물건을 여기에서 저기로 옮기는 정도의 일일 뿐인데,

자세히 물어보고 대화해 본 결과 다른 사람들이 들을 때에는 마치 융단폭격을 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 같았다. (내가 폭탄을 쏘듯 공격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수와 동시다발성, 한 사안에 대해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접근한 것들의 궤도가 융단폭격 같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사안들을 듣고 판단하는 게 큰 좌절을 안겨주는 일 같았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어서 나와 소위 업무 궁합이 맞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이 매우 귀하다고 느껴진다. 그 말들의 방향성을 이해하고 내가 말하는 것이 가리키는 지점을 짚어내어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문 것 같다. 그걸 왜 모를까? 사실 그 이유를 잘은 모르겠다. 그냥 듣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걸 고려를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다양한 고려 지점과 척도를 주고 알아서 하라고 주는 것이 그런 사람들에게는 고통을 주는 일인가 싶다. 내가 일을 주는 스타일은 내가 원하는 척도와 요건을 제시하고 그 내적 지향들에 맞게 알아서 해 오면 거기에 만족하는 편이다. 상대의 역량을 존중하는 의미도 있었는데, 오히려 그걸 싫어하는 타입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그냥 내가 다 결정해서 말했다. 그걸 편안해하는 듯했다. 나는 결정 과정에 상대의 지식이나 역량을 발휘하여 내가 아는 범위의 것과 상대가 아는 것들을 조율해서 지향을 맞춘 후 그 안에서는 상대의 역량을 비교적 자유롭게 발휘하는 것이 대체로 최상의 성과이기 때문에 그 지향점과 고려할 척도들을 보여준 건데 그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표현의 문제일까? 하지만 너무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못 알아들으면 앞으로는 선택권을 주거나 결정에 참여시키지 않고 결정해서 말하면 그만이다. 내가 주는 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느끼지 못해서 상당히 의아했다. 만약 내가 한명 더 있어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나의 방식으로 말한다면 나는 알아들을 수 있을까? 나를 만난 적 없어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설명이 부족해서 곤란을 느낀 적이 많지 설명이 많아서 곤란함을 느낀 적은 없다. 그냥 결론만 말하면 또 자기 생각대로 이상하게 한다. 여러모로 일을 주거나 협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나도 다른 사람의 작업에 대해서 나의 기준에 완벽하게 맞지 않더라도 그럭저럭 만족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디까지 타협하는가,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것에 힘 쓸 필요 없는 그런 여러가지의 일들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어쨌거나 이제 남은 보고와 예산 집행등을 제외한다면 상당히 긍정적으로 마무리 중이다. 다만 페이퍼워크가 너무 많아서 화가 난다. 체계가 없는 것의 차이가 뭔지 너무 잘 느껴진다. 무엇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고 언제 뭘 요청하고 협업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이 다 기술이고 세련된 하나의 과정 같다. 이런 것들에 관심이 생겼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정리하여 보고하기와 폼에 맞춘, 어느정도 있어 보이게 만드는 서식 같은 것들은 너무 하기 싫고 어렵지만. 하나의 일을 시작해서 마무리까지 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일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되는 것 같다. 그 일이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코로나로 이번 한 해는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나름의 경험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것이 없어도 시간은 흘러가니까 무엇으로 채우는가만 남는 듯하다.

약을 한동안 줄이거나 끊었었는데, 그냥 그러지 말고 계속 먹어야겠다.

그런데 약을 끊어도 체중이 늘지 않는다.

다른 문제일까?

어쨌거나 지금은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하고 있다. 

그 동안 다들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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