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하다면 살벌했을 예전을 아득하게 떠올린다. 일상적으로 면박을 주던 대리부터, 타인에게 저렇게 말할 수가 있나 싶은 말을 내게 하던 과장, 별거아닌 소기업일지언정 회장만은 첨탑 끝 존재처럼 모시던 사수. 어쩌면 그게 대다수 모두가 투신하고 있을 회사의 모습이었지만, 여러 과정을 거쳐 나는 그 첨탑에서 투신해 내렸다. 미래는커녕 현재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밀려떨어졌다는 말이 옳겠다.
운동을 했다. 자고 일어나서부터 자기 전까지, 트레이너가 집에 가라고 말할 때까지.
힘이 드는 줄도 몰랐다. 잠도 오지 않았고,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도 알 수 없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방출이었고, 미래의 나자신이 쭉 돈을 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과거의 내가 압정처럼 뿌려놓은 할부금들이 내딛는 자리마다 그득했다.
내게는 오직 나의 고양이. 하나뿐.
사는 곳을 옮겨 타지로 오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고양이를 더 키우게 되고, 새로운 삶의 기반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순식간이었다.
약간의 유예와 행복을 거머쥐고서, 빵을 굽고 음식을 만들고, 고양이들을 돌보면서 시간을 보내지만 막연하니 질문해본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 직장이라는 곳에 내가 가당키나 한 사람인지.
함께 걸을 사람이 있으니 전보다는 따뜻한 내일일거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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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말 어느 추운 날에 집 근처 바다로 스냅촬영을 하러 갔다.
요령이 없는 줄은 알았는데, 동행한 플래너와 사진작가의 지시를 서툴게 따라가느라 갈대밭을 몸으로 일직선 그대로 뚫는 남자친구를 보고 있자니 살짝 이거 괜찮나 싶은 심정.
끝나기는 끝나는가 싶게 추운 밤까지 이어진 촬영 끝에 집에 와서, 그래도 다음날 출근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괜찮겠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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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님은 어쩜 이렇게 좋은 분들일지 마음 곁을 내주기가 무섭게 어찌 이러시나 싶고
한없이 순한 줄로만 알았던 남자친구가 맞서싸워주는 점은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이해하는 날이 오기는 할까? 내가 남자친구를 가족으로부터 떨어뜨려놓아 외톨이가 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사람이 이사람에게는 내가 꼭 필요한 것은 분명하니까, 먼저 놓지 않는 한 놓지 않으리라고, 결코 먼저 놓을 생각도 못하게 하고 말겠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