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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을 앞둔 날의 잡설
Level 1   조회수 139
2021-05-30 22:50:13

서류합격을 했다. 덕분에 6월 5일의 구술면접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간절히 합격하고 싶었기에 실수 없이, 후회 없이 끝내고 싶다. 이번 기회를 잡지 못하더라도 또 다른 기회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이번에 바로 합격한다면 자기확신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콘서타를 처방 받고 난 후 기능이 이전에 비해 월등히 좋아졌음을 느끼고 있기에 기세를 몰아 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싶고, 증명해보이고 싶다. 그래서 여기에 반드시 지키고 싶은 목록을 적어두고 적어도 6일간 지켜보려고 한다. 면접이 끝난 날 후련하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1. 매일 8시 전에 일어나기, 매일 1시 전에 잠들기

2. 규칙적인 식사 하기, 밤 늦게 밥을 먹어 숙면에 악영향을 주는 행동 삼가하기

3. 공부를 시작하기 전, 공부를 모두 마치고 난 후 매일 스트레칭 30분씩 하기, 간단한 운동 하기, 적어도 2시간에 한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서 스트레칭 해주기

4. 하루 8시간은 반드시 집중해서 공부하기, 그 중 3시간 이상은 영어 공부에 투자하기, 2시간 이상은 불어 독어 라틴어 공부에 투자하기

5. 면접을 핑계로 수업 준비를 소홀히하지 않기

6. 모든 SNS 들어가지 않기


한 달 전보다 상태가 많이 좋아진 것인지 안정제를 먹고 자면 항상 늦잠을 잔다. 못 잔 잠을 몰아잔다고 생각하며 최대한 편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늦잠을 잔 아침에는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는 자괴감이 든다. 부산스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나면 과몰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오지만 만족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신이 생기는 건 내가 나의 병을 자각하고 있고, 그에 마땅한 해결책을 배우고 있는 까닭이다. 리튬이나 데파코트와 같은 양극성 약을 복용할 때는 오히려 일상생활에서의 기능 부진을 겪으며 불안과 강박이 훨씬 심해지곤 했었다. 손 떨림으로 인해 사회 공포증과 같은 증상이 생기기도 했고, 식욕 증가로 인해 체중도 10kg 이상 불었었다. 빨래 거리와 설거지 거리는 한 달 이상 쌓이기 일쑤였고, 집은 언제나 돼지우리였다. 처음 ADHD 진단을 받았을 땐 의아한 감정이 가장 컸다. 내가 여지껏 이뤄온 성취들이 강력한 반증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년기, 청소년기의 기억들을 하나씩 반추해보고, 수많은 정신과를 전전하면서도 매번 미끄러지는 진단에 실망했던 경험들을 상기해보면서 차츰 인식을 수정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메틸페니데이트 계열의 약을 복용한 후 눈에 띄게 좋아지는 기능 향상은 진단에 의심을 품던 나를 골탕 먹이는 것 같았다. 매번 고통 속에서 내가 난독증일까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며 읽어내려갔던 글자들이 눈동자 가운데로 빨려드는 것 같은 경험,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문장들이 차례로 머릿속으로 입력되는 것 같은 경험, 커피를 들이붓지 않아도 집중할 수 있는 경험은 이 약물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부를 지속해나가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해 주었다. 자취를 시작한 후 4년 간 한 번도 개어 본 적이 없던 이불을 개고, 밀리지 않고 청소와 빨래를 해내고, 보던 책을 똑바로 정리해서 책장에 넣게 되고,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거나 트럭에 치이거나 지하철 사이에 끼여 죽는 모든 부정적 정서가 약화되고, 오래간 내 기분을 지배해온 충동성이 가라앉게 된 나를 의식하게 되는 데 이르자 먼 길을 돌아 적확한 진단에 이르렀다는 해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도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진작에 알지 못했다는 후회감이 함께 들곤 한다.


여전히 나는 많은 것들에 쉬이 불안을 느끼고, 지키지 못할 계획을 충동적으로 만들어둔 채 폭발적으로 일을 시작했다가 금방 그만두곤 한다. 그럴 때마다 자기처벌을 한 뒤, 이내 자기처벌의 무용을 자각하고, 후회하고 강박을 쌓아간다. 그렇지만 정확한 인식 없이 자기처벌을 반복하며 자기혐오를 쌓아갔던 때보다 훨씬 편안한 마음인 것은 확실하다. 습관은 차차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일테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잘 살아보고 싶다.


우선은 주어진 6일 동안 최선을 다해서 면접 준비를 해보려 한다. 대비할 수 있는 모든 경우에 철저히 대비해서 후회 없는 상태로 면접을 진행하고 싶다. SNS에 이런 다짐을 올려두기엔 뭔가 낯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이곳에 기록해두려던 말이 길어졌다. 그래도 주절거려보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으니 종종 기록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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