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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울증 피곤하다
Level 8   조회수 216
2021-06-19 20:50:28

마치 샤워할 때의 수도꼭지 같다.


왼쪽으로 미세하게만 돌려도 마그마같이 화끈한 (경)조증이 쏟아지고, 화들짝 놀라 오른쪽으로 돌리면 빙하수처럼 차디찬 울증이 쏟아진다. 적당한 온도의 중간 지점을 맞추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수도꼭지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수도꼭지는 어찌 되든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이 버무려져 하나가 되어 나오지만, 조울증의 경우는 (경)조증과 울증이 반드시 잘 섞여 나오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온수와 냉수가 만나 미온수가 되지 않고, 온수와 냉수를 몹시 짧은 시간 간격으로 오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수도꼭지보다 훨씬 안 좋다.


처음에는 내가 원래 그런 줄 알았다. 뭘 해도 즐거울 때가 있고 뭘 해도 엿같을 때가 쭉 있었고, 그냥 변덕이 죽 끓는 듯한 성향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2-3년 전, 정신과에서 "우울은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닌데.."라는 혼잣말에 가까운, 의미심장한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러고 보니 그 기분 좋음과 기분 나쁨의 교차가 꽤 필연적이라고 느껴졌는데, 예를 들어 내가 조울증의 ㅈ자도 떠올리지 않았을 무렵에도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분명히 곧 기분이 더러워지겠군." 이런 기억 중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이 아마 2016년 경일 것이다. 사실 그보다 최소한 1-2년 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경)조증의 가장 큰 단점은 첫 번째로 그 뒤에 반드시 울증이 올 거라는 사실이고, 두 번째로는 돈을 굉장히 많이 쓰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비가 급상승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경)조증 그 자체의 단점은 크지 않다. 울증만 오지 않는다면. (경)조증의 엿같음은 대체로 그 뒤에 찾아오는 울증이 오고 나서야 제대로 실감할 수 있다. (경)조증 때는 웬만하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다 해야 할 것 같기 때문에 이것저것 다 하겠다고 나대기 쉽다. 그러고 나서 다 하기만 하면 뭐가 문제겠는가? 다만 울증이 오고 나면 그 열 가지 일 중 한두 가지도 제대로 해낼 수 없게 되고 시쳇말로 `빤쓰런`을 하게 된다. 인간관계 망치기에 딱 좋다.


울증의 가장 큰 단점 또한 인간관계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힘든 거로 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예컨대 "안녕하세요!"라고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것도 힘들다. (경)조증 때에 그런 인사를 하는 것이 1키로 정도의 무게감이라면 울증 때는 20키로 정도의 무게감이라고 할 수 있다. 할 수는 있다. 한다고 죽지는 않는다. 다만 몹시 어색한 얼굴과 이상한 목소리로 바들바들 떨면서 하는 거지. 그리고 그 직후에 20키로 짜리의 얼굴 근육을 쾅 하고 떨구게 된다는 거지.


그동안 리튬과 데파코트 같은 것을 안 먹어본 것은 아니지만, 체중이 너무 늘어서 복용을 그만두었다. 현재는 리페리돈(리스페리돈) 2미리와 아빌리파이 2미리를 같이 먹고 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 같은, 덜컹거리는 하루하루의 연속이고, 이런 일상을 버티는 것은 꽤 지치는 일이다. 의사 선생님이 일을 제외하고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일을 잠시 접어두라 하셨지만, 아직 포기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 부디 균형을 찾게 되는 날이 곧 오길, 그리고 그런 날들이 오래도록 계속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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