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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 부캐는 사회인, 이제 내 맘대로 살기로 했다.
Level 3   조회수 191
2021-09-10 00:35:25


 나의 본능은 마음껏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고, 감탄사를 내뱉고, 기뻐서 방방 뛰고, 답답하면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고,

우울감이나 예민함에 한껏 젖어들거나 풍부한 상상력으로 대화하고 싶었다.

받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한심하게 바라보거나 정신병자로 바라봤다. 

그래서 나는 조용해졌다. 그런 한심하고 나약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고 잔뜩 구겨서 내면 깊숙한 곳에 아무렇게나 쳐박아뒀다.

얌전하고 차분하고, 마침 얼굴도 귀여운 편이겠다, 사회에 유리한 사람으로 한껏 꾸몄다. 

아무때나 삐죽삐죽 나오는 본능,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 한껏 꾸민 가면의 답답함, 

그럼에도 사회에 스며들지 못하는 한심한 감정과 무력감.

술을 마셨고, 어울리지도 못할 모임들에 꾸역꾸역 참석했고, 돈을 탕진했다.


내가 그전에 미쳐버릴것 같아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가 왔고, 나의 배우자는 나와 새로운 길을 걸어주었다.

나를 바꾸려하지 않았고, 불쑥 튀어나오는 본능들을 차분하게 바라봐줬다. 그리고 자책하는 나를 품어주었다.


그러다 30대 중반이 다되서 MBTI 관련 유튜브를 파다가 성인ADHD 영상이 연결되었다.

인생의 퍼즐이 모두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내 인생 최고의 단어 ADHD! 


책상, 서랍, 옷장, 냉장고, 가방.. 손 닿는 모든 곳이 정리안되고 엉망진창인 것도

앉아있으면 집중할 수 없고 뛰쳐나가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늘 머릿속이 볼륨을 줄이거나 채널을 바꿀 수 없는 라디오처럼 시끄러운 것도
듣고 있어? 무슨 생각해? 멍 때리는 중? 이라는 말을 듣는 것도
감각이 예민해서 양말이나 신발을 벗어버리고 싶은 것도 
그것은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고, 어디서든 인정받지 못했을 뿐이었다.


아직은 ADHD의증으로, 약을 먹고있다. 선생님이 정말 ADHD가 맞는 것 같지만 일단 약을 써볼게요. 라고 말씀하신다.

일주일에 두,세번은 까먹고, 아침에 기분이 안좋아서, 배가 아파서 등등 

제멋대로 사는 인간에게 걸려든 약은 큰 효과도 큰 부작용도 주지 못하고 있지만.

술자리탕진잼으로 돈쓸때보다 정신과에서 상담받는 것이 이렇게 짜릿한 돈쓰기 일줄이야!

내돈내산 ADHD 발산하기! 꼼지락 거리고, 눈도 안맞추고, 손톱 뜯뜯, 의자 뜯뜯, 산만하고 두서없이 이야기해도 쌤은 미동이 없다. 너무 좋다.

과연 어느 약이 어느 시기에 효과가 들지 알아맞춰 봅시다? 

언제 머리에 댕~ 소리 나면서 약효과를 맛보고 감탄하게 될지 기다리느라 스릴넘침!


마음껏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고, 감탄사를 내뱉고, 기뻐서 방방 뛰고, 답답하면 머리를 쥐어뜯는 것이 나다운 것이었다. 

그런 나를 30년 넘게 부정했다니 나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기로 했다.

너가 뭔데 나를 한심하다고 퐌단해! 나도 나를 한심하다고 퐌단할 수 없어!


지금은 오롯이 내가 혼자 있거나 나의 동반자 앞에서만 ADHD 스위치를 켠다.

10년간 스위치 자체를 부정한터라 제법 능숙하게 부캐를 꺼낼 수 있다. 물론, 부캐는 사회인 모드다.

그래서 부캐를 접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뭘까 진지하게 고민중이다. 부캐는 정말 내 인생에 비효율적이다.


매일 머릿속은 시끄럽다.

고장난 라디오는 볼륨과 채널이 뒤죽박죽이고,

초원을 제멋대로 누비던 야생마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한쪽에서는 락페스티벌이 열리다가

뜬금없이 어제본 넷플릭스가 재생되기도 하는 등 

동시다발적으로 난리 풍년인 그 머릿속에 좌절하지 않고, 장단을 맞추며 살아가보자,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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