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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근황 + 약간의 고찰
Level 8   조회수 169
2021-11-26 17:58:12


1. 몇달 잠잠하다가 다시 경조증이 의심되어 아빌리파이를 무려 7미리를 받았다(!) 어느 정도 제어는 되는 듯 하나 여전히 약간 뜨는 느낌은 있다. 더 올려야 할까. 




2. 백수 생활을 한 지도 3개월 가량이 되었다. 그만둘 때, 그동안 나로 살면서 쌓아온 데이터가 경고음을 몹시 울려댔었는데 (넌 백수가 되면 분명히 시간을 낭비할 것이다!!!!!!!!!!!! 시간을!!!!!!!!! 낭비한다고!!!!!!!!! 너도 알잖아!!!!!!!!!!!!) 역시는 역시였다. 


한 일이 없는건 아닌데, 아니, 오히려 무척 많은 일에 시달린 느낌 마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일들을 아직 시작 못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은(?) 큰 위기감은 없다. 자신감일까, 경조증이 주는 grandiosity일까, 아니면 항우울제 등이 불안감을 눌러주는 덕분일까. 뭐가 됐든, 곧 많은 것들을 시작할 것이다. 반드시, 부디, 곧. 




3. 내가 1년 10개월 전에 학원 일을 시작하며 인수인계를 받을 때,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 전임자가 몹시 불친절하고 무책임하다고 느꼈다. 일을 혼자 시작하며 '이걸 안 가르쳐 주고도 내가, 아니 학원이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다고? 아니, 아예 신경을 안 쓴건가?' 싶은 적이 많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이라고 느꼈다. 


1년 8개월이 지나 어느덧 내가 인수인계를 하는 입장이 되어 느낀 점은, 놀랍게도 그 사람의 심정이 퍽 이해가 간다는 거였다. 나는 얼굴 근육 하나를 들어올리기 조차 벅찰 만큼 지쳐있었고, 일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져있었으며, 그저 쉬고 싶은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전임자만큼이나 인수인계 일에 소홀했냐 하면 그것은 아니긴 하다. 내가 더 잘나고 좋은 사람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 사람은 나보다 훨씬 더 지쳐서 정말로 (정신적으로) 숨이 꼴딱 꼴딱 넘어가는 지경이었을 지도 모르고, 또 나와는 다른 경험으로 (예를 들면 원생들이나 원장님 사이에서의) 학원과 원생들에 대한 감정적 유대감이 짓눌려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나는 다행히 그 지경은 아니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원생들과 후임자를 (약간은 과하게) 걱정하고, 챙기고, 눈물을 글썽이며 학원을 떠났다. 내가 몇 달, 길게는 일년 이상을 가르쳐온 아이들이 나 아닌 다른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는 내 마지막 심정은 이랬다. 아. 얘네들 내가 가르쳐야 하는데. 얘네들 이거 해야 하는데. 얘네 어쩌지. 




4. 일의 막바지에서 내가 느낀 건, 내가 원하는 '오염되지 않은 어른' (참으로 사춘기스러운 표현이다. 웃기게도 여전히 저 개념에 어느 정도는 사로잡혀 있다.)이 되기 위해서는 '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는 거의 생각지 못한 부분이다. 어떤 맑은 것은 필연적으로 연약하고 ephemeral하다고 생각했고 (이것은 그 당시 강렬히 심취해있던 특정 계통의 문학적 발상이기도 하다.)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고, 이를 위해서는 어린 아이처럼 '맑고 가벼운 상태'를 유지해야 하며, 그 세월을 견뎌가며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단단하고 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연약한 것은 맑을 수 있으나, 그것은 결코 오래가기 어렵다. 맑고 연약한 것은 (아주 유별나게 운이 좋지 않은 한) 오래지 않아 탁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만큼 강한 어른은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순간이 몇 차례 있었을 것이다. 분명 내가 겪는 고통과 어려움으로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원장님에 대한 감사함을 한 순간 내팽겨친 적이 있었다. 합리화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 고통과 어려움에 조울증도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겠다.




5. 처음으로 직장다운 직장(?)에 몸담아본 후, 비록 한 푼의 돈도 모아놓지 못했지만, (이 역시... 조울증의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고—이 글에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아이들과 함께 하며 배운 것들, 그리고 받은 것들도 제법 있다. 그리고 일 막바지의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며, 심지어는 그에 대한 약간의 자신감도 더 생겼다. 




6. 할말이 바닥났다. 내 인생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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