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잔 13개, 오늘은 유리병 3개를 깻다. 첫번째 문제는 깨뜨린 곳이 직장이란 점이고 두번째 문제는 깨뜨린 잔과 병이 각각 10만원 상당의 고급 잔이고 15만원상당의 와인이라는 것이다. 약을 복용한 뒤로부터 집중을 하고 시작하는 서비스 중에는 잔실수는 조금 나오지만, 고객도 만족하고 나도 만족할만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기분이 좋았다. 일 잘하는 일반인 같아서 좋았다. 요즘 좀 잘한다는 칭찬도 듣고 말이다. 사고는 서비스가 끝나고 집중 스위치가 꺼지는 마감시간에 발생했다. 조심할 겨를도 없었다. 그냥 나는 내 길을 가는 것 뿐이었는데 눈 떠보니 트레이를 엎어버렸고 와인 상자를 치고 지나간것이다. 상사님들은 질책않고 파손처리하면 된다며 신경쓰지말라 다음부터 조심하자며 다독여줬지만 내 마음이 울적해지는 건 이렇게 부주의한 모습으로 내가 어딘가 부족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게 죽도록 싫기때문이다.
그러면 내 진급은? 직장 내 평판은? 돌봐줘야하는 존재, 혼자 두면 마음이 편치않는 존재는 우리집 강아지 두마리면 족하다. 나까지 그런 취급을 받는건 정말 죽기보다 싫다… 진짜 너무 싫다. 더 잘하고 싶지도 않고 남들만큼만 하고 싶다.
‘저는 집중 스위치를 오래 켜놓을 수 없어서 켰다 껏다 하는데요, 스위치가 꺼지면 되게 부주의해지고 할 일도 잘 까먹고사람이 좀 모자라지거든요? 이해좀 해주세요. 일 못하고 손 많이가는 사람 취급은 말아주실래요? 저 집중하면 잘해요.’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더 꼼꼼히 챙길테니 걱정마세요.’
이렇게 대답해주는 사람 어디 없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