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에이앱에 글을 쓴다.
한동안 에이앱에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요즘 사람을 잘 만나지 않은 이유와 같다. 나 자신, 혹은 나의 일상에 관련하여 변한게 없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나면 근황토크를 하고 해야 하는데 그 근황에 대해 얘기하기가 어려워서 사람을 만나기 꺼리게 된다. 늘 상대방의 이야기만 듣는건 한계가 있으니까. 나의 한계가 아니라 나와 이야기하는 상대방의 한계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일방적인 것이 아닌 서로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말이든, 정보든, 사랑이든. 몇년전부터 나는 그냥 강물 밑에서 물 속에 몸을 맡긴 채 가라앉았다가 이따금씩 수면 위로 올라왔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 모습은 모든 것을 통달하고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긴 구루의 모습이 아니라 더이상 헤엄치기를, 허우적거리는 것조차 포기해버린 어떤 것의 모습이다.
최근에 나랑 가장 친한 친구가 결혼을 했다. 같은 대학교를 나오기도 했고 지금도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기에 종종 만나긴 했지만 결혼하기 전 한달정도에 시간날 때마다 자기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사실 윗 문단의 이유로 자주 만나는 것이 꺼려졌지만 그래도 어짜피 자기 결혼하면 따로 술마시기도 어렵다는 그 친구의 꼬심을 이기긴 어려웠다. 자주 보는 사이기도 하고 나나 그 친구나 별 다른 이야기 할 근황거리도 없어서 별 말없이 술을 마시는게 다였다. 코로나 거리두기 규제로 인해 청첩장모임 시 사람을 많이 부를 수 없기 떄문에 그 친구는 서너명정도씩 나눠서 모임을 가졌고 그 모임들 중 서 너 모임은 나도 아는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그 모임떄마다 그 친구는 또 나를 초대했고, 나는 한 친구의 청첩장모임을 무려 4번이나 참여했다. 청첩장까지 4개를 받은 건아니지만. 그리고 결혼 전 마지막 청첩장모임에서 술을 역시나 진탕먹고 모임이 파하고 가는 길에 따로 맥주집을 들러 한잔하였다. 말없이 술을 마시다가 아주 슬픈 표정으로 그 친구가 입을 떗다. 계속 가라앉아 있는 네가 걱정되고 자기마저 결혼하고 나면 더 걱정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너가 유일하게 남은 아픈 손가락이라고.
생각해보니 이 친구는 어떻게든 강 깊이 가라앉은 나를 꺼내려고 수없이 시도했다. 대학교때나 지금이나 깊은 우울함에 빠져 집에서 혼자 가만히 나오지 않을때도 억지로 찾아와 욕을 한사바리하면서도 집을 같이 청소해주고, 어떻게든 나를 불러 세상밖으로 나오게 했다. 그 친구의 슬픈 표정과 아픈 손가락이라는 말을 듣는 그 순간이 뭔가 익숙하다 싶어 생각해보니 옛날 오래사귀었던 예전여자친구에게도 그런 똑같은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은 왜 항상 나를 보며 눈물을 흘리며 널 구원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걸까 아니 왜 나는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걸까.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자신이다. 더 이상 나떄문에 주변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를.
그래도 다행히 회사생활은 그럭저럭 잘 하고 있다. 어디 책에서 회사에서 자기의 단점을 커버하려 하지말고 자신의 장점을 더 극대화시켜라라는 조언을 봤는데 첨 봤을 땐 한참 회사생활에서 실수를 많이하던 떄라 그게 어디 쉽나 거 참 신설놀음같은 말이군!이라는 생각을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가 바뀌면서 현재 내가맡은 맡은 역할은 나의 온갖 단점들, 덜렁거림, 일정못지킴 등등은 얼추 다른 장점, 리써치의 과몰입, 호기심 등등으로 커버할 수 있었다.
내가 잘 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밀고 나가면 된다라는 것. 그 것도 참 복이라면 복일 수 있다. 물론 바쁠 때도 있고 그로 인해 번아웃 될때도 있지만. 거기다 나는 집에 있으면 누구를 딱히 만나지도 않고 우울해지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도 회사를 나가는게 좋다. 사람을 만나고 무언가 일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목표도 없이 표류중인 나에겐 어떠한 일에 몰입한다는 것만큼 위안이 되는 것이 없다. 집안일도, 운전면허등록을하러 학원에 가는 것도, 명절 때 집에 가는 것도, 관리비를 제 떄내는 것도, 나에겐 너무 힘든 일이 많다. 일단은 다 제껴놓고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부터하자. 그래서 오늘도 집에서 청소해야지~ 생각을 하다가도 우선 카페에 와서 에이앱에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나서 헬스장에 가서 스쿼트를 할 예정이다.
할 수 있는 걸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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