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재님이 나온 금쪽상담소에서 완벽주의 관련 이야기가 나왔다. 나의 상태와도 비슷했는데 무언가 시작을 하면 제대로 완벽하게 해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그래서 차를 사도 모든 차를 다 알아보고 타 봐야 직성이 풀린다거나, 간단한 운동을 해도 장비와 시설을 알아보는데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린다.
오은영 선생님은 이것이 실패나 실수를 피하기 위해 결정을 굉장히 어려워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현재 상태가 정확히 그렇다. 무언가 시작하는것을 두려워한다. 그 이면에는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맞닥뜨리는 데에 대한 불안이 있기 때문이다. 우원재씨는 어린 시절 본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겪었을때에 대한 충격이 남아있었고 나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이것이 너무 심해서 더 큰 도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 능력에 비해 자꾸 작은 세상으로 가려고 하고, 이러한 두려움이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와 자주 충돌한다. 그리곤 합리화한다. 통제하지 못하는 곳에서 다른 사람이나 요인으로 인해 괴롭고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지 못할 바에야 나만의 세계를 만들거야. 오롯이 내 자유 의지로만 살아갈거야.
하지만 아무리 작은 세상으로 들어가도 세상에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어디든 크고 작은 실패와 실수, 그리고 그로 인한 괴로움이 뒤따른다. 그래서 변수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정도는 그 변수에 대한 면역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머물러있거나 도태되지 않고 계속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장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성장이라기 보다는 나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 성장이다. 자신의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갈증과 공허함을 느낄테니까.
뒤이어 '용서'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우원재님은 본인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고 싶다고 했다. 부처 같은 마음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이에 오은영 선생님은 용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다, 모든 일에 용서를 하고 싶다는건 자신의 감정까지도 완벽히 통제하고 싶어하는 마음이라고 하셨다. 이것 역시 너무 공감이 갔고 내가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괴로움과 맞닿아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너무도 이해가 가서, 연민의 마음이 들어서 용서를 했는데 다시 억울하고 괴로운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을 때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용서를 함으로써 다 끝난줄 알았는데, 이제 마음이 편해지고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왜 또 다시 반복되는 것인지.
이에 대한 답을 정형돈씨의 말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제가 2005년쯤부터 꽤 오래 불안장애를 겪었는데, 미워할 줄 알아야 그 불안과 감정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더라고요."라고 우원재씨에게 정형돈씨가 말했다. 여기서 아차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초연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괴로워하는 이 마음까지도 통제하고 싶어서 용서를 섣불리 했구나. 이해가 되면서도 절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고 싶어서 또다시 내 감정은 한 켠에 묻어두고 이해하는 척 내 마음을 속였구나. 그러니 감정을 충분히 게워내지 못하고 계속 이 과정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거구나.
오은영 선생님께서는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모두 회복하면서 살아가는 거라고 하셨다. 맞다. 나도 회복하고 싶다. 확실히 시간이 갈수록, 노력할수록 조금씩 더 회복해가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그 회복의 과정이 참으로 더디고 힘들다. 10만큼 간 것 같아서 기뻐했는데 다시 1로 돌아가기도 하고 일상이 만족스러워서 웬만한 일에는 초연해졌나보다 싶다가도 다시 마음이 저 멀리 지하 밑으로 파고 들어가기도 한다.
이왕 이 마음을 들여다보는 김에 충분히 미워하고, 원망하고, 나 스스로에게 솔직하자.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고 싶은 삶을 사는 데에 방해가 되는 이 완벽주의의 성을 조금씩이나마 무너뜨리자. 처음부터 모두 무너뜨리기는 어렵겠지만, 벽돌 하나씩 뺀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작은 것부터 해보자. 실수해도 돼. 실패해도 돼. 첫 걸음에 넘어질 수도 있겠지만 한 걸음을 내딛지 않고 열 걸음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한 걸음씩 천천히 가보자. 그러다보면 뛸 수도 있을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