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소가 필요하다. 잠시라도 고요함 속에서 쉴 수 있는 대피소.
내 몸을 잠시 편하게 둘 곳도. 내 마음을 잠시 편하게 둘 곳도 없다.
날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어른이라고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부모. 안전하게 쉴 수 있는 보금자리라고 느껴본 적 없는 집. 아무리 들여다봐도 맘 편히 행복한 기억 하나 없는 과거. 아무리 고민해 봐도 희망과 기대는커녕 포기와 한계만 보이는 미래. 외로워하면서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을 어려워해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인간관계. 못생기고 보잘것없고, 돈도 차도 가진 것 하나 없고, 지성도 인성도 나쁘고, 할 줄 아는 거 하나 없는 나 자신.
어디에 내가 있어야 할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내 마음을 어디에 둬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대피소가 필요하다. 수많은 폭격과 비명소리들을 피해 썩어문드러진 내 상처를 소독하고 잠시라도 고요함 속에서 평화를 느낄 수 있는 대피소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하지만 옆에 두어서 좋을 것이 전혀 없는 나 같은 존재를 품어줄 이는 세상에 없다.
또다시 내 몸과 마음은 축축하게 젖은 채 온 지옥을 방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