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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살인을 했습니다.
Level 2   조회수 45
2019-01-11 12:38:21
자존심 강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걸 못참는 아이였습니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그 아이는 원하는 모든 걸 할 수 있었기에 세상에 걱정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갑작스런 집안의 부도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세상을 가졌었던 그 아이는 이제 통학조차 왕복 4시간이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당장 닥친 이 현실과 그 연장선이 될 미래를 매일매일 그려보았습니다. '성공하고싶다, 부자가 되고싶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싶다, 멋있는 인생을 살고싶다, 공부해야겠다.'

그는 고등학생이 되고나서 진지하게 펜을 잡았습니다. 세상에 대학은 오직 서울대밖에 없다. 그는 미친듯이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펴면 단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글자가 자꾸 눈에서 튕겨져 나갑니다. 앉아서 글을 읽기 시작한 지 단 일 분이 지났는데 머릿 속에 큰 돌덩이가 하나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시각세포가 정보를 뇌로 보내주고 있는데, 뇌의 진입부가 굳게 닫힌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아, 공부가 이래서 어려운거라고 하는거구나.' 지금 전교 1등인 저 아이는 얼마나 노력을 많이했기에 저 정도의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걸까? 집중력이라는 것은 남과 비교를 하기가 힘든 부분이 있기에, 그는 '공부란 모름지기 엉덩이 싸움이다.' 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400등, 270등, 200등, 50등, 55등, 60등,55등, … 하루 14시간 이상 공부했습니다. 그는 쉬지 않았습니다. 쉬는 순간에는 불안이 덮쳐 쉴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대를 갈 점수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첫 번째 수능을 망쳤습니다. 수능 후, 그는 해도 안된다는 우울감에 빠졌지만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나는 해도 안되는게 아니야. 아직 죽을 각오로 해보지 않아서 안된거야. 한 번 더 해보자. 나를 죽이자. 죽은 사람은 어떠한 고통, 행복도 느끼지 못한다. 올해의 나는 공부하는 망자이다.'

그는 그렇게 재수를 하고 다시 한 번 수능을 봤지만 서울대는 못갔습니다. 원하는 대학에는 가지 못했지만 그의 인생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최고의 노력을 했고, 어떤 좋은 기회가 다음에 찾아오더라도 이보다는 더 할 수 없을 만큼의 노력을 했기에 그는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부 하나에만 매진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틀어지고, 제 자신에게도 혹독하게 대하면서 생긴 내면의 상처들은 재수 이후에도 아물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다른 생각이 들 때 마다 그는 스스로를 모욕하며 어떻게든 자리에서 이 악물었고, 공부하느라 기력을 다 쓴 뇌는 일상에서는 아무런 기능을 못 할 정도로 지쳐있었습니다. 그는 입시 전쟁 후에 말 그대로 너덜너덜해졌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그렇게 죽였습니다.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비유하자면 그의 머리는 항상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수도꼭지이었습니다. 그가 뭔가를 하려고 뇌의 수도꼭지를 돌리면 항상 물이 한 방울씩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갈증을 느꼈지만, 태어날 때부터 그는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만 보고 자랐기에 이게 당연한 건 줄 알고 살았습니다.

대학생활을 한 후 그는 군 입대를 합니다. 군 복무를 하는 중 후임자로서 겪는 수많은 스트레스 때문에 화병이 나서, 군병원에서 정신의학과 상담을 받습니다. 군의관님과의 상담을 통해 그의 화병은 단지 군에서 겪은 문제만 원인이라기보다는 숨어있는 원인이 더 있는 것 같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그렇게 그는 ADHD(이하 @)를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는 @ 진단 결과를 받고,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왜 그렇게도 오래 앉아있는게 힘들었는지. 남들은 이런 걸 편하고 쉽게 하는데 그는 이리도 어려운 건지. 그는 왜 인간관계에 있어서 약한지. @ 진단이 그의 모든 과거 이력을 설명해주진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애초에 아픈 사람이었다는 것에 안도했습니다. 그는 패럴럼픽에 나가야 할 선수인데 본인은 올림픽 선수라고 착각하고 전력투구를 했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못땄지만 은메달은 땄다는 것에서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토록 아팠었는데, 나는 애써 이걸 무시하며 살아왔구나. 미안하다. 콘서타 복용 후 남들이 살아가는 삶이 이런 삶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됐다. 나는 이제까지 남들도 이렇게 살아가는 줄 알았다. 핸디캡을 갖고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구나. 한 편으로는 너의 그 노력과 결실이 자랑스럽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얼마나 고통받았을지 느껴진다.' 그는 과거의 그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며, 콘서타와 함께 새 삶을 만났습니다.

그는 힘들었지만 저는 지금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행복합니다. 더 이상 머리가 아프지도 않습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잘 나와서 책도 잘 읽을 수 있고 생각의 흐름도 쭉쭉 이어져 나갑니다. 잡생각 또한 엄청 많이 줄었습니다. 그는 수학 공부를 하다가 1분 내에 불교까지 갔었는데, 저는 영어공부하면 오바마까지만 갑니다. 그리고 금세 원래 목적으로 돌아옵니다. 이 글 또한 대략 한 시간만에 작성했을 정도로 집중력이 좋아졌습니다. 8개월 전 처음으로 18mg를 복용했을 때는 별로 효과를 못느꼈습니다. 현재는 36mg을 복용중이고 효과를 어느정도는 느끼고 있습니다. 54mg까지 늘리고는 싶지만 군의관님의 반대로 인해 전역을 한 후에 새로운 병원의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아직 @과 그 치료법, 약 등에 대해 아는게 전무한 상태이지만 알고싶습니다. 저를 좀 더 잘 알고 싶습니다. 그에게 정말로 미안하기에, 자신을 더 잘 알고 이해하는 저가 되어야겠습니다. 몇몇 분들은 제가 콘서타 복용 전 후로 저 자신을 '그'와 '나'로 나눈 것에 대해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약을 통해 다른 삶을 살고 계시는 분들, 저 또한 그런 사람 중 일부입니다. 우리 모두 @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려서 숨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사이트를 만들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2019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자극적인 제목에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20살 때 저를 한 번 죽였습니다. 그리고 23살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지금은 두 번째 삶을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콘서타 하나에 자기 인생이 바뀌었냐고 묻겠지만, 제게는 정말 소중한 변화이고 기회였습니다. 콘서타 처방과 정신의학과 상담치료를 통해 저는 많이 건강해지고 있습니다. 정신적 건강도의 비교가 힘들기에 타인과 제 정신 건강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과거의 저와 현재의 저를 비교해보면 저는 지금 좀 더 건강합니다. 이번 글은 첫 번째 글이기에 콘서타를 복용하기 전의 제 모습을 위주로 작성했습니다. 정규적으로 글을 쓰는 건 처음이라서 어떤 식으로 써나가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어느 쪽으로 글을 써가든 제가 느끼는 @에 대해 작성해보겠습니다. 모두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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