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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Level 3   조회수 31
2018-10-30 03:28:56
2018년 10월 27일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제 2회 더 서울어워즈가 열렸다. 영화에서는 공작이 대상을 탔고 드라마에서는 나의 아저씨가 대상을 탔다. 공작은 안 봐서 평가를 내리기 어렵지만 나의 아저씨는 최근에 정주행을 했기 때문에 충분히 대상을 탈만 했다고 생각한다.

나의 아저씨는 이지안(배우 이지은)이 사채업자 이광일(배우 장기용)에게 폭행 당하는 설정과 20대인 이지안(배우 이지은)이 40대인 박동훈(배우 이선균)을 좋아하는 설정 때문에 여자 폭행을 조장하고 일부 아저씨들의 로망인 어린 여자와의 로맨스를 미화하지 말라는 등의 비판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젠더 이슈가 매우 민감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시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나 또한 그랬던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어차피 볼 시간이 없었지만 논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한쪽의 입장만을 수용했다. 그래서 나의 아저씨를 볼 일은 없을것만 같았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나의 아저씨를 인생 드라마로 엔딩곡 ost를 인생 노래로 뽑게 되었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올해에 잘한 일을 뽑으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나의 아저씨를 보게 된 것을 올 해에 잘한 일 중 하나로 뽑을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 지금 네 판단은 틀렸다고 말해줄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 어느 감독의 영화 제목처럼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뛰어나야할까?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이 질문에도 정답이 없다. 그래서 저마다 다양한 답을 내놓게 된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얘기했을 때도 그랬었다. 인맥, 외모, 배경, 재력, 재능, 두뇌 등 다양한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말하기로 했었는데 아마도 나는 말솜씨를 선택했던 것 같다. 말주변이 없어서 말을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말주변이 없는 편이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말을 꺼내더라도 재미가 없을까봐 걱정했고 대화의 맥이 끊길까봐 걱정했다. 그래서 말을 아끼기로 했다. 말을 아끼니까 말하는 것이 서툴러졌다. 서투름을 보이기 싫어서 더욱 말을 아꼈다. 남에게 내 생각을 말하지 않으니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인관계가 좁고 얕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 문제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인생은 독고다이다. 어른이 되서 바빠지면 대인관계는 자연스럽게 소홀해지기 마련이므로 굳이 여기에 목 맬 필요 없다. 그러니까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점차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게 됐고 그것에 대해 딱히 외로움도 느끼지 않았다. 앞으로도 외로울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이런 생각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인생에서 가장 친하고 오래가는 친구들은 어떤 친구들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 또한 저마다 다르게 나올수 밖에 없겠지만 통계적으로 봤을 때 고등학교 친구라는 답변을 가장 많이 본 것 같다. 나 또한 가장 친한 친구들을 뽑으라고 하면 고등학교 친구들을 뽑을 것 같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다른 지역에 있는 기숙사형 고등학교여서 학교를 다니는 3년동안은 부모님보다 오래 같이 살았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보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제일 친하고 추억이 많다. 누군가 내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묻는다면 나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했던 시절이 가장 재밌고 행복했다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모든 순간이 행복하지는 않았다. 분명 학교 다니면서 힘들었던 순간들도 있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힘들었던 것들은 희미해지고 행복했던 것들만 남아 기억이 미화 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분명 처음부터 행복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맨처음에는 학교를 다니는게 너무 힘들었다. 아직은 부모의 품에서 보호받아야 할 어린 학생들이 부모 곁을 떠나 낯선 환경에서 혼자 잘 지낼 수 있겠는가. 처음에는 자유의 몸이 됐다고 생각해서 좋아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님의 보호를 받던 때를 그리워 하게 됐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안에서 용인되온 습관들은 단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용인받지 못하고 갈등만 일으켰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들을 단체생활에 맞게 바꿔야만 했다. 이는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으나 외톨이 생활에 익숙한 나에게는 유독 힘들게 느껴졌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는지는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친구 문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나마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남들에게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내 생각과 감정을 남들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지만 그때는 더욱 심했었다. 아무도 내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고 혼자만 남들과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이때 처음으로 운동장에서 주저 앉아 외롭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외로움을 안 느끼는게 아니라 못 느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1년이 지나갔고 언제 힘들었냐는듯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3년을 지내니 친구들과 정이 많이 들었었나보다. 졸업하고 나니까 후련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이렇게 친한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은 아니니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건 매우 순진한 생각이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졸업해서 눈에 안 보이게 되니까 귀신같이 마음도 멀어지더라. 가까이 살게 된 친구들끼리 더 가까워질 때 멀리 떨어진 나는 더 멀어져 갔다. 그렇게 몇년이 지났고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타지에 올라와 살게 됐다.

이제는 거리가 가까워졌기 때문에 친구들과 다시 친하게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눈에서 가까워 진다고 마음도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더라. 만약 그랬다면 그런 속담도 있었겠지. 한 때는  가장 친하다고 느꼈던 관계가 어느새 여러 친구들 중의 하나로 바뀐 것을 느끼자 나는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꼈었나보다. 그렇게 다시 자발적 외톨이로 지내게 됐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지금  친구들은 하나 둘씩 터널을 빠져나와 취직을 했고 결혼도 생각하는데 나는 여전히 터널에 갇힌 채 백수로 멈춰 있었다. 흘러간 시간이 너무 아까웠고 자괴감과 경멸감이 교차했다. 혼자 남았다는 외로움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삶을 망가트리기 시작했다. 졸업 후 지금까지 계속 추락해왔기에 더 이상은 추락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바닥에 온 것 같으니 다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건 내 착각이었다. 나는 아직도 바닥에 닿지 않은 것이었다. 언제쯤이면 기나긴 추락이 끝이 날까. 언제쯤이면 하늘을 날아 햇볕을 볼 수 있을까.

다시 나의 아저씨에 대해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자. 나의 아저씨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폭행당하는 모습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고 어린 여자가 나이 든 아저씨를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사실들만 가지고 작품에 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매우 성급한 행동이다. 모든 사물에는 양면이 존재한다. 단면만 봐서는 사물을 이해할 수 없다. 반드시 양면을 함께 봐야 비로소 이해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파악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전체적인 맥락을 안 보고 파편적인 사실들만 선택해서 본다면 그것은 이야기의 일부분만 파악한 것이지 전체를 파악했다고 말할 수 없다. 러닝타임이 60분인 영화의 내용을 10분 정도의 영화 예고편으로 전체 내용을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특정 부분에 주목해서 나의 아저씨라는 작품 전체를 판단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나의 아저씨에 대해 주관적인 평가를 하자면 이 드라마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굉장히 짜임새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먼저 아쉬웠던 것은 종종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개들이 작품의 몰입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가장 개연성 떨어지는 전개는 할머니 요양원 탈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여주의 할머니가 요양원에 입원했는데 안타깝게도 입원비가 장기 미납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연성이 있으려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생기는 바람에 탈출이 어려워져야 한다. 하지만 탈출 실패라는 위기에 놓인 여주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성공하게 해야한다. 그러나 작중 전개는 감시하는 사람이 단 한명에 그쳤고 그마저도 허술해서 여주 혼자 쉽게 탈출 시킴으로 개연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 다음으로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파견직인 여주가 직원들도 모자라 대표의 약점까지 귀신같이 알고 쥐락펴락 한다는 설정이었다. 개연성의 부족으로 인해 몰입을 방해한 적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전개를 위해서는 참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생각나는 단점은 이것 뿐이다. 이에 반해서 이 드라마의 장점은 첫째로 선과 악이라는 갈등구조가 명확히 대비되어 지 지속됐다는 점에서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좋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저마다 상처를 지닌 등장인물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위안받게 되는 버팀목이 되어 준다는 것이 좋았다. 시련이 닥치지만 결국 이겨내고 한 층 더 성장하게 됐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다. 그리고 전통적인 권선징악의 구조를 결말로 택함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결론은 나의 아저씨는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겪을 수 있는 현실들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수작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몇번을 봐도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라고 썼으나 하루 종일 이 글 쓰는 것만 잡고 있었던 탓에 뭐라고 쓴건지도 모르겠다. 다른건 모르겠고 그냥 나는 박동훈(배우 이선균)과 같은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나이 들어서 추한 어른이 아니라 나이 들어서 멋진 어른이고 싶다.

원래 내가 쓰려고 했던 글은 나의 아저씨에 대한 짧은 감상,평가와 노래 가사 소개하기 였는데 어쩌다보니 잡설이 너무나 길어졌다. 많이 미숙한 글솜씨로 쓸데 없이 길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읽어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마무리는 원래 하고자 했던 가사 소개로 끝을 내고자 한다. 당신의 아픔과 슬픔이 끝나고 당신에게 한 줄기 햇볕이 비추길 바라며.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내 맘을 보려 하지 않고
아무도

눈을 감아 보면
내게 보이는 내 모습
지치지 말고
잠시 멈추라고
갤 것 같지 않던
짙은 나의 어둠은
나를 버리면
모두 갤 거라고

웃는 사람들 틈에 이방인처럼
혼자만 모든 걸 잃은 표정
정신없이 한참을 뛰었던 걸까
이제는 너무 멀어진 꿈들

이 오랜 슬픔이 그치기는 할까
언제가 한 번쯤 따스한 햇살이 내릴까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
바보 같은 나는
내가 될 수 없단 걸
눈을 뜨고야
그걸 알게 됐죠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
바보 같은 나는
내가 될 수 없단 걸
눈을 뜨고야
그걸 알게 됐죠

어떤 날 어떤 시간 어떤 곳에서
나의 작은 세상은 웃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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