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15 게임의 규칙 새벽에페니드 조회수 29 2018-08-15 17:1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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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말하자면 나는 왜 마린이 저글링을 죽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npc에게 말을 걸어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게임의 방식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것들은 쉽게 배울 수 있었지만... 어쨌든 게임에 익숙해지고 말고, 그 이상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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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포트리스를 가르치면서 버튼을 '눌렀다'가 '떼라'고 했다. 나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미사일이 탱크 바로 앞에서 터졌다. 그리고 나서 나는 손가락을 버튼에 댔다가 살짝 떼었다. 그것이 나의 '눌렀다'가 '떼'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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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같이 게임을 배우던 동생이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나는 형이 떼려는 내 손가락을 꾹 누른 뒤에야 규칙을 이해했지만, 일부러 그러는 척 다시 미사일을 탱크 바로 앞에서 터뜨렸다. 나는 마린 한부대로 그 부대원 하나씩을 쏴 죽였다. 게임을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그 사실을 숨기고 싶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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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예비군들을 받을 떄였다. 예비군 한 명이, 몇 번이나 설명을 해 주는데도 자꾸 m16 소총의 장전 손잡이를 발사 직전에 한번 더 당기는 것이었다(그러면 탄알이 밖으로 튀어나와서 줍고 다시 장전해야 하고, 전체 통제에 맞출 수 없게 된다). 나는 형이 나에게 그랬듯 다시 한 번 당기려고 할 때 손을 꾹 잡고 '당기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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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이 끝난 후에 선임 하나가 와서는 "야 그새끼 완전 병신 아니냐"고 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웃으면서 "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하고 대답했다. 나는 누가 뭘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를 욕할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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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그 선임이 화를 냈다. 걔가 그럴 수 있었으면, 그럴 수 있는 걸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니새끼 잘못이라고. 이것은 다만 군대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때도, 그 후로도 몇 번, 제대 후에도 몇 번, 나는 이런 이유로 저글링 대신 마린, 그러니까 나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쟤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혀 그렇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데 다들 거기에 따르고 있는 게임의 규칙. 그런 게임을 하느니 컴퓨터를 끄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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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분에서도, 다른 부분에서도 나는 이상했다. 항상 어딘가에는 당연하지도 않고 배우기도 힘든 규칙들이 있었다. 그것은 교수의 다소 부당한 지시를 좋게좋게 넘어가는 데에도 있었고, 연애를 할 때,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할 때도 존재했다. 내 눈에 사람들은 그럴 때 그들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뭔가의 인력에 당겨진 인형들처럼 보였다. 나는 거기에 맞추는 게 너무 어려웠다. 당연하지 않은데, 사람들은 그 규칙 하나만 존재하는 듯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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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나는 일찍 잠들고 싶었다. 그러나 이 생각들에 아침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말았다. 다시 한 번 수면유도제를 먹었다. 오늘의 공부는, 다소 망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자고 망치는 것이 자지 않고 망치는 것보다 나으니까. 이런 나 치고는 참 열심히도 살아왔구나 안도되면서도, 닥칠 미래가 너무 두려워서.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그걸 굳이 미안해하는 내 어리석음이 너무나도 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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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가능한 데까지 마린을 살려 보자. 저글링을 보고 쏘지 않는 마린이라니 목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지만, 어떻게 지금까진 살아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