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ADHD 검사를 받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땐 공부하다가도 의지를 잃으면, 어떻게든 그걸 붙잡아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결과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았다. 적어도 장애물을 만났을 때 아둥바둥거려보려 했으니까.
그런데 오히려 ADHD 판정을 받은 후엔, 약을 처방받았음에도 노력이나 의지 대신 자기 연민이 더 강하게 찾아온거 같다
그동안 남들보다 더 애쓰고, 더 노력해야 했던 기억들, 미움받았던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애초에 고장난 상태로 태어나 버린 사람이 나야”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ADHD 약을 먹어도 결국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내 의지와 선택이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점점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도 ADHD, 계속 누워서 폰만 보는 것도 ADHD, 나의 모든 행동의 원인을 ADHD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ADHD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ADHD란걸 모를 땐 분명 내 생각을 바꾸고 조금 더 노력할 수 있었던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나는 직면해야 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문제를 “나는 ADHD잖아…”라는 한마디로 늘 덮어버리고 있었다.
왜냐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머리도 안 복잡하고,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난 원래 그런 애야”라고 생각하면 알량한 자존감도 지킬 수 있었으니까.
근데 그럴수록 핑계는 끝이 없었다. 오히려 우울, 자기혐오로 점철된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의사선생님께서도 한마디 하셨었다. "그렇다고 모든 adhd가 그렇지는 않아요"
누군가가 나를 처음엔 위로해주다가 나의 변명에 답답함을 느끼고 한마디할땐 신호탄으로 느끼고 바뀌어야하는데
견고하게 만든 구덩이 안에 있을 땐 누군가 “거기서 나와야 해”라고 말해도 “넌 나를 몰라서 그래”라는 생각만 들었다.
가끔은 ADHD 검사를 받은 걸 후회하기도 한다. 모든 게 이 진단 때문인 것 같아서, 괜히 더 무기력해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는 느낌이니까.
그런데도 또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다. 약도 있고, 치료도 있고, 어쨌든 나를 도와줄 방법이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니까.
검사를 받은게 후회와 다행, 그 사이 어딘가에 나를 세워둔 기분이다.
그래도 이 약과 치료가 내겐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작은 발판이니까 다시 한 번 해보자
물론 나오다 다시 떨어질 수도 있다. 누구나 그렇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자꾸만 되돌아 보기만 하면 그 구덩이에 더 오래 머물게 될 뿐이다.
그러니까 한 발이라도 내딛자. 작은 한 걸음이라도 괜찮다.
그 한 발 한 발이 나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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