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래가 생겼다. “나도 여기서 같이 추락할 일만 남았나”라는 패배주의적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심리적인 면으로도 현실적인 면으로도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기대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내 발목을 붙잡던 10kg짜리 모래주머니는 이제 인생이라는 레이스 트랙 그 어디에도 없다.
2. 여유가 생겼다. 화낼 일도 답답해질 일도 줄어드니까 나의 본질에 집중하기 훨씬 수월해졌다. 밀렸던 일을 하나씩 처리해 나가다 보니 모래주머니 때문에 놓쳤던 수많은 보석이 보이더라. “이제야 정신 차렸냐?”라며 툴툴대면서도 계속 기다려왔다면서, 그들은 내 손을 망설임 없이 붙잡아줬다.
3. 자신감이 생겼다. 시도 자체가 두려워 포기했던 일에서 도망치는 것 대신 부딪치는 것을 택했고, 성공에 자만하지 않는 법과 실패에 주눅 들지 않는 법을 배웠다. 패배감을 맛보기 전처럼 도전하고 있다. 나의 내일이 어제보다 더 나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4.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예전에는 감정을 무작정 담아두기만 했다. 한계치에 다다라서 폭탄처럼 터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마음이란 주머니 안에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이 음식물처럼 소화되어 내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만을 바랐다. 되돌아보니 그건 나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더라. 화를 참고 슬픔을 감추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5. 세상을 조금 더 보게 됐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세상의 모든 것인 줄 착각했던 것 같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에는 슬픈 것과 화나는 것, 모자란 것과 과도한 것 등이 존재함을, 나쁜 것도 그 안은 다양함을 잊고 있었다. 좋았었지만 변절하여 나빠진 것, 애초부터 나쁠 생각이었던 나쁜 것, 나쁠 생각 없는데 멍청해서 나빠지게 된 것, 좋은 것으로 착각된 채 이어지는 나쁜 것 등, 이제는 조금 더 깊게 볼 수 있다.
6. 건강해졌다. 신체와 정신 모두 약간의 상처에 연연하지 않을 힘을 가졌다.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시간을 줄였다. 끼니를 거르지 않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활력을 얻는다. 웃음이 많아졌고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게 됐다. 물론 요즘은 울고픈 일 자체가 거의 없긴 하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담배였다. 뭣도 모르는 채로 시작했으니 빛나는 그것의 형체만을 보고 입에 물 수 있었다. 피울 때의 달콤함에 매료되어 내뿜는 향을 온몸에 둘렀고, 재로 변해가는 몸체를 아쉬워하면서도 이것이 내 몸을 갉아 먹고 있다는 사실은 애써 무시했다. 담뱃불이 필터에 가까워질수록 달콤함은 쓴맛으로 변해갔지만, 그래도 아까워서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당연히 다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 담배를 내 신발로 밟아 꺼야 함을, 그 이후에는 처음부터 악취였던 향과 씁쓸함으로 끝맺어진 혀끝 그리고 이전보다 조금 더 병들었을 몸뚱이만이 남을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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