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난 술을 좋아한다. 말 그대로 술이 좋다.
술맛이 좋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을 나누며 함께 분위기에 젖어가는 그 상황을 난 사랑한다.
하지만 평범하게 먹진 않았다. 술에 대해선 항상 과몰입과 충동을 같이 느낀다. 거의 모든 종류의 술을 좋아하며 매번 새로운 술에 흥미를 가진다. 과음을 하는 일은 잘 없지만 퇴근 후에 약속이 없으면 허전한 감정처럼 자꾸 술을 찾았다.
그렇기에 문제도 많았다. 난 사람을 가리는 편이라 그것 때문에 대인관계가 문제된 적도 없었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도 일절 없었지만 나에게 피해를 끼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걱정시키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술을 줄여보기로. 하지만 쉽지 않았다. 출근하면 오늘은 술은 안 먹어봐야지 생각하지만 퇴근할 때면 기진맥진 해져서 보상을 찾게 된다.
집에서 혼자 쉬는 것도 기쁘지 않고 사람도 쉽게 못 만나는 이 상황에서 보상을 느끼기 가장 쉬운 건 술이었고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혼자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던 삶을 정리하기란 쉽지 않았다.
최근에 오랜만에 병원을 방문했다. 상담 중에 선생님은 나에게 어느정도 마시는지 매번 묻는다. 나한테 문제가 있단 것도 문제가 생겼던 것도 아시지만 병원을 다닌 지 이 년이 넘는 시간동안 무언가 적극적인 행동은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줄이고 싶은데 어렵다고 말했다. 약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추가된 약은 날트렉손 25mg, 알코올에 대한 뇌의 보상회로를 차단해주는 약이다. 꾸준히 먹어야 하는데 부작용이 가볍진 않아 아직 쉽지 않다.
2.
난 걱정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난 확신이 들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성격인지 질병의 탓인지 몰라도 충동성이 작지 않은 편이라 꽂히는 건 또 앞뒤 생각하지 않고 하는 편이다.
당연히 실패도 많이 겪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진부하디 진부한 말이 있지만 겪지 않아도 될 실패도 많았다.
하지만 그 실패들이 아무런 유익이 없던 건 아니다. 왜냐면 나름의 교훈을 얻고 반성할 수 있기 때문인데 문제는 그럼에도 자꾸 반복하는 것에 있다.
술 얘기를 하다가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술에 대한 걱정에는 아버지가 엮여져있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습관적으로 술을 드셨다. 그래서 여러 문제도 많았는데 난 그것이 정말 싫었다.
한창 몰입되어 있던 종교의 보수적인 가르침으로 난 성인이 되어서도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생각의 변화로 이십대 중반 가까이 되어서야 술을 처음 먹었다.
그땐 사실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술이 너무 좋아지고, 술에 대한 의존성이 생긴 때부터는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아 걱정이었다.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난 바르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가치관과 모순된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힘들었다.
3.
언젠가 선생님은 내가 굉장히 양면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후의 말씀이 기억에 남지는 않지만 가치있고 선한 삶을 살려고 하는 좋은 모습과 그런 가치관을 망각한 채 스스로 망가지는 나쁜 모습이 공존한다고 의미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면 두가지 모습은 항상 같이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전자가 강했고 취업을 하기 전에는 후자가 강했다. 무엇이 더 강해 한쪽을 누르는 식이었던 거 같다.
지금은 반반인 것 같다. 두가지 모습이 싸우고 있다.
4.
지금까지 블로그에 쓴 글들을 가끔 돌아본다. 이것은 내 기억이고 일기이며 스스로에게 하는 충고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겨있다.
분명한 것은 글 속의 내가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낫고 있고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에이앱에서 꾸준히 블로그를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이라 생각한다.
난 대체 지금까지 나아진 것도 없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5.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하는 생각이다. 마지막 한 모금을 하고 담배불을 끌 때 같이 사소한 것에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다만 부정적으로 하는 생각이 아닌 돌이킬 수 없으니 이제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이렇게 또 밝히고 싶지 않은 치부 중 하나를 썼으니 3개월 후에도 똑같은 난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제 나의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니 이전 것들을 고치던 버리던 난 내가 할 수 일들을 해야 한다.
난 아버지와 다르다. 난 나의 강점을 알고 있고 내 삶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다.
더이상 걱정하지 말자.
뒤돌아보지 말자.
*썸네일 출처 : 싱 스트리트 (Sing Street,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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