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일 오전 11시 진료를 앞두고
1. 늦지 말 것. 2. 저번에 늦어서 진료 때 못한 얘기들 꼼꼼히 정리해갈 것
을 다짐하며 정리차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다녀와서 쓸 거리가 많을 때 꼭 뭔가 진전사항을 알리고 싶을 때 글을 썼는데.. 이번에는 가기 전에 쓰고 싶어서요. 콘서타를 18mg으로 시작해서 2주마다 27mg, 36mg으로 늘려가고 있습니다. 내일 또 증량될 것 같습니다.
직전 진료 때 신경안정제 추가해주신다하며 자나팜정 1/4mg 추가하고 아빌리파이 2mg추가해주셨습니다. 트라린정은 조석으로 100, 50해서 150mg 먹다가 100,100인 200mg으로 늘었네요. 제가 매주마다 먹은 약들이 궁금해서 약봉지를 모으고 있습니다. 근데 엄마가 이 약봉지들이 환경호르몬에 쩔어있는 영수증과 먼지에 쩔어있는 신문지만큼이나 더럽다고 버리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요? 그럼 사진으로 찍어놓고 버려야겠어요..
번호 붙이는 건 글을 제대로 못읽는 제가 스스로 생각을 하나씩 정리하는? 그러니까.. ADHD 인지행동치료에서 '부엌 청소하기'라는 큰 과제를 1. 수세미에 세제를 뿌리고 그릇하나를 든다 라고 잘게 쪼개서 시작하는 것 같은 겁니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적는 거라 번호에 큰 의미는 없습니다.
1. 행동이 심각하게 느려졌다. 봐줄만한 선을 넘어선데다 먹을 때만 그러는 게 아니라 온갖 행동이 그렇다.
2. 단기기억력은 점점 호전되고 있다. 우울증이 아주 많이 좋아지고 있는 듯 하다. 방금 전에 뭘 하려고 했지? 그게 무슨 단어였지? 하고 몇분정도 생각하고 있으면 결국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절대 안 떠올랐었는데.
3. 그러나 틱증상이 심해졌다. 원래는 온 몸에 미세한 경련 같은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정도였는데, 이번엔 나도 모르게 의도하지 않은 의미의 욕 섞인 문장?은 아니고 말을 했다..
4. 상담을 해주고 내 얘기를 신경써서 들어준 친구에게 마음이 생겼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니 몇년간 겨우 끌어올려놓았던 자존감이 떡락해서 지금 내핵을 뚫었다ㅠㅠ 지금 느끼는 감정이 옳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나같은 애가 누굴 좋아하다니 스스로가 너무나 어리석고 한심하고 혐오스럽다. 나는 집도 가난하고 화목하지도 못하고 못생긴데다가 외적으로도 뭐 하나 봐줄 게 없는데 직업도 없는 백수에 성격도 이상하며 게으르다. 엄마와 동생조차 날 한심해한다. 친척들도.. 그리고 누구보다 내 스스로가 나를 한심해한다. 혐오한다.
5. 그렇지만 친구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말라고 하였다. 좋아하는 건 나쁜 게 아니라고 해주었다. 나도 이성적으로는 아는데 무의식은 그렇게 사고방향이 흐르질 않는다.
6. 자존감을 다시 끌어올리고자 먹는 존재 유양이 세상살이 답이 없어 답답할 때면 수학의 정석을 풀듯이 나는 나의 대학시절 레포트들을 읽어내려갔다. 아 난 정말 갈수록 퇴화한 것 같다. 어휘력도 사고의 날카로움도 문장력도 젊은이의 성마른 열기는 느껴질지언정 지금보다 훨씬 뛰어나다. 난 정말 스마트폰을 끊어야할 것 같다. 바보상자는 TV가 아니고 스마트폰이었다. 그래도 자존감을 조금 올려줄 수확이 있었다. 비평이 아닌 창작에는 전연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건만, 객지의 인물과 무진기행의 인물이 서로 만나는 엽편을 써보는 과제가 좀 다듬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굉장히 그럴 듯했다. 나도 할 수 있다!
7. 어릴 적 이야기는 에이앱 분들이 들어주신 덕분에 잘 정리가 되었다. 역시 타인과의 대화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을 볼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내가 그 이야기가 에피소드만으로는 좀 많이 문제가 있긴 하지만 내 우울증과는 별 상관이 없을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말을 못해서 안달이 났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부친에 대한 내 감정을 푸는 열쇠였다. 아 오늘 부친과 통화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도 무섭지 않았으며, 나이가 들고 모든 것을 잃은 그가 참 서럽고 불쌍했으며, 미워하고 싶었지만 밉지 않았다. 이럴 때면 엄마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정작 엄마는 내가 아빠를 미워하고 싫어하면 그래도 네 아빠다 너한테는 잘 하잖느냐 그러면 안 된다 하고 걱정하는데. 근데,, 글쎄? 내가 반항하지 않고 입안의 혀처럼 굴고 순종적이라서 때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엄청난 충격이었다.
8. 운동!! 선생님의 조언대로 돈내면 억지로 하게 돼있었다. 첫째주는 결혼식 생각 않고 금토일에 하려고 미루다가 한번 결국 빼먹고 망했으며, 둘째주는 호된 금융치료의 힘으로 성공하긴 했는데 역시 뭘수금 화목토 수금일 이런 게 아니고 금토일을 했다.. 반성한다.. 그리고 이번주는 생리를 하는 줄 알고 챌린지 참여하지 않고 쉬었는데 그것은 생리혈이 아닌 치열에서 뿜어져 나온 피였다.. 3대째 운영한다는 네이버 리뷰가 100개에 달하고 평점이 4.9인가 하는 항문외과에 가서 진료를 봤는데 항문에 뭔가 넣을 때 소리낸다고 쌍욕 먹고 혼났다. 그치만 정말 대변 보는 기분이어서 너무 느낌이 이상해서 소리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는 걸요? 대전엔.. 새우자세로 항문을 봐주는 항문외과가 없는 걸까? 항문외과의 원칙적이고 정석적인 그 자세는 너무나도 부담스럽다;; 그나마 어제 갔던 항문외과는 간호사샘이 성기쪽을 가리게 헝겊을 대고 테이핑해주시고 내가 무턱대고 너무 내려버린 바지도 열심히 끌어올려주셨다;; 6년전에 갔던 항문외과보다 훨씬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 같다. 여튼 말띠지? 하며 나와 동갑내기 아들래미가 있다던 할아버지.. 그 아드님은 4대째 이어 항문외과 운영 안 하시나요? 믿을만한 의사나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발.. 지금 다니는 정신과 샘이나 어제 간 항문외과샘은 오래오래좀 사셨으면 좋겠다. 후자는 할아버지시니 꼭 아드님이 병원을 이어서 병원 좀 유지시켜주셨으면 좋겠다.
9. 학원 선생님이 속으로 날 엄청나게 욕하고 있을 것 같다. 죄송합니다.
10. 드디어 건강검진을 했다. 나라에서 무료로 2년마다 이렇게 해주다니 정말 좋다. 학교다닐 때 했던 것 같은 수준인데 정말 좋다. 금식하고 오라길래 위내시경도 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안 해줬다..
11. 같은 날 산부인과 가서 질염치료하고 항문외과 가서 치열 치료를 하였다. 자다가 일어나서 밖에 나가 좀만 걸어다니면 입소문타서 알게 된 정말로 잘 고치는 좋은 병원들이 여기저기 즐비한 이곳은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인 나에게 천국이다. 그리 생각하면 세종시는 정말 지옥이었다.
12. 아직 대처기술 책도 다 읽지 못했는데 주황색과 파란색 책이 도착했으며, 도서관에서 빌린 책도 한권도 다 못 읽었다. 대체 난 뭘 한 걸까. 근데 다 읽을 자신이 없다. 책 읽는 속도도 엄청 느려져서.. 원래 느렸는데 1번의 행동이 느려진 것과 더불어 심하게 더 느려졌다. 발췌독을 해야겠다. 스마트폰을 정말 끊어야겠다. 원래 멍청한 머리가 이제 답없이 멍청해지고 있다.
13. 감사하게도 받은 노트9는 용량없다고 용량용량 노래를 불러대는 동생에게 줘야겠다. 동생이 유용하게 쓰길 바란다. 이제 휴가는 안 나오고 전역전 휴가로 나오려나 싶었는데 6월에 잠깐 나온다고 한다. 내동생♡
14. 퇴고병 걸린 나는 정신없이 써내려간 이전 글들을 또 수정하고 싶다... 문장 성분 호응 안 되는 것 반말했다 존댓말했다 왔다리갔다리 정신없는 것 전부 너무너무너무 거슬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