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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사랑 할 수 없을 때
Level 2   조회수 147
2021-02-02 16:20:10

언제 깨달았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 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을 때, 세상에 버려진 기분이었어요. 

그 때부터 소속감을 얻기 위해 친구들의 의견과 내 의견이 다르더라도 표현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아요.


물론 어릴 적부터 남달랐죠. 엄마는 친척들 앞에서 내 딸은 왜 저렇게 과자를 흘리고 먹는지 모르겠다고

종종 내가 듣는 데도 흉을 보셨어요. 어찌나 상처가 되던지.


시험 범위를 체크 할 때면, 범위 시작 페이지는 표시했는데 끝 페이지는 표시하지 않았고,

수업을 들을 때면, 첫날은 분명 다 이해하고 수업이 너무 재미있다 느꼈는데,

다음날 다음 진도를 나갈 때면, 전날 들었던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었죠.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았어요.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은 정말 노력을 많이 하거나 고액 과외를 받는 줄 알았죠.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출퇴근을 하시면서,

저는 엄마의 퇴근 시간이 두려웠지만, 한편으론 엄마가 퇴근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면 안 될 것 같은 무능력함에 갇혀 살았어요.


저는 두 살 때에 구구단을 외웠대요.

초등학교 지능검사에선 159가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아직도 기억이 나요. 엄마가 대학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묻는 말에

옥스포드나 하버드를 갈 거라고 대답했었어요.


제가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살았고,

크면 클수록 깨달았어요.

대학 근처에도 못 가겠구나.


내가 생각했던 나의 능력치와 실제 내 능력치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걸 인정 할 수 없어서

컨닝을 하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려 하지 않았어요.

그럴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취직을 하게 되었을 때는 더 절망적이었죠.

어제 알려준 업무를 오늘 제대로 수행 할 수 없었어요.

아주 단순한 일인데도 말이에요.

엉망으로 망쳐 놓은 일들을 수습할 생각도,

내 손으로 망쳐 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못했어요.


입사 후 8개월 만에 포스트 잇에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적어 놓고 도망쳐 버렸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던 간호 조무사인 친구를 따라 자격증을 따고,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 제가 ADHD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다니던 병원의 원장님께 부탁 드려서 페니드를 처방 받아 먹기 시작하면서 알았어요.


이게 평범한 사람들이 보는 세상이구나.

해야 할 것이 보이고, 전에 듣고 보았던 것들이 생각이 나면서,

바빠지고, 쉴 틈 없이 일을 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은 없어지지 않았어요.

약을 먹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내 상태가 너무 무서웠어요.


일만 할 수 없는 게 아니었어요.

다른이의 사정을 공감하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서 말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항상 무언가 하고 있지 않으면 너무 불안했어요. 뒤 쳐지는 것 같고, 무서웠어요.


서른 초반에 저는 저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에서 도망치기로 했어요.

해외로 나가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고,

약까지 먹어가며 경력을 쌓아온 내가 사라지자,

해외에서의 나는 정말 초라해 보였습니다.

불안에 쫓기며 살아왔던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어요. 

왜 살고 있는지 조차도요.


몇 달을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하루는 다 지겨워졌어요.

우울한 건 아니었는데, 별로 못해본 일도 없는 것 같고, 더 해보고 싶은 일도 없는 것 같았어요.

딱 그런 마음이었어요. 이 정도면 그만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만 하고 싶다.

제가 살던 13층의 발코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 햇살 가득하던 날 느꼈던 그 감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저는 저를 사랑 할 수 없었어요.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는지, 사랑이 뭔지도 몰랐어요.

내가 예쁘지 않은데, 내 행동과 모습이 사랑스럽지 않은데 억지로 사랑할 순 없잖아요.

나 같은 친구가 있으면 제일 먼저 손절 하고 싶은데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어요.


버려지는 게 두려워 강박적으로 사람들 속에서 지내려고 해 왔던 시간들 속에서

저는 제가 사람들을 정말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항상 사람들과 만나고 나면 화가 났어요.

쉽게 선을 넘는 사람들도 싫었지만,

선을 넘어도 표현하지 못하는 나에게 가장 화가 났었어요.

해외에서의 시간들은

온전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보는데 쓰려고 노력했어요.

나는 왜 이럴까부터 시작해서

왜 화가 나는지, 내가 뭘 원하는지, 거절은 왜 못하는지

많이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스스로 하지 않을 수 있는지 알려고 시간을 많이 썼어요.

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하고, 나를 꾸짖지 않고, 나를 이해하려고 하다보니

어느 날, 제가 생겼어요. 형체도 없었는데 저도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고..사람이더라구요.

제가 보이기 시작하니, 많은 것들이 편안해 졌어요.

일도 잘 되고, 인간관계도 편안해지고,

많은 것들이 안정되어 가던 날, 코로나가 터지고, 하던 사업들이 망가지고

불안장애와 공황장애가 다가왔어요.

6년동안 만들어둔 제 세계가 한번에 무너지는데..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던 시간 동안 찾아온 그 심장의 두근거림과 숨 쉴 수 없던 공포가

집안에 도둑이 들고, 불이 날뻔해서 소방차가 오고, 작고 큰 사고들이 터지는 시간들과 겹치고, 소품 하나까지 제 취향이 닿지 않은 곳이 없던

제 집은 순식간에 그야말로 감옥으로 바뀌었어요.

이번 만큼은 도망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버티면 버틸 수록 증세는 심해졌어요.

혼자 있을 때, 한 시간 간격으로 두 어 번 찾아오던 숨 막힘과 심장 떨림이  오 분 간격으로 찾아오다 잘 걷지도 못할 만큼 어지러워 일어서자마자 엎어졌던 날 한국 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어요.

놀랍게도 한국 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도착한 그 날 아침에서야 비로소 제 공황장애 증상이 호전 되었어요.

내가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내 탓이 아니라 코로나 때문이야. 괜찮아. 뿐이었어요.


돌아왔을 땐, 비록 스스로가 초라해 보였지만, 곧 괜찮아질 거라 생각 했는데,

괜찮던 한국도 코로나가 심해지고,

무기력해지기 시작하더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게 너무 힘겨워 졌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공포와 함께.


요즘 다시 또 혼란스럽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일들이 전부 현실이 아닌 것 같아요.

다시 제가 누군지 보이지 않아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정말 코로나 때문이었는지.

나를 원망하고 싶지 않은데, 자책하고 싶지 않은데 너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이게 내 미래가 될까 너무 두려워요.

분명히 아는데, 내가 ADHD가 있는 모자란 애라서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라,

정말 멀쩡한 사람이라도 그 상황이면 나와 같은 선택이나 혹은 나보다 더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했을 거야. 라는 믿음도 분명히 있었는데,

자꾸 다 나 때문인 것 같고. 내가 너무 바보 같아 보이고. 

세상에 또 나 혼자 인 것 같은 날이 오늘 하루로 끝나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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