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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지만 괜찮아
Level 8   조회수 294
2020-07-22 13:51:04

요즘 재밌게 보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인데요. 

정신병원이 주 배경이 되기도 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드라마나 제목에 대한 감상은 각자의 몫으로 남기겠지만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잘 만든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제목에서는 '사이코'만을 지칭하는 것 같지만

제가 느끼기엔 극 중의 주인공들과 정신병동의 환자들 모두가

크고 작은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데요.



우리는 ADHD라는 것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개인에 따라 경중도 다르고 증상도 천차만별이죠.



저 같은 경우는 어릴 때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 과몰입이 크게 있었던 거 같습니다.

수업 시간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다가 교탁 옆에 제 책상이 마련되기도 하고

호기심도 많아 집중하게 되면 질문이 너무 많아 진도를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돼서

장난도 심해 이런저런 일들로 어머니께서 교무실로 불려오기도 하고요.



또 사회성이 떨어져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기간도

오래된 거 같아요. 거의 학창 생활 전반에 걸쳐져 있으니까요.

제가 겉으로 보기에 매우 차분해지고 과잉행동이 준 것도

아마 그 억압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학교나 학원에서 통제받는 상황에서는 또 성실한 점이 있거든요.

하지만 홀로 놓이게 됐을 때는 그러지 못하더라고요.

학창 시절 중반까지 좋았던 성적이 점점 떨어졌던 이유도

시작했던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도 저는 제 탓이라고만 생각했죠.



대학을 가서는 잘 지냈던 거 같습니다. 공부는 빼고요. 집중을 잘 못 했어요.

학창 시절과는 달리 친구도 잘 사귀고 물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이전처럼 관계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 건 덜했으니까요.



그렇게 성인이 되고 자유를 얻게 되니 제 안에 억압돼있던 것들이 풀려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규칙이나 도덕에 대한 강박도 있었고, 동시에 불합리하다 싶은 것에는 저항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사회생활 중에는 그 저항성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고 다툼이나 논쟁도 많이 해야 했던 것 같아요.



처음 병원을 가게 됐던 건 사회생활 중 불합리한 상사와의 불화, 스트레스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상담을 하며 항불안제랑 항우울제를 먹다가 지금처럼 조울증약을 먹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의력 결핍이랑 충동성은 고쳐지지 않더라고요.



공부에 집중을 못 하고 충동적으로 일을 계획하고, 돈을 계획 없이 쓰다가 빚더미에 앉기도 하고,

알코올 조절도 잘 못 했으니 말이죠.



그러다 우연히 @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면서 내가 @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의사 선생님도 동의해서 약을 먹기 시작한 지 이제 두 달 정도 되는 거 같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굉장히 조급했습니다. 약을 먹어도 아무 느낌이 없는데 어쩌지,

또 일주일을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운데, 증량을 안 해주시면 어쩌지 등의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물론 아직 그렇게 큰 효과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나진 않아요.

약의 종류와 용량을 아직 맞춰나가는 중이고, 여전히 집중과 충동을 조절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느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처음 언급한 드라마에서 계기가 있었는데요. (9화 스포있음)



정신병원에 두 명의 환자가 있었습니다. 여성 환자는 전 남편의 폭행으로 마음에 상처를 받았고,

남성 환자는 알코올 문제로 입원 중인 상태였죠. 둘은 병원 규정상 금기인 연애를 하게 되고

둘은 기회를 얻어 외박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도피를 하는 계획을 짜게 됩니다.

하지만 떠나기 전 끝내 남자는 떠날 수 없겠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자신은 아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을 정도로 똑바로 서지 못했다고, 꼭 건강해져서 당신한테 가겠다고 말하고 그는 병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걸 보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현실에 대한 직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했던 일이나 실수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모두 어딘가에 숨거나 도망가거나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만 했던 것인 줄 깨달았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약의 효능을 기대하며 무언가 생겨나기를 바라고만 있는 것만이 아니라

현실을 알고 다시 똑바로 설 수 있도록 스스로도 노력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잘 안 될 겁니다.

일반인도 쉽지 않은 일을 우울, 불안, @등을 가진 우리가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찾아보면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조금은 수월할 겁니다.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것이 없다 하더라도

곁을 함께 하고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ADHD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나아질 수 있고 현실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어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ADHD지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혹 저를 포함해서 주저앉은 분이 계신다면 다시 일어서 걸어갈 수 있길,
여전히 오늘도 힘든 일뿐이라도 언젠가 달려 나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칩니다.


이상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썸네일 출처 : 드라마「싸이코지만 괜찮아」9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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