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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확진의 함정 (신념의 무서움)
Level 2   조회수 571
2019-12-09 15:53:07

@를 연구(?)하면서 @의 치료 후기들을 본다. 어떤 사람들은 꽤나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업무 능률이 오르는 등. 하지만 @를 겪으면서 이전보다 더 고통을 겪는 사람들 또한 많다. 약이 듣는 것은 행운이다. 약이 듣지 않는 사람들, 약효가 있지만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해하는 사람들...



왜 누군가는(꽤 많은 사람들은) @ 확진을 받고 나서 전보다 더 우울해지는가? 



사고의 변화를 그려본다.


[@를 모르던 시절]: 

내가 싫다. 내가 이렇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 확진 시]:

내 잘못이 아니었어! 과거 모든 일은 @때문이었구나! 열심히 치료하면 나아지겠지?

 

[시간이 지나면]:

@를 알았지만 여전히 @ 때문에 실수투성이인데 @는 없어지지 않는다니. 설상가상으로 약효도 떨어져간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인 내가 싫다. 내가 @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라는 걸 알기 전보다 더 불행해지는 현상. 그 원인으로 나는 '@에 대한 인식'을 의심한다. @ 진단을 받으면 우리는 약물+행동치료를 받으면서 @를 '치료'한다. 한편 성인@의 경우는 뇌의 구조가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이건 곧 불치병이 된다. 그리고 이 '불치병' 때문에 우울해진다. 왜냐하면 @는 치료되어야 할 대상이니까. @가 불가분의 대상이라면 평생 같이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난 '치료'라는 용어가 @에 관심을 갖게 하는 순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ADHD 치료'라는 용어 사용에 의문이 있다. (@의 부산물인 우울증 등을 치료하는 것과 구분하여) @사용법, @사회화, @적응과 같은 대체 용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를 치료(제거)의 대상으로 정했을 때의 부작용이 크다. 실현불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는 치료되어야 하고 나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질병 혹은 장애이다' 라는 신념을 발견할 수 있다.



신념의 사전적 정의는 '굳게 믿어 지킴'이다. 학계에서 어떻게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개인이 현상이나 상호작용을 받아들이는 방법, 인식 및 해석의 틀을 '신념 체계' (줄여서 신념)이라고 부르겠다.


이 신념에 관하여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실험은 '플라시보 실험(가짜약 실험)' 일 것이다. 다른 예로 어느 원주민 부족에서는 족장이 저주를 걸어서 사형을 내린다고 한다. 부족민은 사망했지만 같은 저주를 받은 일반인에겐 아무 영향이 없었다고 한다. 어린 코끼리의 발목에 쇠사슬을 채운다든지, 벼룩을 병 안에 넣어둔다든지 해서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거는 사례도 있다. 결국 어떤 사람에게는 그가 가진 '신념'때문에 그의 행동범위에 제약을 당하는 것이다. (실제로 뇌의 구조가 변한다고 본 것 같지만 출처가 확실하진 않다)



한편 고등학교 친구 중 매일 입버릇처럼 '너 공부할 때 나도 끌고가지' 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는데, 이후 내가 수집한 트레이닝 이론 등을 알려줘도 변함없이 자신의 신념만 고집하는 것이었다. 횟수 위주의 운동을 남들도 다 하고, 펌핑이 안 되면 불안하다면서... 그래서 조언을 관뒀는데, 재밌는 건 수 년이 지나서 스트렝스운동의 중요성이나 풀스콰트의 유용성이 유튜브를 통해 유행하니까 그제서야 '유명 유튜버'의 저반복 루틴을 가져와서 '이거 어때?' 하더란 것이다. (?)



신념은 보통 타인에 의해서 주입된다. 가장 큰 영향은 성장기 부모의 신념이고, 또래 집단이나 사회 구성원들의 신념을 주입받기도 한다. 그 과정은 자연스럽기 때문에 눈치채기 힘들다. 그리고 그 신념을 옹호하는 반복된 사건들을 통해 강화된다. 또한 신념에는 생명력이 있어서 공격을 받았을 때 적극적으로 방어하게 된다. 대개의 공격은 힘을 잃고 해당 신념은 더욱 강해진다.


그럼 신념을 가지는 게 '나쁜' 일일까? 신념에 선이나 악의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게 신념이 아닌 이상) 요즘 유행하는 히어로물의 입체적 악역처럼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것이다. 625 남침을 겪은 어르신에게 북한은 언제든 쳐들어올 수 있는 절대악일 수밖에 없다.


생물학적으로 신념체계(특히 논리의 도약)는 빠른 상황판단을 하게 하여 인간종의 생존에 기여했다. 현대에선 이런 단순한 사고(비싼 것-> 좋은 것, 보수->친미, 좋은 외모->인격 등)를 누군가는 마케팅에 이용한다.



한편 '타당한' 신념은 존재한다. 세대순환이 가로막힌 삶을 살면서 계급의식에 순응하는 일본인의 '완벽한 시스템 속에서 책임을 맡지 않기 위해 내게 주어진 일만 하고 튀면 안되고 튀는 놈은 따돌리는 게 정당하다' 라는 신념은 현실을 잘 표현하기에 '타당'하다. 역시 '@에 모든 책임을 돌리고' @를 비난하는 신념 또한 타당하다.


반면 '이득이 되는 신념' 과 '타당한 신념'은 다를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면 수입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노동력이 마르거나, 노동자들이 투쟁하거나 하여 자본가가 위기에 처하게 된다(이를 과거 포드자동차는 좋은 대우와 근로시간 감축으로 해결했다. 돈 더주고 휴일 줘서 차를 팔고 수익 창출과 불평 무마) 눈 앞의 현상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득이 되지 않음에도' 이런 신념이 깨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신념의 성립, 강화 과정을 봤을 때 이는 역설적으로 '타당하지 않기 때문' 이다. 빠른 상황판단=생존이란 공식에선 합리적이다.


"@가 병이 아니라면 내가 고통받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건데? 근거 없지? 거봐.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져가고 있잖아."

너무도 타당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유리하지 않다)



그럼 결국 타당함을 깨야 되는데, 증명력을 깨려면 그에 합당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어려워진다. 


왜냐면 '남의 성취'는 '남의 성취'이니까 나한테 와닿지 않는다. 누군가가 환경을 바꾼다든지 도구를 쓰는 등의 어떤 방법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하지만 자신과는 다른 요인이 많다. 그것 때문이겠지. (근데 사실이다. 환경적인 요인, 경험적인 요인 등)


@의 좋은 점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던데 나한텐 쓸모가 없다. 창의성이 뛰어나고 도전적이면 뭐해, 내가 하려는건 사무직인데. (사실이다. 갑자기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레져강사가 된다든지 하는 게 흔한 일일까?)


"Yes, but..."


생각해보자. 누군가 당신에게 와서 "@는 존재하지만 @는 병이 아닙니다!" 라고 한다면 설명을 요구할 것이다. 일부는 수긍하고, 일부는 이해하지만 일부는 거짓말이라 할 것이다. 한편 스스로 깨달았다 하더라도 주변의 상황이 그대로라면 신념이 꺾이는 위험성도 존재한다. 말 그대로 돈오점수(존재에 대한 순간의 깨달음, 지속적인 수련으로 확인)인 것이다.



여기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가 병이라는' 이 신념을 정말 깨야 하는가? 


만약 스스로 신념을 깨고자 한다면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주어진 신념에 대해 반증을 제시하며 증명력을 깨뜨려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유리한 신념을 세우고, 그 신념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시해서 신념을 강화시키는 것 뿐이다. 



심리치료의 일련으로 행해지는 행동 교정 치료의 내용도 사실 주장과 증거 제시의 반복이다. 물이 무서운 사람에게 바로 물에 뛰어드는 건 죽음이다(물 공포증을 극복하려고 뛰어드는 것도 공황발작의 위험이 있으니 절대 조심한다). 한편 이런 교정 치료의 절차로 가면 이론에 대해 배우고, 안전하다는 것을 배운 후 전문가와 함께 '아주 조금씩' 물과 친해지는 연습을 한다. 물에 대한 거부반응이 없어지는 데에는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신념을 주입하듯이 '눈치 채지 못하게' 물과 친해지게 된다.



내가 타인의 신념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순전 우연이다. 난 사실 지능이 평균(100)보다 높다. 그럼 지능이 높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능에 관한 의견은 별도로 풀 예정이지만) IQ 테스트의 형식에서 미뤄볼 때 높은 지능은 '상대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사물의 규칙성을 찾아내는 능력'이 평균보다 뛰어남을 의미한다.


 내가 생각하는 지능의 장점은 '남과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차이점을 발견하고 나한테 더 유리한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런 선택은 학습되어 사회적인 격차를 만든다. (한편 지능이 높다고 언제나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불륜을 하고 자살률도 높은 것을 보면..) 여전히 난 '우연한 사건'으로 나은 사례를 보고, '우연히 접한 글'이 내 사고를 바꾸기도 했다. 내가 잘한 게 아니다. 그저 우연이다.


그런 우연을 통해 나는 언제나 나에게 유리한 신념을 선택하려는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선택을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선택'했다. 올바른(유리한) 선택을 하는 법은 연습하고 배워서 향상시킬 수 있다. 추론의 방법, 철저히 논리의 비약을 배제하면서 단계별로 간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분하고, 사실 판단과 가치평가를 분리한다. 주장이 틀렸다면 과감히 깨뜨린다. 혹은 다시 틀린 부분으로 돌아가서 변수를 바꾼다.



법학, 경제학, 정치학,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 철학 등의 과학은 도움이 된다. 요즘은 **학에는 필연적으로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쉬운 것은 역시 시험에 맞춘 평가를 신경써야 하는 것이지만...


 물론 저런 학문은 도움이 되지만 핵심은 아니다. 중요한 건 스스로에게 왜?라고 묻는 것이다. @는 나쁜가, @가 나쁘다면 왜 나쁜가? 혹시 @의 좋은 점은 없는가? @의 좋은 점이 있다면 왜 나에겐 @가 나쁜가? 그렇게 '왜'라는 수없는 질문이 끝이 나면 다음 질문은 '어떻게?'이다.


(심리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하거나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심리학의 오해' 를 읽어보기 바란다. 과학적 연구법이나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구분 등을 인상 깊게 읽은 기억이 난다.)



우리 사회는 사고하는 연습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한 유튜버가 돈버는 방법이라고 올리면 누군가는 맹신하고, 누군가는 무시한다. 누군가는 자신에 맞는 부분만 뽑아서 쓴다. 남들이 다 하면 그 자체가 권위를 얻어 남들처럼 해야 하는 사회. 누가 카스테라 체인점으로 대박내면 순식간에 빵집거리가 되고, 언제 그랬냐는 듯 가게들은 사라진다. 


남에게서 들은 지식이나 이론도 수 많은 검증과 실전을 통해 증명되지 않으면 믿을 수 있는 내 것이 아니다. 바꾸려면 계속 물어야 한다.



요약

1. @는 병이며 치료되어야 한다.는 신념은 유리하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의 사용법을 익히는 방향이 유리하다 생각한다.


2. 신념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 사람의 입장을 설명해주는 타당한 것이다. 하지만 유리한 신념이 아닐 수도 있다.


3. 신념을 바꾸기 위해선 새로운 신념을 적극적으로 변호해야 한다. 그리고 기존 신념에 의심을 품어야 한다. 사고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4. 누군가 @로 고민하고 있다면 공감해주고 안아주며 위로해주는 게 사교적인 일반인의 방식이다. 난 역시 @가 맞나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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