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나는 해야할 일을 전혀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늘 해야할 일을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막에 해치우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그래도 어떻게든 중간은 해왔다. 남들보다 못할 때도 있고, 잘할 때도 있고. 주위 사람들(특히 부모님)은 노력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했고 스스로도 막연히 나는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것이라는 자만이 있었다. 사실은 그 노력이 나에게는 잘 안되는 영역임을 ADHD진단을 받기 훨씬 전부터 느끼고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안 하던 것'이 '못 하는 것'이 된 충격은 팔다리를 잃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만큼 컸다. 몇 년 만에 공황이 찾아올 만큼.
해야할 일을 전혀 할 수가 없다고 주위에 호소하자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말라.' '완벽하게 할 필요가 없다.' 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한번도 완벽하려고 한 적이 없고, 너무 잘 하려고 한 적이 없는데? 최소한 이만큼은 해야한다는 거지.
그런데 아무래도 그게 완벽주의였던 모양이다. '완벽'이라는 단어의 뉘앙스에서 생긴 오해와, 나의 높은 이상이 만들어 낸 결과물!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기준의 '잘함'은 흠잡을 데 없음을 넘어 그 이상의 훌륭한 무언가였고 딱히 흠잡을 데는 없는 정도가 보통. 그 이하는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높은 이상, 거기에 맞춰야한다는 강박, 어설프게 하는 건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 여기서 온 부담이 너무 커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던 것 같다. 강박을 잠시 눌러두자, 여전히 괴롭지만 할 일을 조금씩 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기준을 낮추고, 꼭 맞추지 않아도 괜찮고,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기까지
아마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시 나아갈 수 있음에 의의를 두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