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약을 하면서 @에 대한 생각이 많이 늘었다. @라고 통칭하지만 사실 칼같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구조상의 특징이며 정도의 차이도 제각각이니까.
@라고는 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좀 뭔가 독특한 사람 정도로 인식되고 딱히 사회생활에 큰 문제는 없었다. 내 안에서는 비록 폭풍이 몰아쳤어도 겉으로는 4계절이 뚜렷한 기후로 보였을 듯하다.
20세부터의 기억을 돌아보니 난 언제나 열심히 살았고 (어릴적 부모에게 버림받는 게 두려웠던 것일지)깨지는 게 두려웠지만 신기하게도 사회는 그렇게 엄하지 않았다. 모든 고용주, 모든 선배들은 처음엔 엉망이었지만 어떻게든 인정받으려고 빠르게 흡수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었다. 다들 자기 밑으로 들어오길 바랐고, 날 키우고 싶어했다. (덤으로 모두들 날 고치려고 했는데 희한하게도 그게 싫어서 따르지 않았다)
남들의 동작을 잘 따라하고, 언제나 분석하는 습관이 있었기에 운동같은 걸 시작하면 3달이 되면 남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코치들은 내가 당연히 알고있을거라 생각하고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는 확신이 없었지만 여러가지로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시합을 나갔고, 1라운드 심판중지로 패했다. 영상을 보니 이길 기회는 최소 3번이나 있었는데... 며칠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의 첫 워홀은 엉망이었다. (나름 회화수업도 듣고 토익도 900이상이었지만)의사소통장애에 충격을 받은 첫 세달은 야간 근무와 주간에 방에 틀어박혀서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일상이었다. 마을을 옮겨서는 700불의 월세를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머릿속에는 언제나 귀국한 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지만 주변사람들은 언제나 파티, 노는 것만 생각하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옛날에 워홀 갔다 온 사람들이 쓴 책을 보면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사회성도 좋아져서 요즘 시대에 말하는 '인싸'가 돼서 돌아왔다고 써 있던데...(썰은 늘어서 좋음)
부정적인 인식과 긍정적인 외부 평가가 싸우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가능성이 있다면 왜?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가능성을 계속 열어두고 있었던 건 감사하게도 나를 받아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가족이 심어준 그들의 관찰에 기반한 부정적인 인식(넌 안될거야, 넌 언제나 칠칠맞지 못해, 쓸데없는 짓 하지마)이 나를 지배하고 있을 때 그들은 내게 "넌 할 수 있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 될거야." 라는 말을 해 주었다. 아무런 의심이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죄책감도 느꼈다. 좋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것보다 못하기에 당시에는 꼭 사기를 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형제같은 사람과 만났다. 연락이 없어도 뭔가를 하고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겁도 없이 이것 저것 찔러보고 외관상이나마 형태가 남은 것이 이해가 됐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나에게 불안을 던져주는 자기불신에 반항하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의 출처였다.
충동성향으로 인한 잘못된 판단과, 최종 목표는 뚜렷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안절부절로 난 다시 바닥을 쳤다. 극심한 무기력증으로 몇 달간 '객관적으로' 쓰레기가 되었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할 수 있다' 라는 신념 덕분에 다행히도 난 스스로를 비난하고자 하는 습관적인 욕구를 다른 생각으로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머리를 식히고, 객관적으로 내가 통제불능이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라는 결과에 도달하자 모든 퍼즐이 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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